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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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 쏙 빼닮은 아이…알고 보니 ‘씨받이’였다

살벌한 이혼전쟁, TV 드라마보다 심한 경우 허다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2-12-21 17: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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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아버지 쏙 빼닮은 아이…알고 보니 ‘씨받이’였다

    KBS 2TV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2’ 한 장면.

    인기리에 방송 중인 KBS 2TV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2’를 보면서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이 “현실에서 저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질까”다. 그런데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 요즘 법정에선 이혼 당사자와 양가 가족을 둘러싸고 드라마보다 더 심한, ‘전쟁’을 방불케 할 만큼 험악한 일들이 벌어진다.

    30대 중반 A씨는 남편이 ‘무정자증’인 사실을 모르고 결혼했다. 결혼 후 며느리가 임신을 하지 못하자 A씨 시부모는 “대를 이어야 한다”며 시아버지의 정자를 제공받아 인공수정을 할 것을 종용했다. A씨는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고, 그 대신 제삼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임신에 성공했다. 하지만 아기가 커갈수록 생김새가 시아버지를 닮아가자 A씨는 고민에 휩싸였다. ‘시부모와 병원이 짜고 시아버지의 정자를 제공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 뒤늦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A씨 친정어머니는 격분해 딸을 부추겨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시집에서 우리 딸을 씨받이로 이용했다”며 시부모와 사위를 상대로 형사고소까지 했다.

    “남편 말투가 어눌하고 상스러워 부부모임에 함께 가기 창피하다” “강남에 40평형대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구매했는데 혼수를 싸구려로 해왔다”며 갈등을 겪던 30대 후반 B씨와 C씨 부부. 이들은 이혼소송 과정에서 “신혼살림으로 마련해온 가구들을 도끼로 부수고 싶다”고 할 정도로 감정이 격해졌다. 양가 부모까지 부부 갈등에 가세해 쌍방이 폭력을 휘두르고, 시어머니와 장모는 각각 B씨와 C씨의 직장으로 찾아가 행패를 부리기까지 했다. 양쪽 집안은 서로 상대방을 명예훼손, 폭력, 상해, 주거침입으로 고소하는 등 여러 건의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해 치열하게 다투는 중이다.

    이혼이 ‘전쟁’으로 치닫는 이유는 부부싸움이 양가 갈등으로 번져 이혼소송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당사자를 비롯한 양가가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민형사상 맞소송으로 번지는 등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기 때문이다.

    당사자보다 부모가 대리戰



    부부싸움에 양가 부모가 합세하면서 이혼까지 가지 않아도 될 부부가 결국 헤어지고 마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결혼한 D씨는 아내에게 들통 나자 “게이 생활을 청산하고 결혼생활에 충실하겠다. 약속을 어기면 당신에게 집을 주겠다”는 각서를 썼다. 그러나 D씨는 이후에도 과거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동성애 사실이 발각되자 아내에게 집과 차를 위자료로 주고 맨몸으로 집을 나왔다.

    1년 뒤 아들이 이혼한 사실과 재산을 며느리에게 모두 넘겨준 것을 안 D씨 아버지는 “내 아들을 게이로 만든 뒤 협박해 재산을 갈취했다”며 며느리와 사돈을 협박죄, 명예훼손죄, 사기죄로 형사 고소했다. 그와 함께 며느리가 가져간 재산을 분할해달라며 아들을 원고로 한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양가는 대법원까지 가는 치열한 다툼을 벌였지만 소송은 모두 기각됐다. 분을 참지 못한 D씨 아버지는 “아들이 며느리에게 준 집은 아들이 결혼할 때 자신이 사준 것으로 명의만 아들 앞으로 한 것이다. 명의신탁을 해지하겠으니 집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D씨는 “부모 몰래 이혼하면서 아내에게 ‘과거 생활을 청산하면 그때는 다시 받아 달라’며 좋게 헤어졌는데 아버지 때문에 아내와 다시 합칠 희망이 물거품이 됐다”며 참담해했다.

