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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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과 농민이 있다 고로 난 존재한다”

김수공 농협 농업경제 대표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12-08-20 09: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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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과 농민이 있다 고로 난 존재한다”
    김수공(58) 농협 농업경제 대표는 38년간 농협에서 근무했다. 그중 33년을 광주·전남 지역에서 농민과 살을 부대끼며 살았다. 그는 “농사꾼과 다름없는 세월이었다”며 시골 농부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는 현재 농협이 농촌과 농민을 상대로 벌이는 모든 경제사업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전남 장성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김 대표는 농협대학에 입학하면서 농업, 농협과 인연을 맺었다. 학비가 공짜였던 농협대학에는 전국에서 가난한 수재들이 몰려들었다.

    “우연히 진학 안내책자를 봤어요. 그런데 전부 공짜인 학교가 있더라고요. 그게 농협대학이었어요. 당시 우리 앞 동네에 사는 어떤 양반이 농협에 근무했는데, 사는 게 괜찮아 보였어요. 밥은 먹겠더라고요. 그래서 농협대학에 가기로 결심했죠.”

    먹고살려고 시작한 공부와 일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농업과 농협에 빠져들었다. 중앙회에서 일할 기회가 일곱 번이나 찾아왔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농촌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농부들과 얘기하고 밥 먹으며 사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김 대표는 “‘농업, 농촌, 농민이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내 삶의 모토”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직접 부딪쳐 보지 않은 사람은 ‘농심(農心)’의 깊이를 알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아무리 못난 것이라도 자기가 키운 농산물을 자식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농심”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농민들은 상품을 포장할 때 상품성이 떨어지는 걸 알면서도 작고 못생긴 것을 같이 넣어요. 사는 사람은 싫어하죠, 농민이 소비자를 속인다고. 그런데 사실 그게 아니에요. 농민한테 가서 이유를 물어보면 ‘다 같은 자식인데 이것도 좀 가져가서 드시라고 넣은 겁니다’ 그래요. 그게 바로 농심이에요.”

    농업 현장을 떠날 수 없었던 사람

    ▼ 농협 직원으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은 뭔가요.

    “2001년 전남 진도농협 지점장으로 일할 때가 기억나네요. ‘대파사건’이란 게 벌어져서 아주 난리도 아니었어요. 대파 값이 폭락해 농민들이 시위를 하고 농민회장은 구속되고 농민은 최저가격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 그런 곳에 제가 해결사로 투입됐어요. 여기저기 많이도 쫓아다녔죠. 경찰서에 가서 사정도 하고 탄원서도 내고. ‘지부장인 내가 책임질 테니 구속된 분들을 풀어달라’고도 했어요. 그렇게 해서 두 달 만에 일을 깔끔히 정리했어요. 농림부와 농협에서 무이자 자금도 구해와 농민에게 나눠주고.”

    ▼ 농민들이 고마워했겠어요.

    “1년 만에 진도를 떠나는데 농민회에서 감사패를 주더라고요. 아마 농민회에서 농협 지부장한테 감사패를 준 사례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예요. 저는 그때 일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해요.”

    ▼ 오랜 농업 현장 경험이 느껴집니다.

    “농협 내에서 저보다 더 농업 현장을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만큼 농민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뭘 원하는지 잘 알죠. 제가 가진 유일한 무기이자 자산이에요.”

    ▼ 농민들이 농협에 바라는 건 뭐라고 생각하나요.

    “예나 지금이나 농민들이 농협에 바라는 건 똑같아요. 자식 같은 농산물이니 제발 제값을 받고 팔아달라는 거예요. 다른 건 없어요.”

    ▼ 농업경제지주를 만든 것도 그런 이유인데요.

    “맞아요. 정확히 말하면 ‘이제 농협이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모든 농산물을 책임지라’는 의미죠. 제가 부여받은 과제는 전국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의 50% 이상을 농협이 책임지는 거예요. 시간은 걸리겠지만 꼭 해야 할 일이죠. 농협을 판매중심 조직으로 개편하겠다는 게 저와 농협의 계획이에요.”

    ▼ 생산물 판매시장에서 현재 농협 위치는 어떤가요.

    “산지유통의 경우 농협이 43% 정도를 담당해요. 잘되고 있는 거죠. 문제는 소비지 유통이에요. 아직 농협 비중이 10% 정도에 불과해요. 그러다 보니 농협이 가격조정 기능, 물가조정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죠. 그동안은 정부도 소비지 유통을 민간이 주도하도록 했고요. 저는 이것을 당장 15% 이상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봐요. 경기 안성·평택, 경남 밀양, 전남 장성 등에 물류센터 건립을 추진하는 것이나, 한국수퍼마켓연합회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도 다 그런 목적으로 추진하는 거예요.”

    ▼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 생산에도 농협이 관심을 쏟아야 할 텐데요.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 생산은 농민이 바라는 것이기도 해요. 그 문제에 대해선 제가 소비자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우리가 믿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할 테니, 그 대신 제값을 주고 사서 드시라는 거예요. 그래야 농민이 더 좋은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어요. 저희가 10월 경기 광주에 친환경 농산물 유통센터를 건립하는데, 아마 우리 농업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거예요.”

    ▼ 농협 경제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업성을 갖추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표로서 고민이 많을 듯한데요.

    “네, 맞아요.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돈을 벌 수 있어야 해요. 먼저 경제지주 산하에 자회사를 여러 개 만들 계획이에요. 농협양곡회사도 하나 만들고, 농협공판, 농협식품도 만들어서 제대로 된 사업을 하려고요. 이미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어놓은 상태예요.”

    직원들에게 매주 편지 보내는 CEO

    김 대표는 매주 6000명이 넘는 직원에게 ‘행복통신’이라는 이름의 통신문을 띄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직원에게 알린다. 인터뷰 도중 김 대표는 자신이 보냈던 통신문 하나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1960년대 전남도지사를 지낸 김재식 전 지사에 대한 글이었다. 글에서 김 대표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주말에 그분을 찾아뵙고 왔습니다. 쌀의 문익점을 자처하시며 고향에 쌀나무를 심고 개량해 농민에게 행복을 찾아주시겠다는 분입니다…. 그분은 ‘농민의 행복을 찾아 만년을 헤매다가 아쉬움만 남기고 이 자리에 누워서도 농민의 행복과 풍년을 기원하노라’는 묘비명도 미리 지어놓고 계십니다. 제가 나중에 그분 묘 앞에 그 묘비를 세워드리려고 합니다.”

    ▼ 마지막으로 우리 농업과 관련해서 꿈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김재식 전 지사가 전남 장성에서 ‘쌀의 집’이라는 걸 운영해요. 전남 해남군 옥천농협에서 나오는 ‘한눈에 반한 쌀’을 만들어냈죠. 저는 그곳에서 근무할 때 그분과 같이 쌀농사연구회를 만들기도 했어요. 생산비를 낮추면서도 질 좋은 쌀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저는 그런 일을 하는 게 무척 좋아요. 작은 노력이 계속 성공을 거두다 보면 언젠가는 협동이상촌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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