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0월 14일 쿠바를 정찰하던 미국 U-2 정찰기가 소련이 건설 중인 장거리 미사일 기지를 발견했다. 흐루쇼프 소련 서기장이 쿠바에 중·장거리 핵미사일(MRBM)을 배치한 데 이어 미 동남부 대부분을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핵 미사일(IRBM) 기지를 건설 중이었던 것이다.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즉각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하고 소련 의도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9월까지 “해외에 핵미사일을 배치하지 않겠다”던 흐루쇼프가 왜 돌연 장거리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느냐는 것이었다. 9월 백악관에서 열린 정세평가회의에서도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할 가능성은 없다”는 판단을 내린 터에 갑작스러운 미사일 기지 발견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이에 대해 “빌어먹을 미스터리”라고 투덜거렸다.
이후 미국의 카리브해 봉쇄와 소련의 미 U-2정찰기 격추, 미국의 쿠바 침공에 대한 최후통첩이 얽힌 13일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쿠바에서의 분쟁이 독일 베를린으로 확전되고, 미·소 간 핵전쟁 위기로까지 순식간에 이어질 수 있는 당시 위기상황을 잘못 관리했다면 적어도 1억 명 이상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요건이 충족됐다. 케네디 대통령은 이 위기상황이 지나간 이후 “핵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1/3에서 1/2 사이였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위기가 대단히 심각했던 이유는 미국과 소련이 서로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소련이 쿠바를 방위하려면 MRBM으로도 충분한데 왜 굳이 IRBM까지 배치하는지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고, 소련은 미국이 해상봉쇄에 이어 쿠바를 전면 침공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워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와 유사
북한이 12월 1일 “10일에서 22일 사이 실용 위성로켓을 발사하겠다”고 발표하자 나타난 반응은 쿠바 미사일 위기 초기와 유사하다. 도대체 북한이 왜 이 시점에 로켓을 발사하려 하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요일인 2일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외교안보부처도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도대체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며 북한 의도에 혼란스러워하는 고위 관계자 표정도 언론에 그대로 노출됐다.
한편 미국에서도 북한의 12월 1일 발표 때까지 국무부와 국방부 사이에서 로켓 발사 가능성을 각기 다르게 판단해 혼란이 가중됐다. 미 국무부는 중국 시진핑 총서기의 친서를 갖고 북한을 방문한 리젠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이 11월 30일 김정은을 만났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북한의 로켓 발사 움직임에 우려를 표명하는 시진핑의 친서를 받은 김정은이 바로 이튿날 로켓 발사를 발표하리라고는 미 국무부가 예상하지 못한 상식 밖의 일이었다. 게다가 4월과 8월 미국 특사가 평양에서 북한과 비밀 접촉을 했고, 2기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 모종의 대화를 시도하리라는 관측이 높은 시기에 북한이 로켓 발사로 화답한 것에서 합리적 의도를 도출하기란 어려웠다. 반면 미 국방부는 북한 의도가 무엇이든 이미 로켓 발사를 위한 준비에 착수한 이상 이를 돌이키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3단 로켓 동체를 운반하고 조립하려는 동향이 관찰되고, 로켓 연료주입을 위한 차량이 동창리 발사장에 출현한 것은 누가 봐도 로켓 발사가 임박했다는 명확한 증거다. 다만 겨울에는 로켓 산화제와 연료를 관리하는 일이 어려워 로켓 발사의 기술적 위험성이 증가하는 것은 명약관화하기 때문에 북한 결정이 비합리적이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북한의 로켓 발사 징후가 명확한데도 미 정부가 북한의 로켓 발사 발표 초기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인 이유는 북한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쿠바 미사일 위기 초기와 아주 유사한 점이다.
