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15일, 국회에서 일명 국회의원 신분법이 통과됐다. 기존 법안은 폐지하고 국회의원도 일반 국민과 똑같이 법을 적용받는다는 내용이다. 또한 법관, 변호사의 임용과 제명법, 그리고 SNS를 통한 허위사실 제조와 유포, 인신공격에 대한 처벌법까지 통과됐다. 야당은 단상을 점거하고 본회의장 문을 바리케이드로 막으며 결사적으로 저지했지만 여당은 두 배 가까운 인력을 동원해 강행 처리했다.
그 와중에서 울분을 참지 못한 민노당 소속 강기갑 의원이 단상에 뛰어오르는 사진이 신문에 보도되는 일도 있었다. 이른바 ‘공중부양’ 사건이다. 그러나 특별법은 통과와 동시에 입법화됐으므로 앞으로는 해머로 본회의장 문을 부수거나 의원 명패를 내던져 박살내는 의원이 있으면 즉시 현행범으로 수갑이 채워져 연행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조금 전까지 열띤 고성이 오갔던 방 안에 잠깐 정적이 덮이더니 이강래가 입을 열었다. 의원회관 이강래 의원실 안에는 강봉균, 김효석, 장세환까지 의원 넷이 둘러앉았다. 우연히 모인 것이다. 10월 17일 오후, 창밖은 청명한 가을 날씨였지만 넷은 하늘 쳐다볼 정신이 없다. 모두 뭔가에 쫓기는 듯한 다급한 기분이다. 누가 목을 조르는 것 같기도 하다. 강봉균은 어젯밤 가위에 눌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 이후 40년 만에 처음이라는 것이다.
“내가 검찰 관계자한테서 들었는데.”
하고 이강래가 뜸을 들였더니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다. 이강래가 말을 잇는다.
“오늘 중으로 최시중, 박영준, 신재민, 천신일까지 검찰에서 비리 수사를 시작한다는 겁니다.”
“어어.”
단말마의 외침을 뱉은 강봉균이 이강래를 보았다.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갑자기 왜? 누가 고발한 거요? 허, 누군지 몰라도 간이 부었구먼.”
“청와대에서.”
이강래가 말하자 방 안이 갑자기 조용해진 듯한 느낌이다. 모두 산전수전 다 겪은 터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대번에 감을 잡은 것이다.
“허어, 이런.”
입맛을 다신 김효석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측근 청소부터 하고 나서 홀랑 벗고 덤비겠다는 표시구먼.”
그러자 잠자코 있던 장세환도 거들었다.
“항상 기선을 잡는구먼, 이명박이.”
# 그날 오후, 이강래의 정보대로 이명박의 멘토이자 최측근으로 분류되던 방송통신위원장 최시중과 심복 박영준, 그리고 실세 신재민과 수십 년간의 친우 천신일을 포함한 인사 10여 명이 검찰에 소환됐다. 언론은 특종을 잡았다. 검찰에 소환된 실세들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박영준은 보도라인에 서서 인터뷰에 응하다 끝내 눈물을 보였다.
“화무십일홍이여.”
하고 홍대 앞 삼겹살집에서 소주잔을 든 오종택이 말했다. 오종택은 오늘도 출판사 사장 서상국과 함께였지만 머릿수는 셋으로 늘었다. 출판사 편집사원이면서 오종택의 대녀(代女)인 이애주를 데리고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 오종택은 줄줄이 대검 중수부로 들어간 이명박의 측근들을 씹는 중이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혔다.”
그러자 서상국이 머리를 저었다.
“아니지. 꽃이 피기도 전에, 달이 차기도 전에 끝난 셈이다.”
한 모금에 술을 삼킨 서상국이 말을 잇는다.
“싹을 잘라버린 셈이 됐어. 이제 이명박의 운신 폭이 훨씬 넓어졌다.”
그때 듣기만 하던 이애주가 머리를 끄덕였으므로 오종택의 눈썹이 솟았다.
“마, 왜 끄덕거려?”
“사장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서요.”
“그렇다고 혀도 대놓고 끄덕거리면 이 대부(代父)가 쪽팔리잖냐. 가만있지를 못하겄디?”
“네.”
이애주가 정색하고 대답하는 통에 오종택은 입맛을 다셨고 서상국은 풀썩 웃었다. 그때 이애주가 말했다.
