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한국고용정보원이 현직 근로자 2만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직업선호도 순위를 발표했다. 으레 고소득 전문직의 대표주자인 의사와 변호사가 1, 2위를 차지하리라 예상했으나 각기 44, 57위에 그쳤다. 반면 아나운서는 8위를 기록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아나운서가 의사나 변호사보다 인기 직업인 셈이다. 방송사에서 아나운서 모집공고를 낼 때마다 벌떼같이 지원자가 몰리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들 아나운서 지망생이 닮고 싶어 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 채널A 아나운서 팀장 이언경(37·사진) 씨다. 상대가 누구든 분야와 지위에 구애받지 않고 분위기를 편안하게 이끄는 아나운서로 정평이 났다. 그는 현재 종합편성채널 채널A 시사프로그램 ‘이언경의 세상만사’를 진행하고 있다. 실시간 뉴스에서부터 정치 심층 분석, 북한 생활, 경제 뉴스 등 사회적 이슈와 화제를 깊이 있고 날카롭게 다룬다. 결혼과 출산을 겪은 여자 아나운서가 자기 이름을 내걸고 매일(월~금요일) 2시간씩 생방송 시사프로그램을 단독 진행하는 건 아직까지 드문 일이다.
10월 11일 ‘이언경의 세상만사’에서 소개한 질문학습법이 주부들 사이에서 엄청난 화제였다.
“아나운서들도 대본을 읽고 돌아서서 말로 되뇔 수 있는 건 오래 기억한다. 질문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기억시간을 늘리는 질문학습법이 실제로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일방적인 강의보다 학습효과가 높다는 실험 결과도 있지 않은가. ‘세상만사’가 시사프로그램이지만 경제, 교육 정보도 간간이 다뤄서 오후 2~4시에 비교적 덜 바쁜 주부들이 관심 있게 보는 것 같다(웃음).”
▼ 진행하면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8월 중순 새누리당 공천헌금 사건이 터졌을 당시 정치평론가들이 대담을 나누는 ‘여의도 Now’라는 코너에서 8월 말이면 민주통합당에서도 공천헌금 사건이 터질 거라고 예견했는데 그대로 됐다. 공천헌금이라는 말도 공천뒷돈으로 고쳐 쓰고 있다. 공천헌금의 성격이 뇌물이나 뒷돈인 만큼 헌금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본 것이다. 그 뒤 몇몇 언론과 방송에서도 공천뒷돈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럴 때 우리 프로가 반응이 있구나 하고 느낀다. 소소한 재미가 있다.”
잘 들어주는 아나운서
▼ 시청자 게시판이나 인터넷 블로그에 ‘남 이야기 잘 들어주는 아나운서, 시청자의 공감을 잘 이끌어내는 아나운서’라는 칭찬이 자자하다. 비결이 뭔가.
“그런 건 없다. 출연자의 말을 성심성의껏 듣고, 전문지식이 부족한 시청자 처지에서 궁금한 점을 묻는 것이 내 임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사전에 공부를 많이 해서 논리적으로 접근하려 했는데 광대한 영역을 모두 섭렵하는 건 내 능력 밖이었다. 나그네 윗옷을 벗기는 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빛이듯 사람 속내를 끌어내는 방법도 그와 다르지 않다.”
▼ 어쩌다 아나운서가 됐나.
“부산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부산 KBS에서 리포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자연스럽게 방송에 끌렸고, 원주 MBC 아나운서 모집공고를 보고 응시해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계약 기간이 끝난 뒤에는 외환위기 영향으로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 지역방송사에서 일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 후 MBN에서 8년간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했고 종합편성채널이 생기면서 여러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낯가림이 심한 데다 출산을 앞두고 있어 이직을 고려하지 않았는데, 지인들의 권유와 임신부에 대한 채널A의 배려가 마음을 움직였다.”
▼ 어떤 배려였나.
“프리랜서 여자 아나운서에겐 결혼과 임신이 큰 고비다. 이후 업무에 복귀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결혼이나 임신을 미루는 후배도 적지 않다. 스카우트를 제의해온 여러 방송사가 모두 출산을 하고 오면 좋겠다고 했는데, 채널A에서만 ‘어차피 함께 일할 건데 배가 부른 게 왜 문제가 되느냐’고 해 감동받았다.”
그는 2007년 벤처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과 1년여 교제 끝에 결혼했다.
▼ 결혼 후 일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던가.