    최근에는 부부 갈등이 양가 부모에게서 시작된다는 점도 이혼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결혼한 자식의 부부생활에 시시콜콜 참견하는 부모가 늘면서 부부싸움을 야기하는 것은 물론, 이혼에 맞소송까지 주도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시어머니가 결혼 3년 안에 교사임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시어머니가 강권해 성형수술을 받았다. 억울해서 성형수술비를 반드시 시어머니한테 받아내겠다”며 이혼소송에 나선 며느리들이 있는가 하면 “장모가 부부 잠자리까지 간섭한다”며 분개한 남편도 있다.

    수백억 원대 재산가를 처가로 둔 20대 후반 E씨는 장모가 자신을 시도 때도 없이 불러내 ‘종 부리듯’ 하고, 아침마다 전화해서 “간밤에 부부 잠자리는 잘했느냐” “오늘은 딸아이 몸이 안 좋은 것 같으니 잠자리를 피하라”며 부부의 은밀한 사생활까지 간섭하자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더는 장모에 휘둘리기 싫다”며 이혼소송을 제기한 E씨는 “아내하고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냥 우리끼리 잘 살게 놔뒀으면 이혼까지는 안 갔을 텐데…”라며 장모를 원망했다. E씨 아내도 “엄마한테 시달리는 남편이 너무 불쌍하다. 미안해서 잡을 수도 없다”며 자기 부모를 책망했다.

    부모가 나서서 이혼을 종용하고 변호사를 선임해 이혼 상담을 하는 등 이혼 과정의 전반을 주도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정작 변호사는 이혼 당사자의 얼굴도 못 본 채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가 흔하다. 재판 때 법정에 가서야 처음으로 소송 당사자의 얼굴을 보는 것. 성인임에도 부모가 준비한 자신의 소송서류에 이름만 올리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것은 “우리 자식이 이혼 문제로 스트레스 받는 것이 싫다”는 이유에서다.

    결혼을 반대하는 시부모를 피해 몰래 결혼식을 올렸던 30대 중반 F씨는 어느 날 신혼집에 시어머니가 들이닥쳐 남편을 끌고 가다시피 했고, 그 후 이혼소송을 당하자 “남편은 나를 사랑하는데 시부모가 나서서 일방적으로 이혼소송을 걸었다. 이혼소송은 가짜”라며 맞소송(반소)을 제기했다.

    이혼산업·심부름업체 활황

    양가 부모가 가세한 이혼전쟁이 늘면서 ‘이혼산업’이라는 용어가 공공연히 회자될 정도로 관련 업계가 활황을 맞았다. 최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가정법원 근처에 ‘친자확인’ 검사를 해주는 유전자감정업체가 문을 열었는가 하면, 인터넷에는 ‘이혼 전문 변호사’ 간판을 내세운 사이트와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이혼 전문 변호사 수가 급증하면서 법조인 사이에 ‘인터넷변호사’ ‘방송변호사’ ‘지하철변호사’라는 은어까지 유행한다. 이혼 사건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인터넷이나 방송, 지하철 광고로 얼굴을 알리려는 변호사들을 일각에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것.

    한편 이혼소송과 민형사상 소송에서 유리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녹음해주는 심부름업체가 성업 중인가 하면, 녹음 내용을 녹취해 문서로 작성해주는 속기사무소도 최근 늘고 있다. 박호규 전국속기사무소연합회 회장은 “2년 전부터 속기사무소가 급격히 늘었다. 현재 양재동 서울가정법원을 중심으로 60~70개 사무소가 모여 있다.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업체마다 일감은 예전보다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재판의 속성이 공격과 방어다. 외국의 경우 이혼 소장을 작성할 때 상대방도 이혼을 원하는지, 이혼에 동의하는지 등의 내용을 간략하게 쓰도록 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소장 내용에 제한이 없어 상대방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내용을 구구절절 쓸 수 있다. 소장 내용이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해 이혼소송을 확대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소장 작성 방식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법적,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 문제는 법조계에서 꾸준히 지적돼온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사회의 이혼 행태에 대해 이렇게 우려했다.

