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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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경제 주도권 건들지 마!

브라질 메르코수르 vs 멕시코 태평양동맹 세 불리기 치열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입력2012-08-13 11: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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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남미 경제 주도권 건들지 마!

    메르코수르 4개국 정상들이 협력을 다짐하고 있다(왼쪽). 태평양동맹 회원국 정상들과 외교부 장관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남미에서 브라질과 멕시코가 각각 주도하는 경제블록이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중남미는 아메리카에서 캐나다와 미국을 제외하고, 과거에 라틴 민족 국가들의 지배를 받아 라틴 전통을 배경으로 갖는 지역을 말한다. 중남미에는 모두 33개국이 있으며, 총넓이는 약 2000만km2, 인구는 약 5억 명에 이른다.

    중남미는 중미, 카리브해, 남미 등 크게 3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또한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를 옛 종주국으로 하고 가톨릭을 믿는 등 라틴 문화의 영향을 받은 20개국과 영국,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던 13개국으로 나뉘기도 한다. 라틴 문화권에 있는 20개국이 중남미 전체 넓이와 인구의 98%를 차지하기 때문에 중남미를 라틴아메리카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남미는 또 각국 정권 성격에 따라 우파, 좌파, 급진좌파로 구분된다. 중남미에서 경제 1위 국가인 브라질은 남미에서, 2위 국가인 멕시코는 중미에서 각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인구 약 5억 명 라틴 문화권

    특히 브라질은 중남미에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사실상 맹주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남미 대륙의 47%를 차지하는 국토 넓이(870만km2)와 인구 1억9990만 명(세계 5위)을 가진 브라질을 따라갈 만한 중남미 국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라질 국내총생산(GDP)은 남미 전체 GDP의 40%에 해당한다. 브라질은 지난해 GDP 규모에서 세계 6위로 도약했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고도성장 가도를 달려온 브라질 경제에 최근 급제동이 걸렸다. 지난해 GDP 성장률은 전 세계 평균인 3.9%를 밑도는 2.7%를 기록했다. 브라질 정부는 올해 GDP 성장률이 3%를 기록하리라고 보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2.5%로 예상했고, 민간 경제연구기관들은 1%대에 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브라질 경제가 주춤하는 이유는 지난 10년간 원자재 수출을 무기로 내세웠던 이른바 ‘룰라 모델’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룰라 모델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경제정책을 말한다. 룰라 전 대통령은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재임하는 동안 임금 인상과 복지, 신용 확대 등 강력한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면서 중산층을 30% 이상 증가시키는 등 브라질 경제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룰라 모델은 국가 주도 소비에 지나치게 치우쳤다는 결함이 있다. 브라질 정부는 유럽 국가들처럼 세금을 많이 거둬 공무원 봉급 인상, 연금 확대 등에 마구 썼다. GDP에서 국고 세입 비중이 36~38%로 한국(25%)보다 훨씬 높다. 반면 투자는 GDP의 19%에 그친다.

    실제로 브라질의 사회간접자본은 열악한 수준이다. 막대한 천연자원을 효율적으로 수출하기 위한 도로와 항만 시설이 부족하다. 브라질의 컨테이너 수출 비용은 개당 900달러로 중국의 2배, 인도의 1.5배이며, 수입 비용은 중국의 3배, 인도의 2배 수준이다. 브라질 석유재벌인 에이크 바티스타는 “항구에서 선박이 최장 90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재앙”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또 숙련된 노동자를 양성하는 데도 소홀했다. 브라질은 읽기, 수학, 과학 능력을 평가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열악한 교육환경 탓에 브라질의 생산성은 지난 10년 동안 1.5% 증가에 그쳐, 4%를 기록한 중국에 크게 뒤처졌다. 심해 유전 발굴로 일손이 크게 달리지만 빈자리를 채우기 힘들 정도로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

    룰라 후계자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브라질 경제의 어려움을 타개하고 앞으로 중남미 경제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남미공동시장, 즉 메르코수르(Mercado Com?un del Sur·Mercosur)를 확대 개편하는 결단을 내렸다. 메르코수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 남미 4개국이 1991년 3월 26일 아순시온 협약을 통해 창설한 지역 경제공동체다. 이들 4개국은 1995년 1월 1일부터 관세 등 무역장벽을 전면 철폐하는 등 역내 무역 자유화를 통해 경제통합을 추진해왔다.

    메르코수르는 자유무역협정(FTA)에서 한 단계 발전한 관세동맹에 해당하며, 회원국 간 무역에선 90% 품목에 대해 무관세를 시행하고, 비회원국에 대해선 공통 관세율을 적용한다. 창설한 지 꽤 오랜 기간이 지났지만 메르코수르는 그동안 새 회원국을 받지 않았다. 정치체제와 경제 수준이 다른 남미 국가들을 통합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메르코수르가 7월 31일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특별 정상회의를 열고 베네수엘라를 다섯 번째 회원국으로 전격 받아들였다.

    베네수엘라가 메르코수르 정회원국이 되는 데는 6년이 걸렸다. 메르코수르 정상들은 2006년 7월 베네수엘라의 회원국 가입에 합의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의회도 모두 가입안을 승인했지만 파라과이 의회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반민주적 통치를 문제 삼아 가입안을 거부한 탓에 지금까지 준회원국에 머물렀다.

