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연평해전 10주기를 앞둔 6월 14일, 유가족이 전사자들의 이름을 딴 유도탄고속함(PNG)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군사작전을 이해하려면 당시 정치·군사 정세와 작전양상, 지휘체계에 대한 제반사항을 살펴봐야 한다. 그러나 단편적이고 선택된 사실만을 부각해 마치 “햇볕정책만 아니라면 안보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식의 결론을 유도하는 것은 일방적이고 위험한 주장이다. 이런 선동이 먹혀드는 사회는 국가 이성이 마비되고 사이비 과학과 선동이 춤추는 위험한 사회다.
특히 일부에서 당시 교전을 온통 햇볕정책 탓으로 몰아붙이면서 엉뚱하게도 패전이 아니라 승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더욱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당시 교전이 승전이라면 햇볕정책에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공정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 우리 고속정이 제대로 응사 한번 해보지 못하고 침몰했는데, 이를 두고 승전이라 주장하고, 당시 승무원을 영웅시하는 억지 논리는 차마 읽기가 민망하다. 1999년 제1연평해전 당시 교전을 지휘해 승리로 이끈 박정성 전 2함대사령관(예비역 해군 소장)조차 이런 주장에 대해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억지스럽다”고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그나마 제1, 제2연평해전은 우리가 선제공격을 당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북의 도발자들을 응징한 전투다. 그러나 현 정부의 천안함, 연평도 포격사건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확실한 패전이다. 햇볕정책 때문에 연평해전이 일어났다면 현 정부의 패전은 달빛정책 때문에 일어난 것인가.
제2연평해전의 비극은 2002년 6월 29일 “북 함정과의 거리를 4km로 유지하라”는 해군본부의 권고와 “3km로 유지하라”는 정병칠 당시 2함대사령관의 지시가 있었음에도 합참 지시로, 우리 함정에 대한 도발을 준비하던 북 함정에 우리 참수리호가 150m까지 접근하면서 발생했다.
합참 지휘부의 월권
아무런 전투대형도 유지하지 않고 그렇게 접근하라는 지시는 누가 내렸나. 작고한 정병칠 당시 2함대사령관은 자신의 부하들이 합참 지휘부의 지시를 따랐다고 증언했다. 그것도 자신이 잠시 지하1층 상황실을 이탈해 사령관실로 올라간 사이 합참이 2함대 상황실에 직접 “차단기동을 하라”고 지시해 접근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현장 지휘관의 지휘권이 무력화된 것이다. 초계함이 후미에서 작전을 지휘하는 전투대형을 유지하지 못한 것은 비정상적인 지휘체계에서 비롯됐다. 잘못된 작전으로 화병을 얻은 정병칠 전 2함대사령관은 자책감을 이기지 못하다 2009년 사망했다.
북한 경비정은 함포가 빈약하기 때문에 우리가 3~4km 거리에서 작전을 하면 거의 당할 일이 없다. 우리 고속정 함포는 이 정도 거리에서 가장 정확히 명중시키기 때문에 거리를 유지하라는 지침은 당연한 것이었다. 게다가 선체를 직접 충돌시키는 차단기동이라고 하지만 150t급의 우리 고속정이 300t급의 북한 경비정과 충돌하는 것은 매우 불리하고 위험하다. 제1연평해전 당시 우리가 차단기동을 하면서 승리했다고 하지만, 그것도 엄밀히 따지면 북한 경비정을 정면으로 들이받은 것이 아니라 후미를 치는 방식이었다. 국민이 알고 있는 차단기동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제2연평해전 당시엔 차단기동을 지시한 지휘부의 책임이 은폐됐다.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실장 전병헌 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국정상황실 모 중령이 이를 담당했는데, 그는 합참의 작전본부, 한미연합사를 차례로 방문해 교전 당시 상황을 파악하고 해군 전대장들의 진술을 청취했다.
그런데 당시 이상희 합참 작전본부장과 남재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2함대에 대한 부적절한 지시는 언급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해군 함정이 기동하다 발생한 교전”이라고 진술했다. 해군 2함대의 전단장들도 “이전에도 빈번하게 차단기동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상황실 중령은 2함대사령관의 상황실과 지휘체계는 조사하지 않은 채 ‘작전 실패’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군 지휘부가 선제사격을 금지하고 5단계라는 복잡한 작전 절차를 해군에 강요한 점은 잘못이다. 정권에 책임이 있다면 당연히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교전수칙이 있다 해도 현장 군사력을 효과적으로 운용해 전투원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까지 정권이 책임지기는 어렵다. 그 책임을 이제 와서 묻겠다면 당연히 합참을 조사할 일이지 무턱대고 정권 탓만 한다면 이는 진실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반면 과거 정권이 제2연평해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선양하는 일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김대중 대통령이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고 월드컵경기를 참관하기 위해 일본으로 출국했던 일을 질타한 것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특정 정권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공세의 수단이 될 때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1996년 북한 잠수함을 통해 강릉에 침투한 북한 공작원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장병 17명에 대해 국가 차원의 합동 위령제는 아예 없었고 당시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장관은 영결식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난은 없다.
국민과 군 편가르기 여전
이런 편파적 의도는 정보 왜곡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정보사 예하 ‘쓰리세븐’ 부대장인 한철용 예비역 소장의 주장을 들어보자. 그가 2010년 발간한 ‘진실은 하나’라는 저서에 따르면, 제2연평해전 당시 김동신 국방부 장관과 국방부 정보본부는 북한의 의도적 도발로 의심되는 특수정보(SI) 14자 보고를 고의로 누락하거나 은폐하고 ‘우발적 충돌’로 결론냈다. 바른 보고를 했던 자신을 표적수사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처럼 당시 국방부 수뇌부가 이런 정보 왜곡을 저질렀다면 이는 단순히 유족의 손해배상청구 차원이 아니라 군 형법을 적용해 검찰이 수사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
그러나 한 전 소장 역시 정보가 왜곡됐다면 직을 걸고 이를 저지했어야 하고, 또 직언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교전이 끝나고 열흘도 더 지난 7월 10일 자신에 대한 징계가 결정되고 나서야 “장관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졌다”고 증언하는 대목에서는 의문이 생긴다. 만일 징계가 없었다면 지난 10년간 그가 양심선언을 하고 전역을 하고 진실을 밝히는 책을 쓰는 일도 없었을 것인가.
더 중요한 것은 만일 군 지휘부에서 그가 제공한 정보에 근거해 도발에 대비했다면 제2연평해전을 예방했거나 승전이 가능했다는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그의 저서를 아무리 읽어봐도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최근 해군 예비역 장교들 사이에서 당시 2함대사령부가 특수정보 14자 외에 각종 낱정보로 북한군의 도발징후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2002년 연평해전 당시 정보 전달과 판단 과정, 작전에 문제점이 드러났다면 이 점을 개선해 군사적 전문성을 보강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 들어와 더 악화됐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언제까지 정권과 햇볕정책만 탓할 것인지, 그렇게 국민과 군을 편가르기 하면 우리 안보에 어떤 이익이 있는 것인지 국민은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