“저는 정동영 찍었어요. 왜냐하면 정동영이 우리 처지를 좀 더 잘 이해할 것 같아서요.”
“아, 우리도 정동영 찍었다.”
하고 오종택이 말했지만 감동한 표정도 없이 이애주가 말을 잇는다.
“어른들은 다 제쳐두고 경제나 살리도록 하자면서 이명박을 찍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하고 오종택이 물었다.
“네 생각은 어때? 지금 잘 되어가는 것 같나?”
“아직 모르겠어요, 하지만.”
둘의 얼굴을 번갈아보던 이애주가 말을 잇는다.
“뭔가 뚫리는 느낌은 들어요.”
그 표현이 이상했는지 오종택은 눈만 껌벅였지만 서상국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신 묻는다.
“뭐가?”
“사회가요. 대화가요.”
“소통인가?”
“아직 시작인 것 같지만 변화가 오는 것이 느껴져요.”
그러더니 이애주가 덧붙인다.
“제 친구들도 다 그래요.”
그러자 서상국이 긴 숨을 뱉고 나서 말했다.
“그것 봐, 내가 뭐랬어. 세대결연이 결국 이명박이 작전이었다니까. 이젠 연임 개헌도, 교육감 임명제 개헌도 이명박이 뜻대로 되게 생겼어.”
# “외유하실 때가 되었지 않습니까?”
불쑥 물었던 이재오가 곧 덧붙였다.
“물론 이번 개헌 끝내고 말입니다.”
청와대 소식당 안이다. 원탁에는 이명박, 국무총리 한승수, 외교통상 장관 유명환, 이재오까지 넷이 둘러앉아 막 점심을 마친 참이었다. 오늘 모임은 외교 현안 문제로 총리와 외교통상 장관을 불렀다가 이재오가 합석한 경우가 되겠다. 셋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커피잔을 들면서 웃었다.
“산적한 국내 현안부터 처리해놓고 나가야지요.”
“취임 9개월째가 됐는데 한 번도 안 나가셨습니다. 오바마가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아이구.”
쓴웃음을 지은 이명박이 한승수와 유명환을 둘러보았다. 둘도 회의 때 그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이해해줄 겁니다. 굳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하고 요란하게 매스컴에 나타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고는 이명박이 정색했다.
“그보다도 내가 오늘 총리, 외교통상 장관하고 상의했는데.”
이재오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노 전(前) 대통령께 북한 특사를 부탁했더니, 요즘 집안 문제가 걸린다고 하셔서 김 전 대통령께 부탁했어요. 그때 이 의원이 보좌역으로 같이 가주셨으면 합니다.”
놀란 이재오의 입이 딱 벌어졌다가 닫혔다. 그러더니 겨우 묻는다.
“북한으로요?”
“예, 지금 김 전 대통령께서 준비를 다하고 계시는데 이 의원이 동행해주셨으면 해서요.”
“가지요.”
하고 나서 이재오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명박에게 묻는다.
“뭐, 김 전 대통령까지 모시고 가는데, 옛날 이후락 씨처럼 비밀리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건 아니지요?”
그러고는 한승수와 유명환을 보았지만 아무도 웃지 않는다. 1972년 5월, 중앙정보부 부장이던 이후락은 박정희 대통령의 특사로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후락은 김일성과의 회담을 통해 7·4남북공동성명을 성사시켰다.
“아닙니다.”
이명박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잇는다.
“6자회담 이전에 한국에서 대통령 특사가 공식 방문하는 것입니다.”
# 북한은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한 이후 적대적 자세로 돌변했는데, 그들 처지에서는 정동영의 당선이 바람직했을 것이다. 그날 오후 동아일보 편집국장 정상우는 청와대 대변인 이동관의 전화를 받는다.
“아이구, 웬일이십니까?”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있다가 청와대에 들어간 이동관에게 동아일보는 친정집이나 같다. 반기는 정상우에게 이동관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대통령 특사로 북한을 방문하실 계획입니다.”
“아이고, 그렇습니까?”
정상우가 반색한 이유는 특종을 받았기 때문이지 특사 방문에는 관심도 없다. 그때 이동관이 말을 잇는다.
