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라 얘기 같았던 암이 아주 가까이까지 침투해왔다. 몇 해 전 친구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가 각각 췌장암과 대장암으로 세상을 뜬 데 이어, 최근 또 다른 친구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친구가 각각 갑상샘암과 자궁암 수술을 받았다. 남편의 직장동료가 유방암을 앓고 있고, 선배 기자도 둘이나 지난해 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한 사람은 뇌에, 다른 한 사람은 대장에 지독한 놈이 웅크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내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반백 년의 생을 마감했다.
그중 한 사람의 유고시집이 출간됐다. 지난해 4월 24일, 대장암으로 투병한 지 1년여 만에 세상을 떠난 윤성근(1960~2011) 시인의 ‘나 한 사람의 전쟁’(마음산책)이다. 동국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1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은 ‘나는 햄릿이다’(1992)를 포함해 시집 4권을 냈다. 1999년부터는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로 일했다. 2010년 회사를 그만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후 죽기 전까지 쓴 시를 그의 아내이자 출판사 마음산책 대표인 정은숙 씨가 유고시집으로 엮어 낸 것이다.
시인은 죽음이 임박했음을 감지했던지 임종이 가까워졌을 무렵 시집 원고를 정리해 아내에게 넘기며 “부고하지 말 것”과 “일주기 때 유고시집을 만들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뜨고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뒤에 소식을 접하고 충격과 허망감을 느꼈던 사람들은 그가 떠난 지 꼭 1년 만에 한 권의 시집을 통해 뒤늦은 작별 인사를 받은 셈이다.
타계 1년 만에 시집으로 작별 인사
정 대표는 “시집 원고를 차마 읽지 못하고 편집자에게 모든 일을 맡겼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가 “죄송하고 염치없고 송구스럽다”며 보내온 짧은 편지에 적힌 것처럼 “본래 시니컬한 성격의 윤 시인은 책과 록 음악, 야구에 몰입할 때 빼고는 세상과 그리 친하지 못했”다. “담배는 하지 않았으나 술은 과하게 마셨”다. “암을 발견하기 얼마 전까지도 그는 자주 취해 있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병상에서 “미친 듯이 썼다”는 시 86편과 산문 1편은 말기암이 주는 고통을 섬뜩할 정도로 명징하게 기록하고 있다. 암 발병률이 높아지면서 암 예방법, 암을 이긴 사람의 식이요법이나 운동법 등은 언론 보도를 통해 자주 접했지만, 말기암 환자가 꺼져가는 생명을 불사르며 자신의 아픔을 육필로 남긴 경우는 흔치 않다. 김승희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투병 과정과 병동 생활을 격한 감정에 물들지 않은 하드보일드한 문체로 써낸 시집”이라며 “육체의 질병에 관한 치열한 패소그래피(병리 기록)면서 동시에 남은 자에게 공감의 기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아픔에 포로가 된 사람/ …그러므로 나는 밤을 기다리는 사람/ 꿈속에서만이라도 자유롭고 싶기에/ 그러나 꿈속에서도 현실이 뒤따라오기에 순간순간/ 끄집어진 고통,/ 영락없는 수인의 삶.”(‘귀환자’ 중에서)
“고통에도 뿔이 열나 솟구쳐 쌍봉낙타 타고 쌍고동 울리고/ 고통에도 순이 돋아 쭈삣쭈삣 찌를 듯한 찌리찌릿 삼지창/ 고통에도 이골이 났다는 말은 어찌 뱉을 수 있는 것인지요?/ 고통의 습관화, 고통의 일상화, 고통의 만성 무감각화가 범인에게 어찌/ 가능한 경지인지요?”(‘주말 자 모 일간지를 보고’ 중에서)
“숨 쉬고 있지만 배 속 통증에만 신경이 곤두서고”라고 말한 시인은 다른 암환자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시에 담아 표현하기도 했다.
