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디고운 보랏빛 초롱을 닮은 꽃을 피우는 금강초롱.
무더위가 한풀 꺾인 이즈음 깊은 산, 맑은 곳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곱고 귀한 우리 꽃이 있습니다. 바로 금강초롱입니다. 강원도 산지나 경기도 명지산, 경북 황악산 같은 높고 깊은 산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꽃입니다. 바위틈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서서 보랏빛 초롱을 닮은 꽃을 피우는 금강초롱을 보면 감히 누가 그 흉내를 내볼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요. 금강초롱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이 식물의 역사와 의미를 구태여 따져보지 않더라도 짧은 감탄과 함께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우리 꽃 산책’에 첫 번째 꽃 친구로 금강초롱을 소개하는 것은 이 꽃의 특별한 아름다움이나 꽃이 피는 시기가 바로 이즈음부터라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 꽃이라는 이름에 가장 걸맞은 식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자생 식물이 4000여 종 있답니다. 그 가운데 전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그러니까 이 땅에서 사라지면 지구에서 멸종하게 되는 식물이 300종인데 이들을 특별히 ‘특산식물’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금강초롱은 여기에 그치지 않지요. 식물 집안(속) 자체가 통째로 ‘특산 집안’인 것은 통틀어 일곱 개밖에 없는데, 그중 하나가 금강초롱 집안입니다. 게다가 분포범위 자체가 좁으니 세계적으로 보면 꼭 보전해야 하는 희귀식물이지요.
금강초롱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밤에 불을 밝히는 초롱을 닮은 꽃이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꽃을 한번 보면 그 고운 이름이 딱 어울린다는 것을 절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이름은 이렇게 고운데 세계 사람들이 공통으로 쓰는 학명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식물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나카이라고 하는 일본인 식물학자입니다. 그가 자신을 촉탁교수로 임명하고 우리나라 식물을 조사하도록 지원해준 하나부사에게 보은의 뜻으로 학명을 하나부사야 아시아티카 나카이(Hanabusaya asiatica Nakai)라고 정해버린 것입니다. 하나부사는 한일병합의 주역이자 조선총독부 초대 공사를 지낸 인물이니 참으로 치욕적인 사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도 학명이란 것은 세계적인 약속이니만큼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렇게 풀 한 포기에도 나라 잃은 아픔의 역사가 담겨 있답니다. 광복절이 있는 8월에 꼭 기억해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 땅 우리 꽃에 대한 사랑의 첫걸음은 지금 피고 지고를 거듭할 이 땅의 금강초롱을 한번 제대로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주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