북한의 로켓 발사 계획이 명확해진 이상 발사 이유는 이제까지 북한을 이해하던 맥락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찾아봐야 한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북한이 남한 대통령선거(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로켓 발사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고 분석하지만 이것도 기존 고정관념일 뿐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선에 개입할 의도라면 값싼 재래식 무기만으로 충분한데, 왜 실패할지도 모르는 로켓을 동원하면서까지 정권 위신이 걸린 도박을 하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북한이 우리 대선판에 관심이 크다면 서해와 휴전선에서 재래식 방법으로 얼마든 개입할 수 있다. 한국 대선이 관심 밖이라면 미국과 통 큰 협상을 하기 위해 미사일이라는 카드를 꺼낸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과거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 세 번(1998, 2006, 2009)은 미국과의 협상을 촉구하기 위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던 김정일 위원장의 전략적 선택으로 이해되는 측면이 강했다.
베팅 멈출 수 없는 ‘도박의 딜레마’
그러나 올해 4월 로켓 발사는 미국이 북한에 대규모 영양지원을 하고 북한은 미사일 개발을 중지하는 2·29 합의 직후에 이뤄졌다. 벼랑 끝 전술과는 전혀 맞지 않은 협상타결 시점에 로켓을 발사한 것은 북한 미사일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라”는 협박으론 부적절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또한 지금의 로켓 발사 역시 미국과의 협상을 위한 카드와는 다르다는 점을 느끼게 한다. 오히려 김정은 제1비서가 앞으로 북한 로켓 발사는 “국제적 거래나 흥정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경향이 강해 보인다.
다만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며 미국에 던질 수 있는 정치적 메시지는 10월 한미 미사일협정이 개정돼 우리가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사정거리 800km)을 보유하는 데 대해 격렬히 반발한다는 점과 모종의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다. 미국이 남한의 미사일 사정거리 연장에 동의한 이상, 그동안 특사와 뉴욕 채널을 통해 물밑 대화를 해오던 미국에 대해 상당한 배신감을 느낀 북한이 “앞으로는 정치적 고려 없이 미사일 개발을 강행하겠다”는 방향으로 마음을 굳힌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북한이 ‘핵 억지력 확보’라는 과거 정치·군사적 수사를 구사하지 않고 실용위성 개발이라는 점을 앞세운 것은 최근 남한의 나로호 발사 시도를 의식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이는 모두 추정에 지나지 않고, 어디까지나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확보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의문은 제기된다. 왜 지금 이 시점에 미사일을 개발하려는 것인가. 4월 발사한 은하3호 로켓은 대포동2호 개량형으로, 발사한 지 2분도 되지 않아 폭발했다. 당시와 똑같은 로켓이라면 단순한 기술 결함 외에도 설계와 제어 문제 같은 구조적 결함일 수 있다. 반드시 미사일을 보유하겠다면 시간을 늦춰 기술적 보완을 충분히 거친 후 발사해도 늦지 않다. 이에 대해 북한의 국내 정치일정 때문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날이 12월 17일인 만큼 그의 위업을 기리는 정치적 상징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북한 로켓은 김정일 1주기에 바치는 제물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로켓이 제물이 되려면 4월처럼 처참한 실패가 돼서는 곤란하다.
여기에서 김정은 제1비서가 이미 ‘도박의 딜레마’에 빠진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은 잃은 판돈이 아까워 또 베팅을 할 수밖에 없고, 중간에 멈추기란 불가능하다. 잃을 가능성이 분명한데도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 중독자의 전형적인 특징이라면, 이제까지 북한이 4차례의 미사일 발사를 모두 실패했다는 점은 앞으로 북한이 미사일 발사에 더 몰두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국제관계, 특히 미국과의 협상 같은 핵심 전략적 변수도 부차적 변수로 밀려나게 된다. 게다가 2009년 대포동2호 발사의 경우 1단 로켓은 650km, 2단 로켓은 3846km를 비행했다. 우주궤도에 진입하기 직전 위성궤도 진입 추력이 약간 부족해 실패한 것이다. 조금만 더 위로 올리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면 북한은 로켓 발사를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성공의 예감’이야말로 도박을 멈출 수 없게 하는 폭주의 핵심 원인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북한 로켓의 성공 가능성을 일깨워준 당사자는 다름 아닌 미국이다. 게이츠 전 미 국방장관은 지난해 1월 “북한은 5년 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고, 2009년 이후 서방 전문가들 역시 북한의 미사일 개발 성공을 전망함으로써 사실상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격려한 셈이 됐다. 오히려 서방 시각으로는 4월 북한 미사일의 황당한 실패가 실망스러웠을 정도다.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비해 한미일 정보자산이 총출동되고, 일본의 경우 격파 준비태세까지 자위대에 하달했는가 하면 대만과 필리핀은 군과 경찰, 예비군이 비상대기에 돌입한 상황에서 겨우 2분을 버티지 못하고 북한 로켓이 폭발해버린 것이다.