“이번 방문 목적은 6자회담 전에 남북 간 핵문제를 합의하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전 정권에서 추진해온 남북 간 경협을 논의합니다.”
“그렇게 분명히 써도 됩니까?”
“그래서 내가 직접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 기사는 우리한테만 주시는 거죠?”
“그것이.”
이동관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배어났다.
“지금 모든 언론사에 보도자료가 나가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친정집에는 대변인이 직접 말해준다는 것뿐이었다. 통화가 끝났을 때 정상우가 투덜거렸다.
“씨발, 김샜네.”
# 10월 20일, 여당인 세우리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해산하고 당대표로 박근혜가 취임했다. 여론조사와 모바일 투표도 포함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전국에서 모인 당원 3만7000명의 직접투표로 대표를 선출한 것이다. 그리고 그날 현역의원들만의 투표로 원내대표를 선출했는데 정몽준이 당선됐다. 당총재인 대통령의 권한으로 전직 대통령 다섯은 세우리당 원로로 추대됐다.
그러나 개헌 파동을 이유로 전직 대통령 가운데 김대중, 노무현이 사퇴 의사를 밝히는 바람에 이명박은 다시 다섯을 ‘국가원로’로 개칭해 추대했다. 당대표 박근혜가 임명한 원내총무는 김무성이다. 또한 최고위원은 원내대표와 함께 선출됐고 안상수, 홍준표, 이한구, 유승민, 남경필, 임태희까지 여섯 명이다. 이젠 친박, 친이 구분이 모호해졌으며 당 내부에서는 박근혜 차기론이 대세가 되어가는 분위기지만 이른바 잠룡들도 기회를 노린다. 아직 차기까지는 4년 넘게 남았기 때문이다.
“독재라고 아우성치지만 국민이 뒤를 받쳐줘야 말이지.”
쓴웃음을 지은 홍준표가 소파에 등을 붙이고는 말을 잇는다.
“생각이 80년대 민주화투쟁 시대에서 딱 그친 사람들이야. 독재 반대를 외치면 그때처럼 호응할 줄로 생각했겠지.”
“세대결연이 절묘했어요.”
하고 안상수가 말을 받는다.
“그것으로 노장청(老長靑)의 소통이 시작됐으니까요.”
“아직 멀었습니다.”
이번에는 이한구가 말을 받았다.
“세대결연의 단순한 대부(代父), 대자(代子) 관계에서 국가관과 애국심을 배양하고 미래에 대한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보충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미 정부 차원에서 시행하는 사항이었으나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이곳은 국회 세우리당의 최고위원 회의실 안이다. 개헌 준비 회의를 마친 최고위원들은 여담을 나누고 있다.
지난번 국회의원 신분법 등 3개 법안이 통과되기 전, 야권과 시민단체는 대규모 반대 집회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서울 도심 밤거리를 촛불로 뒤덮었던 광우병 촛불시위가 불과 넉 달 전이라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시위 참가자가 가장 많았던 날이 1만 명 정도였고 민노총과 전교조 등에서 과격하게 나온 시위자는 가차 없이 체포됐다. 경계선을 넘은 시위자에게 경찰이 발포하는 바람에 다섯 명이 총상을 입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시위대가 ‘정권타도’ ‘이명박 축출’ ‘독재자 처단’ 같은 플래카드를 휘날리며 함성을 지르자 군이 성명을 발표한 것이었다. 국방부 장관 이상희가 TV 앞에 서서 “군은 조국과 대통령을 수호하기 위해 대통령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각 언론은 수경사의 특전단 병력이 실탄을 배급받고 비상대기 상태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특종 기사로 군 배후에서 전두환 원로가 작전을 지휘하는 증거를 찾아내 보도했다. 군이 투입되면 그 기회를 이용해 국회의원은 물론, 사회 전역에 침투해 있는 친북·종북 세력을 소탕한다는 것이었다. 곧이어 특전단이 기무사, 국정원, 검경의 공안부서와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는 정보도 흘러나왔다.
SNS의 위력은 대단했다. 청송교도소가 반역사범 전용으로 변경되어 현 수감자를 다른 곳으로 이감해 비우는 중이라는 정보도 퍼졌다. 또 20만t급 폐유조선 2척을 국보법 위반사범 전용 수감시설로 개조한 뒤 각각 2만 명씩을 수용해 공해로 끌어가서 버리고 올 예정이라는 정보도 떴다. 반역사범의 재산을 몰수하는 법안도 추진 중이라고 했다. 법안 공포 직전에 반역사범이 부동산을 팔았더라도 국가가 몰수한다는 것이었다.
