우성주 지음/ 한언/ 216쪽/ 2만8000원
저자는 이처럼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 인류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파베르’, 유희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루덴스’ 등과 더불어 현생 인류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단어 ‘호모 이마고’를 책 제목으로 삼은 것은 이 때문이다. 라틴어로 표상, 모방 등을 뜻하는 ‘이마고(imago)’를 ‘호모(homo)’와 결합하면 ‘이미지로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뜻이 된다.
사실 그렇다. 정신분석학 연구에 의하면 어린아이가 자기 몸을 그리는 것은 인격 형성의 중요 단계 가운데 하나다. 구석기 인류가 동굴 벽에 그림을 새겨 넣은 것만 봐도 이미지 창조가 인간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를 알 수 있다. 예술사가 아널드 하우저는 “구석기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는 것을 그렸다”고 했다. 저자는 이 말을 달리 설명한다. “이미지는 초기 인류가 삶을 영위하며 느끼고 배운 지혜와 지식을 기억하고 남기기 위한 도구”였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선사시대 이미지에는 현상 묘사뿐 아니라, 개인 혹은 집단 무의식과 초자연적인 현상 및 존재 등이 담겼다. 이 때문에 초기 인류의 동굴벽화부터 현대의 디지털 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살펴보는 것은 곧 인간을 읽는 것이고, 나아가 인류 문화에 내재된 문화원형(cultural archetype)을 탐색하는 일이 된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로, 이화여대에서 서양화,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이미지인류학’을 각각 전공한 저자는 바로 이 작업에 관심을 뒀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구석기시대에 만든 여성상 상당수는 얼굴이 없거나 머리가 없다. 머리가 있어도 얼굴이 없고, 얼굴이 있어도 눈과 입이 없는 경우 역시 많다. 저자는 그 이유를 찾으려고 고대 텍스트를 분석한다. 그리스신화에서 여자 괴물 고르곤이 시선으로 모든 생명체를 죽인 대목, 아이를 잡아먹는 또 다른 여자 괴물 라미아가 눈을 없애면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는 대목 등을 찾아낸다. 북아메리카 인디언 신화에도 눈에 붕대를 감은 괴물이 붕대를 풀 때 그 눈을 본 사람은 바로 죽었다는 내용이 있다. 초자연적 존재의 시선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믿음은 이 밖에도 세계 곳곳의 텍스트에서 발견된다. 그렇다면 구석기인은 여성상을 초자연적 존재로 간주한 게 아닐까. 오늘날 새 신부가 얼굴을 면사포로 가리고, 일부 지역에서 여성이 여전히 얼굴을 차도르로 가리는 것은 이런 믿음의 흔적이 아닐까. 저자의 상상력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종횡무진 오가고, 그 흐름을 따라가며 독자는 인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게 된다.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등장하는 세 여신 에우프로쉬네, 탈리아, 아글라이아의 이미지가 보티첼리, 라파엘로, 피카소, 들로네 등 여러 세대 수많은 작가의 작품에서 어떻게 구현됐는지를 분석하면서 인류 미의식 변천사를 훑는 내용도 흥미롭다. 책을 읽고 나면 “인간은 이미지를 통해 삶의 본질을 사유하고, 소유하며, 소통한다. 이런 특징은 인류가 문화를 만들고 문명을 이루며 살아가도록 하는 창조적 동력이며, 인간의 본질적인 독창성”이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