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선생 종가의 찻자리.
이제 우리 국민은 나랏일, 집안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마음의 평온을 찾아 차 한잔을 마시자. 떠들썩한 술자리 대신 아름다운 찻자리를 꾸며 “차 한잔 하실까요?”라는 정겨운 말로 이웃과 소통해보자. 가슴을 따뜻하게 덥히는 차 한잔엔 감정을 조율하는 신통력이 있다. 차 한잔을 앞에 두고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쌓인 오해가 풀리고 미운 마음도 사라진다. 조촐한 찻자리만으로도 이기주의로 치닫는 현대의 곤고한 삶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찻자리를 티(tea)파티라고도 한다. 서양에서 건너온 말이지만 찻자리보다 더 익숙한 용어가 된 지 오래다. 찻자리든 티파티든, 어른뿐 아니라 어린아이까지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어 더 좋은 자리가 아닌가 싶다. 김이 하얗게 오르는 군고구마 한 접시를 다식으로 내놓아도 좋고, 해묵은 녹차를 물에 불려 멥쌀가루와 함께 찐 차 버무리떡도 좋다. 노을빛 황차 한 잔을 칵테일 잔에 부어 마시면 동과 서가 만나는 퓨전 찻자리가 된다.
찻자리를 꾸민다는 건 영국 귀족의 홍차 테이블처럼 은제 그릇을 두고 달콤한 케이크와 화려한 꽃으로 장식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차가 가진 정신적인 멋과 품격을 공유함을 뜻한다.
식탁에는 반짝거리는 전구보다 황금빛 놋그릇이나 깊이 있는 투박한 질그릇에 꽃소금을 담은 후 양초를 꽂아둔다. 그리고 양초 주변을 편백, 석송 같은 사철나무 잎이나 낙상홍, 까치밥나무, 찔레 등의 열매를 소품으로 꾸미면 한국적 정서가 담뿍 담긴 오방색이 된다. 동서남북과 중앙 어디에서도 가족이 무탈하기를 비는 우리 조상의 풍습이다.
아름다운 찻자리를 들라고 하면 한국 대표 석학인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의 종가가 생각난다. 언젠가 경기 안양시에서 3대가 함께 생활하는 아파트를 찾아간 적이 있는데, 다산의 6대 종손 정해경 옹과 아들 호영 씨, 부인 이유정 씨와 손자 우원 군, 손녀 우진 양이 햇살 비치는 거실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정겨운 찻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다산이 유배지인 전남 강진에서 18년간 꿈꾸던 가족 차회를 후손들은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가족 화합을 다지고 정신을 풍요롭게 하고 있었다.
“이 차는 다산 선조의 18대 제자 중 막내인 윤종진의 직계 후손으로 강진군수를 지낸 윤동환 씨가 보내줬습니다. 다신계(茶信契) 후손들이 19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해마다 차를 만들어 스승의 후손 집에까지 보내주시니, 이렇게 아름다운 인연이 있겠습니까. 저희는 훌륭한 선조를 둔 복을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신계는 다산이 귀양에서 풀려 강진 땅을 떠나올 때 제자 18명이 스승과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해 만든, 세계에 유례가 없는 최초의 차 모임이다. 그들이 발간한 ‘다신계’ 서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이 귀하다는 것은 신의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무리로 모여 서로 즐기다가 흩어진 뒤 서로를 잊는다면 이는 새나 짐승의 짓이나 다름없다. 우리 여남은 사람은 무진년(戊辰年·1808) 봄부터 무인년(戊寅年·1818) 8월 그믐(30일)에 이르기까지 형이나 동생처럼 모여 글공부를 했다. 지금 스승은 북녘 고향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뿔뿔이 헤어져 마침내 아득히 서로를 잊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신의를 잊어버려 경박하게 되지 않겠는가. 지난해 봄 우리는 이 일을 미리 염려하고 계를 세워 돈을 모은 것이 그 시초였다….”
2013년 새롭게 출발하는 정부는 다신계가 전하는 메시지를 참고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