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정변 주역들. 가운데가 박정희 당시 소장.
박 의원의 5·16 군사정변에 대한 발언은 그가 가진 역사관이나 국가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캠프 실무진은 5·16 군사정변에 대한 의견을 이날 토론회의 예상 질문으로 뽑아 박 의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의원은 인터넷의 한 댓글 내용을 빌려 “5·16을 혁명으로 부르든 쿠데타로 부르든 우리나라 역사에 미친 영향이 바뀌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 뒤 “역사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식의 답변을 미리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박 의원은 여기에 “아버지가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발언을 덧붙였다. 캠프 관계자들은 “‘최선’이라는 본인의 가치관이 들어가면서 반대 진영의 공격 빌미가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휴전선은요?” 투철한 안보의식
박 의원의 5·16 군사정변에 대한 인식은 크게 두 가지다. 5·16 군사정변을 평가하는 데 당시 혼란했던 상황과 이후 이룬 성과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 본인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국민도 하나의 의견으로 인정하니 서로 강요하지 말자는 점이다. 후자를 강조하는 부분은 5년 전 당 대통령선거(이하 대선)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5·16은 구국혁명”이라고 말한 것보다 유연하게 바뀐 부분이기도 하다.
5·16 군사정변, 유신 등 아버지인 고(故) 박정희 대통령과 연계된 역사관 논쟁, 안보나 이념관이 투철한 그의 국가관 논쟁은 박 의원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박 의원으로선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소신이지만 그가 그토록 원하는 ‘표의 확장성’ 부분에서는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투철한 안보의식에 기반한 강력한 국가관을 체화한 상태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 한 첫마디가 “휴전선은요?”였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북한에게 사주받은 저격수 문세광의 총에 잃은 경험도 반영됐다.
이석기,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의 종북 논란이 일었을 때인 6월 1일 “국회라는 곳이 국가 안위가 걸린 문제를 다루는 곳인데, 기본적인 국가관을 의심받고 국민도 불안하게 느끼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두 의원이 자진 사퇴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원래는 여기까지가 준비된 발언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퇴를 거부할 경우 자격심사를 통한 의원직 박탈 방안에 대한 견해를 묻자 “사퇴가 안 되면 그렇게 가야 한다고 본다”며 제명에 동의하는 발언까지 했다. 당시 친박(친박근혜) 진영에서는 제명 발언까지 할 경우 “경직된 국가관을 가진 박 의원이 사상 검증을 주도한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그럼에도 박 의원은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번에 불거진 박 의원의 5·16 발언 논란은 대선 성패에 영향을 끼칠 만큼 치명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많은 데다 5·16 군사정변에 대해서도 ‘근대화의 초석’으로 생각하는 국민이 많기 때문이다. 박 의원도 7월 19일 “저같이 생각하는 분도 많이 있다”며 “그럼 저처럼 생각하는 모든 국민이 아주 잘못된 사람들이냐”고 말한 건 본인에 동조하는 의견이 많다는 자신감을 반영한 발언이다.
일각에서는 야권이 5·16 군사정변을 공격하며 ‘독재자의 딸’로 몰아붙일수록 ‘비전’ 제시보다 ‘과거 때리기’에 주력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어 야권에 부메랑이 될 개연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또 캠프에서는 어차피 나와야 할 논란이라면 선거에 치명적 영향을 끼칠 본선 때보다 경선 국면에서 미리 이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어차피 박 의원의 인식이 바뀔 것이 없기 때문에 이 논란이 오래가지 않으리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박 의원의 지지기반을 2040세대, 수도권, 중도 이념 등 ‘중원’으로 확장하는 데는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도덕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지율에 큰 영향은 주지 않겠지만 중도나 진보층이 튕겨나가는 점은 있을 것”이라며 “야권은 정수장학회나 5·16 군사정변 발언 등으로 박 의원을 ‘아버지 프레임’에 가둬놓으려 공세를 계속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5·16 발언으로 파생되는 역사인식 문제와 거기에서 비롯되는 이른바 자기중심적 사고에 대한 반발 때문에 중도층과 20, 30대가 멀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의 ‘과거형 인물’ ‘불통’ 이미지가 강화될 소지가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정수장학회, 최태민 목사, 동생인 박지만 부부와 관련한 공세 등 다른 네거티브 요소가 불거질 때 ‘불통 국가관’ 이미지는 그를 더욱 진흙탕으로 몰아넣을 소지가 크다. 박 의원이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이기 때문에 국가관 문제가 발생하면 그의 보수적 이미지는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출마선언과 ‘비욘드 박정희’
그렇지만 그도 이 부분에 대해 상당히 고민한 흔적은 엿보인다. 박 의원 측은 역사관과 국가관을 정면돌파하면서도 ‘과거’보다 ‘미래’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이다.
박 의원은 이번 대선 출마선언문에서 아버지의 상징인 ‘국가주의’를 넘어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중심으로 국가 운영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선언했다. 출마선언을 하는 동안 ‘아버지’란 단어도 스치듯이 한 번만 썼다. 그는 토론회에서도 “아버지 시대와 지금 시대는 엄연히 다른 세상이다. 완전히 달라진 이 시대에 맞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버지와) 하는 일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비욘드 박정희’의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번 출마선언을 앞두고 실무진이 2007년 출마선언 때 “아버지 시대에 민주화 과정에서 고초를 겪은 이들에게 사과한다”고 말한 것처럼 이번에도 출마선언문에 ‘과거와의 화해’ 메시지를 담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박 의원은 “우리나라 국민을 어떤 방식으로든 편을 가르듯 구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과거에 아픔을 겪은 국민에게 특권을 돌려주는 것이 이들에게 진정으로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굳이 과거로 돌아가는 식의 발언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