출처가 불분명했고 곧 사라졌지만 시위대는 전두환 개입설이 보도됐을 때부터 썰물처럼 빠져나가더니 유조선 정보가 떴을 때는 시청 앞 광장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시위대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자아, 일합시다.”
하면서 남경필이 몸을 일으켰으므로 최고위원들은 따라 일어섰다. 그때 누군가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요즘 봉하마을 괜찮은겨?”
#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는 박연차 정관계 로비 사건으로, 2005년 4월 세종증권 인수에 태광실업 회장 박연차가 개입하면서 시작됐다. 박연차는 노무현의 절친한 후원자다. 그런데 그것이 지난 노무현 정권 때 이어져오다가 이번 이명박 정권 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검 중수부는 2008년 10월 현재 수백억 원의 비자금이 오간 증거를 확보했고, 그것이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노무현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내건 최대 무기는 도덕성이었다. 깨끗한 정치, 낡은 정치 타파를 기회로 내세운 노무현의 품성이 집권 성공을 이끌었던 것이다.
“이거.”
하고 이명박이 앞에 놓인 서류를 눈으로 가리켰다. 바로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현재까지의 검찰 수사 보고서다. 머리를 든 이명박의 시선이 앞에 선 민정수석 이종찬에게로 옮겨졌다.
“노건평 씨까지 연루된 것 같은데, 어디까지 갈 것 같나?”
“박연차는 구속이 불가피하고 노 전 대통령한테까지 닿을 것 같습니다.”
이종찬이 굳은 얼굴로 말을 잇는다.
“노 대통령 아들과 딸, 사모님의 소환조사도 불가피합니다.”
“빌어먹을.”
외면한 이명박이 혼잣소리로 말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것은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니다. 모든 일은 법대로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주 최시중, 박영준 등 최측근 10여 명을 스스로 자해하듯이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아무리 이쪽에서 솔선수범한다고 해도 강자(强者)의 횡포, 또는 복수극으로 간주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명박이 잇새로 말을 잇는다.
“내가 검찰에 이 정도에서 손을 떼라면 지금 당장은 말을 듣겠지.”
“….”
“복수니, 차별성이니 하면서 떠들던 야당과 시민단체도 입을 다물 것이고.”
머리를 든 이명박이 이종찬을 보았다.
“하지만 내 주변 관리는 힘들어질 거야. 그런 걸 다 덮어주었는데 우리도 좀 먹으면 어때 하는 심리가 될 거거든.”
그러고는 이명박이 길게 숨을 뱉는다.
“노 대통령이 안됐지만 어쩔 수 없어. 그 양반도 날 이해해줄 거야.”
# 이번은 방문 세 시간 전에 통보했기 때문에 기습방문이라 해도 될 것이다. 더구나 밤이다. 이명박은 민정수석 이종찬, 대변인 이동관만 대동하고 헬기로 날아왔다. 물론 봉하마을 주민들은 오밤중에 울린 헬리콥터 엔진음 소리에 기겁했을 것이다. 밤 10시 반이다. 노무현은 헬기장 근처까지 나오지 못했고 사저 대문 앞에서 이명박을 맞는다.
“아이고, 이기 웬일입니까?”
하면서 노무현이 정색했지만 짜증난 표정은 아니다. 노무현 뒤에는 전 홍보수석 윤승용이 혼자 서 있다. 윤승용의 안내로 집 안에 들어서면서 이명박이 인사치레로 묻는다.
“윤 수석, 요즘 바쁘신가?”
“예, 좀 바쁩니다.”
정색한 윤승용이 금방 대답했으므로 이명박이 다시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허, 무슨 일로 그렇게?”
“예, 구치소에 면회 다니느라고요.”
그러자 이명박과 노무현이 제각기 쓴웃음을 지었고 이동관은 몸이 굳어졌지만, 윤승용은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 응접실에 넷이 자리잡고 앉았을 때 이명박이 방 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사모님은 안 계십니까? 늦었지만 인사라도 드려야….”
“예, 몸이 좀 아파서요.”