“우리 딸이 지금 생후 5개월인데 한동안 낮밤이 바뀌어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동이 틀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 하찮은 사람은 없겠구나. 내가 미워하는 누군가도 그 어머니가 이 정도의 고통은 감수하면서 키웠겠구나. 그럼 내가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다.’ 간혹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을 보면 기막혀서 ‘인간도 등급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젠 그게 아닌 것 같다.”
10년 후에도 방송하고 싶어
▼ 어릴 때부터 말을 잘했나.
“수다스럽긴 했다. 말이 빠르고 TV 보기를 좋아해 엄마에게 꾸중도 많이 들었다. 재치 있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지금도 ‘쾌도난마’ 박종진 선배나 개그맨 유재석 씨처럼 촌철살인의 순발력을 지닌 사람을 보면 부럽다.”
▼ 정치를 할 생각은 있나.
“없다. 채널A에 오기 전 정치권에서 손을 내민 적이 있다. 당시 아버지가 ‘그쪽으론 고개도 돌리지 마라’고 하셨다. 나 역시 훈수를 잘 두는 사람이 바둑을 잘 못 두듯, 정치는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사투리가 심했을 텐데 어떻게 교정했나.
“경북 달성군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살았다. 말이 빠르고 경상도 사투리가 심해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었다. 그림일기도 사투리 발음대로 썼을 정도다. 친구가 없어서 많이 울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노력해서 고쳤다. 사투리 교정하는 데 한 달 넘게 걸렸는데, 다시 부산 내려가니 사투리 쓰는 데는 하루도 안 걸리더라(웃음).”
▼ 후배 아나운서에게 자주 해주는 말이 있다면.
“말에 갇히지 말라고 한다. ‘너는 이런 스타일이야’라는 말을 들어도 흘려버리라고 조언한다. 아나운서 초창기 상사한테 ‘너는 평생 뉴스랑 안 어울릴 거야’라는 말을 듣고 몹시 상처받았던 적이 있다. 누군가가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평가하거나 규정한 말에 얽매이면 이 일을 하기 힘들다. 섣부른 판단과 평가가 정말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리더가 흔치 않다.”
▼ 10년 후엔 어떤 모습일까.
“그때도 방송을 하고 있으면 좋겠다. 아침 최저기온이 영상 11℃라면 시청자가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게 ‘저처럼 추위를 많이 타는 분이라면 블라우스에 재킷, 스커트 차림은 춥습니다’라고 말해주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 그게 진정한 정보 전달자라고 생각한다.”
이들 아나운서 지망생이 닮고 싶어 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 채널A 아나운서 팀장 이언경(37·사진) 씨다. 상대가 누구든 분야와 지위에 구애받지 않고 분위기를 편안하게 이끄는 아나운서로 정평이 났다. 그는 현재 종합편성채널 채널A 시사프로그램 ‘이언경의 세상만사’를 진행하고 있다. 실시간 뉴스에서부터 정치 심층 분석, 북한 생활, 경제 뉴스 등 사회적 이슈와 화제를 깊이 있고 날카롭게 다룬다. 결혼과 출산을 겪은 여자 아나운서가 자기 이름을 내걸고 매일(월~금요일) 2시간씩 생방송 시사프로그램을 단독 진행하는 건 아직까지 드문 일이다.
10월 11일 ‘이언경의 세상만사’에서 소개한 질문학습법이 주부들 사이에서 엄청난 화제였다.
“아나운서들도 대본을 읽고 돌아서서 말로 되뇔 수 있는 건 오래 기억한다. 질문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기억시간을 늘리는 질문학습법이 실제로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일방적인 강의보다 학습효과가 높다는 실험 결과도 있지 않은가. ‘세상만사’가 시사프로그램이지만 경제, 교육 정보도 간간이 다뤄서 오후 2~4시에 비교적 덜 바쁜 주부들이 관심 있게 보는 것 같다(웃음).”
▼ 진행하면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8월 중순 새누리당 공천헌금 사건이 터졌을 당시 정치평론가들이 대담을 나누는 ‘여의도 Now’라는 코너에서 8월 말이면 민주통합당에서도 공천헌금 사건이 터질 거라고 예견했는데 그대로 됐다. 공천헌금이라는 말도 공천뒷돈으로 고쳐 쓰고 있다. 공천헌금의 성격이 뇌물이나 뒷돈인 만큼 헌금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본 것이다. 그 뒤 몇몇 언론과 방송에서도 공천뒷돈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럴 때 우리 프로가 반응이 있구나 하고 느낀다. 소소한 재미가 있다.”