    베네수엘라 무리한 가입?

    이번에 베네수엘라의 가입이 가능했던 이유는 6월 파라과이 의회의 대통령 탄핵 사태로 메르코수르가 파라과이의 회원국 자격을 잠정적으로 정지했기 때문이다.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해 베네수엘라의 가입을 밀어붙였다. 호세프 대통령의 야심은 메르코수르를 통해 중남미 경제 주도권을 확보하고 에너지와 농산물 분야에서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호세프 대통령은 “메르코수르는 남미대륙 남부 파타고니아에서 중미와 카리브 지역에 이르는 거대한 블록으로 거듭났다”면서 자원 부국인 베네수엘라의 가입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베네수엘라는 원유 매장량이 2965억 배럴로 세계 1위다. 베네수엘라의 원유는 초중질유로 그동안 중동산 경질유에 비해 정제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 주목받지 못했지만, 정제 기술의 발달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그동안 쿠바식 사회주의 모델을 추종해온 중남미의 대표적 극좌파이자 반미주의자다. 이 때문에 호세프 대통령이 메르코수르의 몸집을 불리기 위해 무리하게 베네수엘라를 가입시킨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호세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합류로 메르코수르는 미국, 중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경제 단위가 됐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의 가입으로 메르코수르는 인구 2억7000만 명, GDP 3조3000억 달러, 넓이 1270만km2 규모로 커졌다. 남미 전체로 보면 인구 70%, GDP 83.2%, 넓이 72%를 차지한다.

    메르코수르는 또 볼리비아, 에콰도르, 수리남, 가이아나 등에 가입을 권유하는 등 세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호세프 대통령은 “세계 경제위기에 대처하려면 남미 지역이 결속력을 강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남미 모든 국가가 메르코수르에 합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남미의 대표적 극좌 국가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3개국이다. 이들이 모두 가입할 경우 자칫하면 메르코수르가 극좌 성향으로 기울면서 경제블록이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호세프 대통령이 이 점을 잘 알면서도 메르코수르의 세 불리기에 나선 것은 멕시코가 주도하는 ‘태평양동맹(Pacific Alliance, 스페인어 Alianza del Pacifico)’이라는 경제블록이 출범했기 때문이다. 멕시코, 칠레, 콜롬비아, 페루 등 중남미 4개국 정상은 6월 7일 칠레 북부 광산도시인 안토파가스타에서 태평양동맹 협정에 서명했다. 이들 4개국은 모두 태평양 연안에 자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페루를 제외하고는 중도우파가 집권하고 있으며 미국과 밀접한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지난해 6월 대통령에 취임한 오얀타 우말라 페루 대통령은 좌파지만 철저하게 우파 경제정책을 추진해왔다. 태평양동맹은 회원국 간 비자 면제를 최우선으로 실시하되, 장기적으로는 회원국끼리 FTA를 추진하고, 아시아 시장 공동 접근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상품과 서비스, 투자, 인적 자원을 활발히 교류하고, 에너지와 사회간접자본 부문 통합도 진행해나갈 예정이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태평양동맹이 가진 경제적 잠재력이 매우 크다”면서 “태평양동맹은 앞으로 FTA보다 더 폭넓은 협력을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중과 관계 설정이 변수

    태평양동맹은 인구 2억1500만 명, GDP는 중남미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조2000억 달러에 달한다. 특히 이들 4개국은 현재 중남미에서 경제 사정이 가장 좋을 뿐 아니라 앞으로 성장 가능성도 높은 민주국가다.

    IMF에 따르면 페루는 지난해 경제성장률 6.9%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6%대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석유, 석탄, 니켈 등 막대한 자원을 가진 콜롬비아는 올해 5%대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칠레는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으로 자원 부국이며, 멕시코는 올해 3.5% 성장이 예상되는 등 경제 기반이 탄탄하다.

    이들 4개국은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와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을 계획이다. 현재 이들 국가 중 콜롬비아를 제외한 멕시코, 페루, 칠레는 이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원국이며, 칠레와 페루는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 4개국은 모두 미국과 FTA를 체결했다. 우리나라도 멕시코를 제외한 3개국과 FTA를 맺었다. 태평양동맹은 앞으로 코스타리카와 파나마를 새 회원국으로 합류시킬 계획이다. 라우라 친칠라 코스타리카 대통령은 태평양동맹에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바 있다.

    메르코수르와 태평양동맹 가운데 어떤 경제블록이 중남미 경제의 주도권을 차지할지는 예측하기 이르다. 무엇보다 두 경제블록이 미국,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가 가장 중요한 변수다. 태평양동맹은 기본적으로 친미국가 모임이다. 그렇다고 중국과의 관계가 나쁜 것도 아니다.

    반면 메르코수르는 반미적 성향이 강하고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두 블록은 또 중국과는 경제협력 관계를 강화하기를 바라고 있다. 미국은 중남미에서 잃어버린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태평양동맹과의 관계 강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메르코수르는 물론 태평양동맹과도 경제적 유대를 유지하기를 원한다. 미국과 중국, 메르코수르와 태평양동맹의 복잡한 함수관계가 앞으로 중남미 경제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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