입맛을 다신 노무현이 뒷머리를 손가락으로 긁적였으므로 이명박은 심호흡부터 했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답답한 김에 그냥 위로나 드리려고 이렇게 온 겁니다.”
그러고는 이명박이 길게 숨을 뱉는다.
“제 처지를 가장 잘 아실 분이 바로 노 전임이실 것입니다.”
그러자 노무현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이명박을 보았다.
“그러믄요. 잘 알지요. 어쨌든.”
노무현도 길게 숨을 뱉는다.
“위안이 되네요. 고맙습니다.”
그 와중에서 울분을 참지 못한 민노당 소속 강기갑 의원이 단상에 뛰어오르는 사진이 신문에 보도되는 일도 있었다. 이른바 ‘공중부양’ 사건이다. 그러나 특별법은 통과와 동시에 입법화됐으므로 앞으로는 해머로 본회의장 문을 부수거나 의원 명패를 내던져 박살내는 의원이 있으면 즉시 현행범으로 수갑이 채워져 연행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조금 전까지 열띤 고성이 오갔던 방 안에 잠깐 정적이 덮이더니 이강래가 입을 열었다. 의원회관 이강래 의원실 안에는 강봉균, 김효석, 장세환까지 의원 넷이 둘러앉았다. 우연히 모인 것이다. 10월 17일 오후, 창밖은 청명한 가을 날씨였지만 넷은 하늘 쳐다볼 정신이 없다. 모두 뭔가에 쫓기는 듯한 다급한 기분이다. 누가 목을 조르는 것 같기도 하다. 강봉균은 어젯밤 가위에 눌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 이후 40년 만에 처음이라는 것이다.
“내가 검찰 관계자한테서 들었는데.”
하고 이강래가 뜸을 들였더니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다. 이강래가 말을 잇는다.
“오늘 중으로 최시중, 박영준, 신재민, 천신일까지 검찰에서 비리 수사를 시작한다는 겁니다.”
“어어.”
단말마의 외침을 뱉은 강봉균이 이강래를 보았다.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갑자기 왜? 누가 고발한 거요? 허, 누군지 몰라도 간이 부었구먼.”
“청와대에서.”
이강래가 말하자 방 안이 갑자기 조용해진 듯한 느낌이다. 모두 산전수전 다 겪은 터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대번에 감을 잡은 것이다.
“허어, 이런.”
입맛을 다신 김효석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측근 청소부터 하고 나서 홀랑 벗고 덤비겠다는 표시구먼.”
그러자 잠자코 있던 장세환도 거들었다.
“항상 기선을 잡는구먼, 이명박이.”
# 그날 오후, 이강래의 정보대로 이명박의 멘토이자 최측근으로 분류되던 방송통신위원장 최시중과 심복 박영준, 그리고 실세 신재민과 수십 년간의 친우 천신일을 포함한 인사 10여 명이 검찰에 소환됐다. 언론은 특종을 잡았다. 검찰에 소환된 실세들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박영준은 보도라인에 서서 인터뷰에 응하다 끝내 눈물을 보였다.
“화무십일홍이여.”
하고 홍대 앞 삼겹살집에서 소주잔을 든 오종택이 말했다. 오종택은 오늘도 출판사 사장 서상국과 함께였지만 머릿수는 셋으로 늘었다. 출판사 편집사원이면서 오종택의 대녀(代女)인 이애주를 데리고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 오종택은 줄줄이 대검 중수부로 들어간 이명박의 측근들을 씹는 중이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혔다.”
그러자 서상국이 머리를 저었다.
“아니지. 꽃이 피기도 전에, 달이 차기도 전에 끝난 셈이다.”
한 모금에 술을 삼킨 서상국이 말을 잇는다.
“싹을 잘라버린 셈이 됐어. 이제 이명박의 운신 폭이 훨씬 넓어졌다.”
그때 듣기만 하던 이애주가 머리를 끄덕였으므로 오종택의 눈썹이 솟았다.
“마, 왜 끄덕거려?”
“사장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서요.”
“그렇다고 혀도 대놓고 끄덕거리면 이 대부(代父)가 쪽팔리잖냐. 가만있지를 못하겄디?”
“네.”
이애주가 정색하고 대답하는 통에 오종택은 입맛을 다셨고 서상국은 풀썩 웃었다. 그때 이애주가 말했다.