미사일을 향한 북한의 폭풍질주는 남한의 미사일 개발, 나로호 발사 시도로 한층 다급해진 감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미사일 사랑이 유별나다는 사실도 알았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미사일 사정거리 연장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여차하면 ‘미사일 지침 폐기’라는 자해소동까지 일으키겠다며 오바마 대통령을 거의 협박해 얻어낸 성과가 사정거리 연장이다. 게다가 내년 4월에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도 시작된다. 미사일과 원자력에 대한 한국의 적극적인 태도가 지난해 7월부터 미국을 놀라게 했던 한미관계 악재였다면, 미국은 남한과 북한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핵과 미사일 확산을 관리해야 하는 ‘두 개의 한국 정책’, 즉 투 트랙(two track) 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렇게 보면 북한의 로켓 발사가 한국 대선과 이후 차기 정부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대선과 차기 정부 심각한 영향
먼저 북한 로켓이 대선 전에 발사되고 우주궤도 진입에 성공하는 경우다. 가장 충격이 큰 이 경우에는 당장 대선 중에 한국형 미사일방어(MD) 문제가 부각되고,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에 대한 재검토 여론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기상상황이나 기타 기술적 이유로 로켓 발사가 대선 이후로 늦어지고, 4월처럼 실패할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 가장 충격이 약한 이 경우에는 차기 정부가 북한 위협을 관리하는 데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대선 전 발사하되 실패하는 경우다. 이 경우 대선에 미치는 영향은 미약하리라 예상되며, 이번 대선에서는 북풍 변수를 고려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서든 북한 경제난이 갈수록 심화되고, 김정은 체제는 혁신적인 경제개혁으로 나아가느냐 마느냐 기로에 놓였다. 동북아 국제질서도 판을 다시 짜는 형국이다. 차기 정부는 북한 및 주변국과 전략적 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해, 한반도 정세를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역량과 시스템을 시급히 준비해야 한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대한 폭주가 지속된다면, 이는 핵 개발을 위한 폭주로 이어질 테고, 그 상황에서는 쿠바 미사일 위기 같은 미증유의 위기가 우리에게 닥치지 말란 법이 없다. 한반도 정세를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역량과 시스템을 준비하는 일이 “빌어먹을 미스터리”를 하나씩 풀어가며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될 것이다.
이후 미국의 카리브해 봉쇄와 소련의 미 U-2정찰기 격추, 미국의 쿠바 침공에 대한 최후통첩이 얽힌 13일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쿠바에서의 분쟁이 독일 베를린으로 확전되고, 미·소 간 핵전쟁 위기로까지 순식간에 이어질 수 있는 당시 위기상황을 잘못 관리했다면 적어도 1억 명 이상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요건이 충족됐다. 케네디 대통령은 이 위기상황이 지나간 이후 “핵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1/3에서 1/2 사이였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위기가 대단히 심각했던 이유는 미국과 소련이 서로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소련이 쿠바를 방위하려면 MRBM으로도 충분한데 왜 굳이 IRBM까지 배치하는지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고, 소련은 미국이 해상봉쇄에 이어 쿠바를 전면 침공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워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와 유사
북한이 12월 1일 “10일에서 22일 사이 실용 위성로켓을 발사하겠다”고 발표하자 나타난 반응은 쿠바 미사일 위기 초기와 유사하다. 도대체 북한이 왜 이 시점에 로켓을 발사하려 하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요일인 2일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외교안보부처도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도대체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며 북한 의도에 혼란스러워하는 고위 관계자 표정도 언론에 그대로 노출됐다.
