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 호더가 방치한 개들.
㈔한국동물복지협회 동물자유연대와 SBS TV 프로그램 ‘긴급구조 SOS’가 전씨의 언니 순영(가명·54) 씨에게 제보를 받고 찾아간 전씨의 집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할 만큼 위생상태가 심각했다. 포화된 환경에서 집단사육을 당하는 개들은 스트레스를 풀 데가 없어 서로를 공격했다. 벽지와 장판은 다 뜯어졌고 미처 치우지 못한 배설물과 개털로 뒤범벅된 바닥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더럽고 냄새나는 집을 견딜 수 없었던 외아들은 집에 돌아오길 거부했다.
개와 고양이 수십 마리 방치
이처럼 자신의 관리능력을 넘어 동물을 과도하게 많이 사육하고, 키우던 동물과 떨어지는 것에 대해 심한 정신적 압박을 느끼는 사람을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동물과잉다두사육자)’라고 한다.
방송을 통해 전씨 사례가 보도된 지 2년여가 지났지만 애니멀 호더에 의한 동물학대 행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5월엔 부산 남구에 사는 20대 자매가 고양이 40여 마리를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포획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4마리를 키우다 개체수가 늘어났지만, 새끼 보는 재미에 분양하지 않은 채 계속 키웠고 결국 사람이 살 공간마저 없어지자 고양이들만 내버려둔 채 각자 고시원과 친구 집으로 피신하는 사태에 이른 것이다. 당시 현장을 찾은 동물학대방지연합 회원들은 집 안을 가득 메운 고양이 분뇨로 발생한 파리와 구더기 틈에서 탈진한 고양이들을 구조했다.
이에 앞서 3월엔 서울 망원동 한 아파트에서 냉장고에 고양이 사체 30여 구를 보관하고 지내던 50대 여성을 동물보호단체가 고발하는 일도 있었다. 수년간 악취와 소음에 시달려온 아파트 주민들이 제보해 알려진 이 사건을 인터넷 누리꾼들은 ‘망원동 고양이 애니멀 호더’라고 부르며 지탄했다. 조사 결과 이 여성은 서울시 중성화사업(TNR)에 투입된 포획업자로, 구조 과정에서 접한 고양이들을 지속적으로 데려온 것으로 밝혀졌다.
애니멀 호더가 저지른 숱한 동물학대 현장을 목격한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상임대표는 “애니멀 호더는 대부분 동물을 제대로 키울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돌봐줘야 한다는 의지도 없는 사람들로, 광적으로 수집에만 집착한다”면서 “그들 스스로는 동물애호가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애니멀 호더는 스스로를 동물애호가라고 자부하며 동물과 떨어지는 것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들을 설득해 피해 동물들을 구조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실제로 앞에서 소개한 사례의 장본인들은 모두 “내가 아니면 죽는다” “예뻐서 떼어놓을 수 없었다”며 동물에 대한 무한 애정을 표현해 주위에서 동물애호가로 통하던 사람들이다. 조 대표는 “동물을 아끼는 동물애호가와 동물 삶의 질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애니멀 호더는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반려동물과의 생활이 일상화한 현실에서 일반 사육자와 애니멀 호더를 구분 짓는 기준은 무엇일까. 애니멀 호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과잉사육으로 키우는 동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애니멀 호더는 대부분 경제적 여유가 없는 탓에 동물들은 최소한의 사료만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그러다 보니 동물들은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면역력 결핍으로 쉽게 병에 걸린다.
또한 좁은 공간에서 과밀사육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위생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 진드기나 기생충 감염, 각종 호흡기질환, 옴·파보·심장사상충·고양이에이즈 등 각종 전염병에 시달린다. 이것도 제때 발견하지 못하거나 발견했다고 해도 경제적 이유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심한 고통 끝에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
좁은 공간에 많은 개체가 모여 살면서 생기는 영역 다툼과 스트레스로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불임시술을 해주지 않아 무리 안에서 잦은 출산을 하면서 개체수가 마구잡이로 늘어나거나 제대로 관리받지 못해 출산 후 어미와 새끼가 모두 사망에 이르는 불행도 다반사다.
내년부터 반려동물등록제 시행
동물자유연대가 애니멀 호더의 손에서 구조한 개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동물학대 범위를 직접적인 폭력에만 국한하기 때문에 먹이를 주지 않거나 위생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정도로는 강제집행이 어려운 실정이다.
조 대표는 “동물에 대한 소유권을 강제로 뺏을 수는 없고 건강상태가 위험한 동물에 대해서만 긴급피난을 시킬 수 있는 정도다. 하지만 피난시켜 치료받게 해도 결국 다시 주인 품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매년 6000여 건 이상의 애니멀 호더 행위를 적발하는 미국에선 동물보호법을 통해 영양결핍, 스트레스 등 동물 복지에 관한 세부적 기준을 제시한 뒤 이를 어길 경우 법원 판결에 의해 키우는 동물을 강제압류하고 동물사육을 금지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3마리 이상, 싱가포르와 호주에선 ‘반려동물등록제’를 통해 4마리 이상의 동물을 키울 경우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도 내년부터 시행하는 ‘반려동물등록제’에 기대를 걸긴 하지만 등록제를 어긴다고 해도 강제로 사육을 못 하게 할 근거는 없기 때문에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조 대표는 “지금은 반려동물이 목숨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라 반려동물 삶의 질을 고려해야 하는 시대”라면서 “능력이 없으면서 무조건 동물을 받아들이는 행위를 자제하고 당국도 동물양육자들이 준수해야 할 세부사항을 정한 뒤 좀 더 강력한 처벌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