잘 들어주는 아나운서
▼ 시청자 게시판이나 인터넷 블로그에 ‘남 이야기 잘 들어주는 아나운서, 시청자의 공감을 잘 이끌어내는 아나운서’라는 칭찬이 자자하다. 비결이 뭔가.
“그런 건 없다. 출연자의 말을 성심성의껏 듣고, 전문지식이 부족한 시청자 처지에서 궁금한 점을 묻는 것이 내 임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사전에 공부를 많이 해서 논리적으로 접근하려 했는데 광대한 영역을 모두 섭렵하는 건 내 능력 밖이었다. 나그네 윗옷을 벗기는 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빛이듯 사람 속내를 끌어내는 방법도 그와 다르지 않다.”
▼ 어쩌다 아나운서가 됐나.
“부산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부산 KBS에서 리포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자연스럽게 방송에 끌렸고, 원주 MBC 아나운서 모집공고를 보고 응시해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계약 기간이 끝난 뒤에는 외환위기 영향으로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 지역방송사에서 일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 후 MBN에서 8년간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했고 종합편성채널이 생기면서 여러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낯가림이 심한 데다 출산을 앞두고 있어 이직을 고려하지 않았는데, 지인들의 권유와 임신부에 대한 채널A의 배려가 마음을 움직였다.”
▼ 어떤 배려였나.
“프리랜서 여자 아나운서에겐 결혼과 임신이 큰 고비다. 이후 업무에 복귀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결혼이나 임신을 미루는 후배도 적지 않다. 스카우트를 제의해온 여러 방송사가 모두 출산을 하고 오면 좋겠다고 했는데, 채널A에서만 ‘어차피 함께 일할 건데 배가 부른 게 왜 문제가 되느냐’고 해 감동받았다.”
그는 2007년 벤처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과 1년여 교제 끝에 결혼했다.
▼ 결혼 후 일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던가.
“우리 딸이 지금 생후 5개월인데 한동안 낮밤이 바뀌어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동이 틀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 하찮은 사람은 없겠구나. 내가 미워하는 누군가도 그 어머니가 이 정도의 고통은 감수하면서 키웠겠구나. 그럼 내가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다.’ 간혹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을 보면 기막혀서 ‘인간도 등급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젠 그게 아닌 것 같다.”
10년 후에도 방송하고 싶어
‘이언경의 세상만사’를 진행하는 아나운서 이언경.
“수다스럽긴 했다. 말이 빠르고 TV 보기를 좋아해 엄마에게 꾸중도 많이 들었다. 재치 있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지금도 ‘쾌도난마’ 박종진 선배나 개그맨 유재석 씨처럼 촌철살인의 순발력을 지닌 사람을 보면 부럽다.”
▼ 정치를 할 생각은 있나.
“없다. 채널A에 오기 전 정치권에서 손을 내민 적이 있다. 당시 아버지가 ‘그쪽으론 고개도 돌리지 마라’고 하셨다. 나 역시 훈수를 잘 두는 사람이 바둑을 잘 못 두듯, 정치는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사투리가 심했을 텐데 어떻게 교정했나.
“경북 달성군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살았다. 말이 빠르고 경상도 사투리가 심해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었다. 그림일기도 사투리 발음대로 썼을 정도다. 친구가 없어서 많이 울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노력해서 고쳤다. 사투리 교정하는 데 한 달 넘게 걸렸는데, 다시 부산 내려가니 사투리 쓰는 데는 하루도 안 걸리더라(웃음).”
▼ 후배 아나운서에게 자주 해주는 말이 있다면.
“말에 갇히지 말라고 한다. ‘너는 이런 스타일이야’라는 말을 들어도 흘려버리라고 조언한다. 아나운서 초창기 상사한테 ‘너는 평생 뉴스랑 안 어울릴 거야’라는 말을 듣고 몹시 상처받았던 적이 있다. 누군가가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평가하거나 규정한 말에 얽매이면 이 일을 하기 힘들다. 섣부른 판단과 평가가 정말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리더가 흔치 않다.”
▼ 10년 후엔 어떤 모습일까.
“그때도 방송을 하고 있으면 좋겠다. 아침 최저기온이 영상 11℃라면 시청자가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게 ‘저처럼 추위를 많이 타는 분이라면 블라우스에 재킷, 스커트 차림은 춥습니다’라고 말해주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 그게 진정한 정보 전달자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