“저는 정동영 찍었어요. 왜냐하면 정동영이 우리 처지를 좀 더 잘 이해할 것 같아서요.”
“아, 우리도 정동영 찍었다.”
하고 오종택이 말했지만 감동한 표정도 없이 이애주가 말을 잇는다.
“어른들은 다 제쳐두고 경제나 살리도록 하자면서 이명박을 찍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하고 오종택이 물었다.
“네 생각은 어때? 지금 잘 되어가는 것 같나?”
“아직 모르겠어요, 하지만.”
둘의 얼굴을 번갈아보던 이애주가 말을 잇는다.
“뭔가 뚫리는 느낌은 들어요.”
그 표현이 이상했는지 오종택은 눈만 껌벅였지만 서상국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신 묻는다.
“뭐가?”
“소통인가?”
“아직 시작인 것 같지만 변화가 오는 것이 느껴져요.”
그러더니 이애주가 덧붙인다.
“제 친구들도 다 그래요.”
그러자 서상국이 긴 숨을 뱉고 나서 말했다.
“그것 봐, 내가 뭐랬어. 세대결연이 결국 이명박이 작전이었다니까. 이젠 연임 개헌도, 교육감 임명제 개헌도 이명박이 뜻대로 되게 생겼어.”
# “외유하실 때가 되었지 않습니까?”
불쑥 물었던 이재오가 곧 덧붙였다.
“물론 이번 개헌 끝내고 말입니다.”
청와대 소식당 안이다. 원탁에는 이명박, 국무총리 한승수, 외교통상 장관 유명환, 이재오까지 넷이 둘러앉아 막 점심을 마친 참이었다. 오늘 모임은 외교 현안 문제로 총리와 외교통상 장관을 불렀다가 이재오가 합석한 경우가 되겠다. 셋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커피잔을 들면서 웃었다.
“산적한 국내 현안부터 처리해놓고 나가야지요.”
“취임 9개월째가 됐는데 한 번도 안 나가셨습니다. 오바마가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아이구.”
쓴웃음을 지은 이명박이 한승수와 유명환을 둘러보았다. 둘도 회의 때 그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이해해줄 겁니다. 굳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하고 요란하게 매스컴에 나타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고는 이명박이 정색했다.
“그보다도 내가 오늘 총리, 외교통상 장관하고 상의했는데.”
이재오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노 전(前) 대통령께 북한 특사를 부탁했더니, 요즘 집안 문제가 걸린다고 하셔서 김 전 대통령께 부탁했어요. 그때 이 의원이 보좌역으로 같이 가주셨으면 합니다.”
놀란 이재오의 입이 딱 벌어졌다가 닫혔다. 그러더니 겨우 묻는다.
“북한으로요?”
“예, 지금 김 전 대통령께서 준비를 다하고 계시는데 이 의원이 동행해주셨으면 해서요.”
“가지요.”
하고 나서 이재오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명박에게 묻는다.
“뭐, 김 전 대통령까지 모시고 가는데, 옛날 이후락 씨처럼 비밀리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건 아니지요?”
그러고는 한승수와 유명환을 보았지만 아무도 웃지 않는다. 1972년 5월, 중앙정보부 부장이던 이후락은 박정희 대통령의 특사로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후락은 김일성과의 회담을 통해 7·4남북공동성명을 성사시켰다.
“아닙니다.”
이명박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잇는다.
“6자회담 이전에 한국에서 대통령 특사가 공식 방문하는 것입니다.”
# 북한은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한 이후 적대적 자세로 돌변했는데, 그들 처지에서는 정동영의 당선이 바람직했을 것이다. 그날 오후 동아일보 편집국장 정상우는 청와대 대변인 이동관의 전화를 받는다.
“아이구, 웬일이십니까?”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있다가 청와대에 들어간 이동관에게 동아일보는 친정집이나 같다. 반기는 정상우에게 이동관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대통령 특사로 북한을 방문하실 계획입니다.”
“아이고, 그렇습니까?”
정상우가 반색한 이유는 특종을 받았기 때문이지 특사 방문에는 관심도 없다. 그때 이동관이 말을 잇는다.
“이번 방문 목적은 6자회담 전에 남북 간 핵문제를 합의하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전 정권에서 추진해온 남북 간 경협을 논의합니다.”