    “이혼은 당사자뿐 아니라 미성년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다. 아이가 부모의 이혼에 적응하고 극복하는 데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이 걸린다. 그 기간을 좌우하는 게 이혼 과정에서 부부가 어떻게 헤어졌느냐다. 이혼소송이 극단까지 가면 자녀에게 미치는 폐해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부모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혼·가사 전문 이명숙 변호사

    “결혼도 이혼도 부모 간섭, 양가 전쟁 터져”


    시아버지 쏙 빼닮은 아이…알고 보니 ‘씨받이’였다
    법무법인 나우리 대표변호사이자 20여 년간 이혼소송 전문 변호사로 활동해온 이명숙 변호사(사진)는 “이혼 과정에서 맞고소하며 죽기 살기로 싸우는 건 부모도, 자식도 ‘상대방이 원하는 걸 해주기 싫다’며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혼을 ‘쉬쉬’ 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부모가 더 나서는 것 같다.

    “이혼소송 중에 자녀 면접교섭권을 행사하면서 정작 백화점에 아이를 데려나온 건 친정아버지고, 그 아이를 시아버지가 건네받아 데려간 사례가 있었다. 이처럼 아이의 부모이자 이혼 당사자인 아들과 며느리는 쏙 빠진 채 부모가 이혼 과정의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이게 요즘 학식 있고 재산 있는 일부 사람들의 이혼 풍경이다.”

    부모가 다 큰 자식들의 이혼을 주도하는 일이 왜 벌어지나.

    “해외유학까지 다녀온 남자가 이혼소송 중에 부모 집으로 끌려갔는데, 부모 몰래 아내가 있는 신혼집에 찾아와 ‘이혼을 원하는 부모님을 설득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아내 손을 잡고 운 사례도 있었다. ‘헬리콥터맘’ ‘헬리콥터대디’에 휘둘려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된 뒤까지 부모에 의존하며 살아온 젊은이가 많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결혼도 부모 뜻대로 하고, ‘자식에 대한 책임’을 이유로 부부생활까지 간섭하는 부모가 늘면서 이혼도 자연스레 부모 일이 되는 것이다.

    이혼소송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으려면 먼저 결혼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결혼 주체가 부모가 아닌 당사자가 돼야 하고, 혼수나 예단도 자기 힘으로 직접 준비하는 등 정신적, 물질적으로 독립해야 결혼도, 이혼도 부모 간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부모 힘으로 한 화려한 결혼일수록 이혼소송 때 혼수나 예단 정리가 얽혀 양가 맞소송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이혼이 양가 전쟁으로 번지는 걸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살면서 부부 갈등이 없을 수 없다. 부모에게 쪼르르 달려가 시시콜콜 불만을 털어놓지 말고, 정 힘들면 전문가를 찾아가 부부 상담을 받는 게 좋다. 부부싸움에 양가가 개입하기 시작하면 자칫 원치 않는 이혼까지 일사천리로 치달을 수 있다.”

    이혼전쟁으로 치르는 비용도 만만찮을 것 같다.

    “이혼소송에서 변호사를 통해 합의하면 150만~300만 원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소송을 길게 끌면 수천만 원이 들기도 한다. 병원을 경영하거나 사업가 집안 같은 경우, 이혼을 둘러싼 싸움이 격화되면 ‘세금 포탈’로 신고를 당할 수도 있다. 이혼전쟁 비용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여지도 충분하다. 비단 돈 문제뿐 아니라, 6개월에서 1년이면 끝날 소송이 수년씩 길어질 수 있다. 자녀 이혼에 부모가 개입할수록 일이 커지므로 신중해야 한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이혼(가사) 소송이 민형사 소송으로 확대되는 배경엔 급증하는 이혼 전문 변호사가 있다. 사건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부 변호사들이 의뢰인을 부추겨 소송 건수를 늘리고 있는 것. 그는 “여러 건의 민형사 소송으로 상대를 압박해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소송을 빨리 끝내려는 측면도 있지만, 소송 건수가 많아질수록 수임료가 늘기 때문에 일부 변호사가 이를 챙기려 하는 것이다. 이혼소송 사건을 맡은 한 젊은 변호사는 의뢰인의 감정을 자극해 30여 건의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도록 만들어 1년 동안 그걸로 돈벌이를 했다”며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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