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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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20억? 포기하기엔 이르다

은퇴설계 2.0시대

  • 김동엽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입력2012-07-16 0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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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억? 20억? 포기하기엔 이르다
    “노후자금은 얼마나 준비해야 합니까?”

    은퇴자금이 궁금해 금융기관에 물어보면 적게는 10억 원, 많게는 20억 원이 필요하다는 답을 듣는다. 근거는 이렇다. 40대 가장이 65세에 은퇴해 85세까지 매달 200만 원씩 생활비로 쓴다고 가정하면 은퇴 시점에 10억 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은퇴 시점에 10억 원을 손에 쥐려면 매달 210만 원씩 저축해야 한다는 점이다(물가상승률 3.5%, 투자수익률 세후 4% 가정). 당장 먹고살기도 팍팍한 서민이 먼 미래를 위해 이만한 돈을 저축해야 한다니 어디 가능한 일인가.

    지금까지 금융기관이 해주는 은퇴설계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서민에게 노후에 대한 불안감만 조장했다. 노후준비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니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듣고 노후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사람보다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게 문제다. 어차피 아등바등 노력해도 안 될 일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편하게 살자는 게 보통 사람 생각이다.

    목돈 마련보다 현금흐름 창출

    상황이 이렇다면 노후에 대한 불안감만 조장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준비 방법을 제시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그러려면 우리가 노후자금 준비에 대해 갖고 있던 몇 가지 잘못된 고정관념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첫째, 노후자금을 은퇴 시점에 목돈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그보다는 월급처럼 매달 생활비가 나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은퇴할 때까지 10억 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럽지만, 은퇴 후에도 매달 200만 원 정도의 현금흐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하다.

    둘째,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 새롭게 만들어내려고 하니 힘든 것이다. 먼저 자신이 가진 것부터 점검해야 한다. 국민연금을 예로 들어보자.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현재 완전노령연금 수령 대상자가 매달 받는 연금은 평균 80만 원 정도다. 완전노령연금을 수령하려면 20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데, 국민연금제도를 1988년 도입했으니 이 글을 읽는 근로자는 대부분 수령 자격을 갖췄을 것이다.

    사는 집을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생각도 버리면 은퇴 후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자원이 된다. 살던 집을 담보로 연금을 받는 주택연금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현재 주택연금을 수령하는 사람은 평균 2억7000만 원 상당의 주택을 담보로 맡겨두고 매달 연금 103만 원을 수령한다. 은퇴자가 생활비로 매달 200만 원을 쓴다고 할 때 국민연금과 주택연금만 잘 활용해도 노후생활비의 70~80%는 충당할 수 있다.

    그러고도 부족한 자금은 퇴직연금과 추가 저축을 통해 마련해나가면 된다. 이런 면에서 노후준비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가진 자산과 소득 가운데 어떤 부분을 노후를 위해 할당할지 결정하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 옳다.

    셋째, 은퇴 전과 똑같은 규모로 생활비를 쓰겠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요즘 은퇴설계 분야에서 화두는 ‘다운사이징’이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져 많이 벌지 못하는 만큼 적게 써야 한다는 얘기다. 은퇴 후 가장 먼저 줄여야 하는 것은 주택 규모다. 우리나라 50대 가구의 평균 가구원 수가 3.13명인 데 반해, 60세 이상 가구의 평균 가구원 수는 2.59명이다. 실제 60세 이상 고령가구의 가족 수를 살펴봐도, 1인 또는 2인 가구가 70%를 차지한다. 이렇게 가족 수가 줄어든 만큼 주택 규모를 줄이는 것이 당연하다. 주택 규모를 줄이면 주거비도 적게 들게 마련이다.

    10억? 20억? 포기하기엔 이르다
    이 밖에 생활 전반에 불필요한 부분을 줄이면 은퇴 전에 비해 생활비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실제 통계를 보더라도 은퇴 후 생활비가 은퇴 전에 비해 큰 폭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2012년 1분기 가계수지 현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50대 가구 월평균 소비지출이 269만 원인 데 반해 60세 이상 가구는 166만 원으로 38.2%나 적었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교육비(90.2%), 통신비(50.2%), 의류비(45.4%), 오락·문화비(44.8%), 교통비(38.6%) 순으로 감소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비용이 늘어난 것은 보건의료비(1.4%)밖에 없었다.

    넷째, 수명이 늘면서 은퇴생활 기간도 덩달아 길어졌기 때문에 은퇴생활 기간을 하나로 볼 것이 아니라 특징에 따라 시기를 나눠 자금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은퇴전문가들은 은퇴생활 기간을 활동적인 시기, 회상의 시기, 간병의 시기로 구분한다. 은퇴 직후 10여 년간 이어지는 활동적인 시기에는 여행이나 레저 활동으로 비교적 생활비가 많이 든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활동량이 줄어들게 마련이고 그에 따라 소비도 감소하는데, 이 시기를 회상의 시기라고 한다. 아무래도 활동이 줄어들면서 과거를 추억하는 일이 많아 이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생활비 줄이고 의료비는 따로 준비

    10억? 20억? 포기하기엔 이르다
    나이가 들면 활동량이 줄고 생활비도 줄어든다. 이런 점을 감안해 노후자금을 산출하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금액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은퇴생활 막바지에 찾아오는 간병의 시기에 대비해 의료비는 따로 준비해두는 것이 좋다. 의료비는 생활비와 준비 방법이 다르다. 생활비는 필요 시기와 규모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의료비는 그렇지 않다. 질병이나 사고가 언제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을뿐더러 돈이 얼마나 들어갈지도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료비 문제는 일반 저축보다 보험상품으로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더욱이 베이비붐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융기관이나 노후전문가들이 과거처럼 불안감만 조장하고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노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만 조장하던 때를 ‘은퇴설계 1.0시대’라고 한다면, 이제는 구체적인 노후준비 방법을 제시하는 ‘은퇴설계 2.0시대’로 접어들어야 할 것이다. 은퇴설계 2.0시대에는 거액의 자금을 한꺼번에 마련하는 것보다 현금흐름 창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많이 준비하겠다는 생각보다 적게 쓰겠다는 마음가짐이 훨씬 유리하다. 그런 다음 현재 가진 재산과 소득 가운데 무엇을 얼마만큼 노후를 위해 내놓을지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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