“그렇게 분명히 써도 됩니까?”
“그래서 내가 직접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 기사는 우리한테만 주시는 거죠?”
“그것이.”
이동관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배어났다.
“지금 모든 언론사에 보도자료가 나가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친정집에는 대변인이 직접 말해준다는 것뿐이었다. 통화가 끝났을 때 정상우가 투덜거렸다.
“씨발, 김샜네.”
# 10월 20일, 여당인 세우리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해산하고 당대표로 박근혜가 취임했다. 여론조사와 모바일 투표도 포함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전국에서 모인 당원 3만7000명의 직접투표로 대표를 선출한 것이다. 그리고 그날 현역의원들만의 투표로 원내대표를 선출했는데 정몽준이 당선됐다. 당총재인 대통령의 권한으로 전직 대통령 다섯은 세우리당 원로로 추대됐다.
그러나 개헌 파동을 이유로 전직 대통령 가운데 김대중, 노무현이 사퇴 의사를 밝히는 바람에 이명박은 다시 다섯을 ‘국가원로’로 개칭해 추대했다. 당대표 박근혜가 임명한 원내총무는 김무성이다. 또한 최고위원은 원내대표와 함께 선출됐고 안상수, 홍준표, 이한구, 유승민, 남경필, 임태희까지 여섯 명이다. 이젠 친박, 친이 구분이 모호해졌으며 당 내부에서는 박근혜 차기론이 대세가 되어가는 분위기지만 이른바 잠룡들도 기회를 노린다. 아직 차기까지는 4년 넘게 남았기 때문이다.
“독재라고 아우성치지만 국민이 뒤를 받쳐줘야 말이지.”
쓴웃음을 지은 홍준표가 소파에 등을 붙이고는 말을 잇는다.
“생각이 80년대 민주화투쟁 시대에서 딱 그친 사람들이야. 독재 반대를 외치면 그때처럼 호응할 줄로 생각했겠지.”
“세대결연이 절묘했어요.”
하고 안상수가 말을 받는다.
“그것으로 노장청(老長靑)의 소통이 시작됐으니까요.”
“아직 멀었습니다.”
이번에는 이한구가 말을 받았다.
“세대결연의 단순한 대부(代父), 대자(代子) 관계에서 국가관과 애국심을 배양하고 미래에 대한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보충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미 정부 차원에서 시행하는 사항이었으나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이곳은 국회 세우리당의 최고위원 회의실 안이다. 개헌 준비 회의를 마친 최고위원들은 여담을 나누고 있다.
지난번 국회의원 신분법 등 3개 법안이 통과되기 전, 야권과 시민단체는 대규모 반대 집회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서울 도심 밤거리를 촛불로 뒤덮었던 광우병 촛불시위가 불과 넉 달 전이라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시위 참가자가 가장 많았던 날이 1만 명 정도였고 민노총과 전교조 등에서 과격하게 나온 시위자는 가차 없이 체포됐다. 경계선을 넘은 시위자에게 경찰이 발포하는 바람에 다섯 명이 총상을 입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시위대가 ‘정권타도’ ‘이명박 축출’ ‘독재자 처단’ 같은 플래카드를 휘날리며 함성을 지르자 군이 성명을 발표한 것이었다. 국방부 장관 이상희가 TV 앞에 서서 “군은 조국과 대통령을 수호하기 위해 대통령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각 언론은 수경사의 특전단 병력이 실탄을 배급받고 비상대기 상태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특종 기사로 군 배후에서 전두환 원로가 작전을 지휘하는 증거를 찾아내 보도했다. 군이 투입되면 그 기회를 이용해 국회의원은 물론, 사회 전역에 침투해 있는 친북·종북 세력을 소탕한다는 것이었다. 곧이어 특전단이 기무사, 국정원, 검경의 공안부서와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는 정보도 흘러나왔다.
SNS의 위력은 대단했다. 청송교도소가 반역사범 전용으로 변경되어 현 수감자를 다른 곳으로 이감해 비우는 중이라는 정보도 퍼졌다. 또 20만t급 폐유조선 2척을 국보법 위반사범 전용 수감시설로 개조한 뒤 각각 2만 명씩을 수용해 공해로 끌어가서 버리고 올 예정이라는 정보도 떴다. 반역사범의 재산을 몰수하는 법안도 추진 중이라고 했다. 법안 공포 직전에 반역사범이 부동산을 팔았더라도 국가가 몰수한다는 것이었다.