한편 미국에서도 북한의 12월 1일 발표 때까지 국무부와 국방부 사이에서 로켓 발사 가능성을 각기 다르게 판단해 혼란이 가중됐다. 미 국무부는 중국 시진핑 총서기의 친서를 갖고 북한을 방문한 리젠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이 11월 30일 김정은을 만났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북한의 로켓 발사 움직임에 우려를 표명하는 시진핑의 친서를 받은 김정은이 바로 이튿날 로켓 발사를 발표하리라고는 미 국무부가 예상하지 못한 상식 밖의 일이었다. 게다가 4월과 8월 미국 특사가 평양에서 북한과 비밀 접촉을 했고, 2기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 모종의 대화를 시도하리라는 관측이 높은 시기에 북한이 로켓 발사로 화답한 것에서 합리적 의도를 도출하기란 어려웠다. 반면 미 국방부는 북한 의도가 무엇이든 이미 로켓 발사를 위한 준비에 착수한 이상 이를 돌이키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3단 로켓 동체를 운반하고 조립하려는 동향이 관찰되고, 로켓 연료주입을 위한 차량이 동창리 발사장에 출현한 것은 누가 봐도 로켓 발사가 임박했다는 명확한 증거다. 다만 겨울에는 로켓 산화제와 연료를 관리하는 일이 어려워 로켓 발사의 기술적 위험성이 증가하는 것은 명약관화하기 때문에 북한 결정이 비합리적이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북한의 로켓 발사 징후가 명확한데도 미 정부가 북한의 로켓 발사 발표 초기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인 이유는 북한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쿠바 미사일 위기 초기와 아주 유사한 점이다.
북한의 로켓 발사 계획이 명확해진 이상 발사 이유는 이제까지 북한을 이해하던 맥락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찾아봐야 한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북한이 남한 대통령선거(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로켓 발사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고 분석하지만 이것도 기존 고정관념일 뿐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선에 개입할 의도라면 값싼 재래식 무기만으로 충분한데, 왜 실패할지도 모르는 로켓을 동원하면서까지 정권 위신이 걸린 도박을 하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북한이 우리 대선판에 관심이 크다면 서해와 휴전선에서 재래식 방법으로 얼마든 개입할 수 있다. 한국 대선이 관심 밖이라면 미국과 통 큰 협상을 하기 위해 미사일이라는 카드를 꺼낸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과거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 세 번(1998, 2006, 2009)은 미국과의 협상을 촉구하기 위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던 김정일 위원장의 전략적 선택으로 이해되는 측면이 강했다.
베팅 멈출 수 없는 ‘도박의 딜레마’
그러나 올해 4월 로켓 발사는 미국이 북한에 대규모 영양지원을 하고 북한은 미사일 개발을 중지하는 2·29 합의 직후에 이뤄졌다. 벼랑 끝 전술과는 전혀 맞지 않은 협상타결 시점에 로켓을 발사한 것은 북한 미사일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라”는 협박으론 부적절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또한 지금의 로켓 발사 역시 미국과의 협상을 위한 카드와는 다르다는 점을 느끼게 한다. 오히려 김정은 제1비서가 앞으로 북한 로켓 발사는 “국제적 거래나 흥정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경향이 강해 보인다.
다만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며 미국에 던질 수 있는 정치적 메시지는 10월 한미 미사일협정이 개정돼 우리가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사정거리 800km)을 보유하는 데 대해 격렬히 반발한다는 점과 모종의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다. 미국이 남한의 미사일 사정거리 연장에 동의한 이상, 그동안 특사와 뉴욕 채널을 통해 물밑 대화를 해오던 미국에 대해 상당한 배신감을 느낀 북한이 “앞으로는 정치적 고려 없이 미사일 개발을 강행하겠다”는 방향으로 마음을 굳힌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북한이 ‘핵 억지력 확보’라는 과거 정치·군사적 수사를 구사하지 않고 실용위성 개발이라는 점을 앞세운 것은 최근 남한의 나로호 발사 시도를 의식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이는 모두 추정에 지나지 않고, 어디까지나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확보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움직임이 포착된 후 전북 군산 주한미군 공군기지에 배치된 신형 패트리어트 미사일(PAC-3) 발사대 옆으로 F-16 전투기가 이동하고 있다.
