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의 대표작 ‘논어’를 쓴 공자.
먼저 공자는 잠자리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논어’ 향당(鄕黨)편은 공자가 잠자는 모습을 흥미롭게 묘사했다. 일반적으로 공자 같은 성인은 팔다리를 쭉 펴고 반듯하게 누워서 잠을 잘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 공자는 모로 누워 구부린 자세로 잠을 잤다. 오히려 ‘침불시(寢不尸)’라는 표현처럼 죽은 듯이 팔다리를 쭉 펴고 반듯하게 누워 자는 자세를 반대했다.
왜 그랬을까. 허준이 남긴 ‘동의보감’은 이렇게 설명한다.
“몸을 옆으로 하고 무릎을 구부려 누워 자면 심기(心氣)를 보호해주며, 잠이 깨어 다리를 바로 뻗으면 정신이 흩어지지 않는다. 다리를 쭉 뻗고 반듯이 누워 자면 마귀와 도깨비가 범접하게 된다.”
공자는 옆으로 누워 자는 것이 건강에 더 좋다는 것을 이미 알아챘던 듯하다. 사실 건강한 사람은 하룻밤 사이 20~30회 몸을 뒤척거리며 잔다고 한다. 건강한 아이의 경우 온 방 안을 헤집듯이 몸을 움직이며 자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니 시체처럼 반듯하게 누워 자는 사람은 기력(氣力)이 쇠한 몸 상태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는 또 늘 잠옷을 입었다. 숙면을 위해 자기 몸길이보다 반쯤 더 긴 옷을 챙겼다고 한다. 그리고 철에 맞는 잠자리를 골라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더울 때는 시원한 곳에서, 추울 때는 따뜻한 곳에서 자는 것이 생체 리듬을 거스르지 않아 질환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
한편 공자는 세상 사람에게 나이가 들면서 경계해야 할 세 가지를 조언했다. 젊었을 때는 혈기(血氣)가 안정되지 않았으므로 색(色)을 경계해야 하고, 장년에 이르러서는 혈기가 한창 강건하므로 싸움을 경계해야 하며, 노년에는 혈기가 이미 쇠약해졌으므로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무병장수의 첩경이라는 것이다. 어려서 색에 탐닉하는 것은 건강을 해치는 지름길이고, 나이가 들어서는 복잡다단한 인간관계에서 후덕하게 처신해야 자신을 지킬 수 있으며, 늙어서 탐욕을 부리면 자신을 망치게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수칙과 함께 공자가 장수(長壽) 요체로 무엇보다 우선시한 것은 도덕 수양 덕목인 인(仁)이었다. 공자는 “인자(仁者)야말로 장수하는 삶을 누릴 수 있다(仁者壽)”고 하면서 여러 비유를 들어 인자를 강조했다. 인자는 동(動)과 정(靜)을 구분하며, 지나침과 모자람을 모두 경계하는 중용(中庸)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또한 깊이 생각하며 근신할 줄 알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닥쳐도 근심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즉 늘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인자는 음식을 지나치게 먹지도 않거니와, 몸을 너무 피곤하게 하거나 너무 편안하게 놔두지도 않는다. 감정을 다스리는 데서도 마찬가지다. 공자는 ‘시경’(詩經·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으로 시 3000여 편을 공자가 300여 편으로 간추림)에 있는 관저(關雎)편의 시를 두고 “즐거우나 음란하지 않고(樂而不淫), 애처로우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哀而不傷)”고 하면서 “조화를 이뤘다”고 칭찬했다. 한마디로 감정이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않으면서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시가(詩歌)라는 것이다.
그러한 공자도 70세 나이에 사랑해 마지않던 수제자 안회(顔回)를 잃자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하고 통곡했고, 그 얼마 뒤 또 다른 애제자 자로(子路)마저 위나라에서 불행하게 죽자 급기야 병을 얻어 그 이듬해인 73세에 세상을 떴다. 이미 연로한 나이에 사랑하는 두 제자가 죽으니 어찌 마음이 상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감정의 중용 여부를 떠나 바로 그러한 인간적인 모습에서 공자에 대한 존경심이 더 깊어지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