출처가 불분명했고 곧 사라졌지만 시위대는 전두환 개입설이 보도됐을 때부터 썰물처럼 빠져나가더니 유조선 정보가 떴을 때는 시청 앞 광장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시위대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자아, 일합시다.”
하면서 남경필이 몸을 일으켰으므로 최고위원들은 따라 일어섰다. 그때 누군가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요즘 봉하마을 괜찮은겨?”
#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는 박연차 정관계 로비 사건으로, 2005년 4월 세종증권 인수에 태광실업 회장 박연차가 개입하면서 시작됐다. 박연차는 노무현의 절친한 후원자다. 그런데 그것이 지난 노무현 정권 때 이어져오다가 이번 이명박 정권 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검 중수부는 2008년 10월 현재 수백억 원의 비자금이 오간 증거를 확보했고, 그것이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노무현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내건 최대 무기는 도덕성이었다. 깨끗한 정치, 낡은 정치 타파를 기회로 내세운 노무현의 품성이 집권 성공을 이끌었던 것이다.
“이거.”
하고 이명박이 앞에 놓인 서류를 눈으로 가리켰다. 바로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현재까지의 검찰 수사 보고서다. 머리를 든 이명박의 시선이 앞에 선 민정수석 이종찬에게로 옮겨졌다.
“노건평 씨까지 연루된 것 같은데, 어디까지 갈 것 같나?”
“박연차는 구속이 불가피하고 노 전 대통령한테까지 닿을 것 같습니다.”
이종찬이 굳은 얼굴로 말을 잇는다.
“노 대통령 아들과 딸, 사모님의 소환조사도 불가피합니다.”
“빌어먹을.”
외면한 이명박이 혼잣소리로 말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것은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니다. 모든 일은 법대로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주 최시중, 박영준 등 최측근 10여 명을 스스로 자해하듯이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아무리 이쪽에서 솔선수범한다고 해도 강자(强者)의 횡포, 또는 복수극으로 간주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명박이 잇새로 말을 잇는다.
“내가 검찰에 이 정도에서 손을 떼라면 지금 당장은 말을 듣겠지.”
“….”
“복수니, 차별성이니 하면서 떠들던 야당과 시민단체도 입을 다물 것이고.”
머리를 든 이명박이 이종찬을 보았다.
“하지만 내 주변 관리는 힘들어질 거야. 그런 걸 다 덮어주었는데 우리도 좀 먹으면 어때 하는 심리가 될 거거든.”
그러고는 이명박이 길게 숨을 뱉는다.
“노 대통령이 안됐지만 어쩔 수 없어. 그 양반도 날 이해해줄 거야.”
“아이고, 이기 웬일입니까?”
하면서 노무현이 정색했지만 짜증난 표정은 아니다. 노무현 뒤에는 전 홍보수석 윤승용이 혼자 서 있다. 윤승용의 안내로 집 안에 들어서면서 이명박이 인사치레로 묻는다.
“윤 수석, 요즘 바쁘신가?”
“예, 좀 바쁩니다.”
정색한 윤승용이 금방 대답했으므로 이명박이 다시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허, 무슨 일로 그렇게?”
“예, 구치소에 면회 다니느라고요.”
그러자 이명박과 노무현이 제각기 쓴웃음을 지었고 이동관은 몸이 굳어졌지만, 윤승용은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 응접실에 넷이 자리잡고 앉았을 때 이명박이 방 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사모님은 안 계십니까? 늦었지만 인사라도 드려야….”
“예, 몸이 좀 아파서요.”
입맛을 다신 노무현이 뒷머리를 손가락으로 긁적였으므로 이명박은 심호흡부터 했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답답한 김에 그냥 위로나 드리려고 이렇게 온 겁니다.”
그러고는 이명박이 길게 숨을 뱉는다.
“제 처지를 가장 잘 아실 분이 바로 노 전임이실 것입니다.”
그러자 노무현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이명박을 보았다.
“그러믄요. 잘 알지요. 어쨌든.”
노무현도 길게 숨을 뱉는다.
“위안이 되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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