여기에서 김정은 제1비서가 이미 ‘도박의 딜레마’에 빠진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은 잃은 판돈이 아까워 또 베팅을 할 수밖에 없고, 중간에 멈추기란 불가능하다. 잃을 가능성이 분명한데도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 중독자의 전형적인 특징이라면, 이제까지 북한이 4차례의 미사일 발사를 모두 실패했다는 점은 앞으로 북한이 미사일 발사에 더 몰두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국제관계, 특히 미국과의 협상 같은 핵심 전략적 변수도 부차적 변수로 밀려나게 된다. 게다가 2009년 대포동2호 발사의 경우 1단 로켓은 650km, 2단 로켓은 3846km를 비행했다. 우주궤도에 진입하기 직전 위성궤도 진입 추력이 약간 부족해 실패한 것이다. 조금만 더 위로 올리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면 북한은 로켓 발사를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성공의 예감’이야말로 도박을 멈출 수 없게 하는 폭주의 핵심 원인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북한 로켓의 성공 가능성을 일깨워준 당사자는 다름 아닌 미국이다. 게이츠 전 미 국방장관은 지난해 1월 “북한은 5년 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고, 2009년 이후 서방 전문가들 역시 북한의 미사일 개발 성공을 전망함으로써 사실상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격려한 셈이 됐다. 오히려 서방 시각으로는 4월 북한 미사일의 황당한 실패가 실망스러웠을 정도다.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비해 한미일 정보자산이 총출동되고, 일본의 경우 격파 준비태세까지 자위대에 하달했는가 하면 대만과 필리핀은 군과 경찰, 예비군이 비상대기에 돌입한 상황에서 겨우 2분을 버티지 못하고 북한 로켓이 폭발해버린 것이다.
미사일을 향한 북한의 폭풍질주는 남한의 미사일 개발, 나로호 발사 시도로 한층 다급해진 감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미사일 사랑이 유별나다는 사실도 알았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미사일 사정거리 연장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여차하면 ‘미사일 지침 폐기’라는 자해소동까지 일으키겠다며 오바마 대통령을 거의 협박해 얻어낸 성과가 사정거리 연장이다. 게다가 내년 4월에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도 시작된다. 미사일과 원자력에 대한 한국의 적극적인 태도가 지난해 7월부터 미국을 놀라게 했던 한미관계 악재였다면, 미국은 남한과 북한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핵과 미사일 확산을 관리해야 하는 ‘두 개의 한국 정책’, 즉 투 트랙(two track) 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렇게 보면 북한의 로켓 발사가 한국 대선과 이후 차기 정부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대선과 차기 정부 심각한 영향
먼저 북한 로켓이 대선 전에 발사되고 우주궤도 진입에 성공하는 경우다. 가장 충격이 큰 이 경우에는 당장 대선 중에 한국형 미사일방어(MD) 문제가 부각되고,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에 대한 재검토 여론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기상상황이나 기타 기술적 이유로 로켓 발사가 대선 이후로 늦어지고, 4월처럼 실패할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 가장 충격이 약한 이 경우에는 차기 정부가 북한 위협을 관리하는 데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대선 전 발사하되 실패하는 경우다. 이 경우 대선에 미치는 영향은 미약하리라 예상되며, 이번 대선에서는 북풍 변수를 고려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서든 북한 경제난이 갈수록 심화되고, 김정은 체제는 혁신적인 경제개혁으로 나아가느냐 마느냐 기로에 놓였다. 동북아 국제질서도 판을 다시 짜는 형국이다. 차기 정부는 북한 및 주변국과 전략적 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해, 한반도 정세를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역량과 시스템을 시급히 준비해야 한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대한 폭주가 지속된다면, 이는 핵 개발을 위한 폭주로 이어질 테고, 그 상황에서는 쿠바 미사일 위기 같은 미증유의 위기가 우리에게 닥치지 말란 법이 없다. 한반도 정세를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역량과 시스템을 준비하는 일이 “빌어먹을 미스터리”를 하나씩 풀어가며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