“옆에 앉은 말기암 환자 아주머니/… 남편과 통화하는데 그 말을 안 해준다./ 볶음밥 솜씨가 일품이라는 경상도 남편/ 아내가 없어도 살아갈 수는 있으리니/ 그 말을 해줄 리가 없는 것일까./ 그러나 씩씩한 부산 아주머니 기어이/ 사랑한다는 말을 이끌어내고/ 전화기 폴더를 닫는다, 그 눈에 이슬 한 방울.”(‘할 말이 그것밖에는’ 중에서)
“죽도 넘길 수가 없어 링거를 상용”하고 “혈관도 주삿바늘을 피해 자꾸 숨는” 지경에 이르고 “통증이 치받는 순간이면” “딴 사람 몸에 들어온 혼령인 듯” 느껴질수록, “멈춰 서라는 경고 방송을 무시하는 음주운전자의 차처럼”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결국 의학기술과 의료진에게 “읍소”하며 “연명”하는 신세가 된 데 대한 시인의 회한도 깊어진다.
투병 과정 치열하게 기록해 가슴이 짠
“나는 몰랐네. 평화스런 날들을 일상을 타기해야 할 그 무엇으로 생각하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술을 마시고 게다가 싫다는 사람에게까지 재우쳐 먹이고/ 게우고 와서도 입가심으로 한잔 마시고 속 편하게 초저녁 반납하고 나면/ 술로 새우는 밤이 편안하다는 이상한 논리를 천명하고/ 멀쩡한 사람이 술을 안 마시면 인구 감소가 이뤄지느냐면서 호기를 부린 끝에/ 주지육림에 빠지자고 구호를 외치며 이상한 셈법으로 합리화하며/ 이런 날들이 지금은 손을 넣어서라도 자꾸만/ 도려내고 싶어집니다.”(‘이상한 셈법’ 중에서)
산문 ‘한 사람의 투병에 부쳐’에 따르면 시인은 암을 발견하기 한참 전부터 복부 팽만감, 위쓰림, 위산과다 등으로 여러 번 위 내시경 검사를 받아 경증의 위염과 식도염이 있다는 정도는 알았다. 복통에 잠을 깨는 일이 반복되자 “신의 계시처럼” 직장 내시경 검사를 예약하면서도 위에 탈이 났으리라고 의심했지 대장은 안중에도 없었다. 건강검진에서 2년마다 위 내시경을 하고 있던 터라 직장 내시경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을 뿐이다. 그런데 손쓸 일이 별로 없을 정도로 직장에 암이 퍼져 있었다.
돌이켜보니 수년 전부터 그의 몸은 끈질기게 SOS를 치고 있었다.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변에 피가 섞여 나왔지만 그러다 또 괜찮아지기에 치질의 한 증상으로 간주하고 말았다. 그러다 6~7년 전 치질 수술을 받았는데 “그때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됐을 것”이라고 그의 암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말했다. 시인은 “종종 직장 선배들이 나이 오십에 직장 내시경을 받는다고 했을 때도 관장을 해야 하는 등 번거롭고 또 거북하기까지 해서 태무심하고, 앞으로 하면 될 일로 치부했다”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인생에서 결코 피할 수 없고 부인할 수도 없는 위기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터무니없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들이 있다.”
시인이 자신의 지난날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며 필 맥그로의 ‘리얼 라이프’에서 옮겨 적은 구절이다. 어찌 시인의 얘기이기만 하겠는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은 게 산 사람의 어리석음인 것을. 김 교수의 표현대로 “마지막 한 방울의 피를 다하여” 글을 남기고 간 시인은 산 사람이 죽을 때 죽더라도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테다.
“한 치 앞도 못 보고, 과거로도 돌아갈 수 없으니/ 바라는 것, 원하는 것, 되고 싶은 것/ 못 된다고 슬퍼하지는 말아요./ 약한 자신의 존재를 수긍하고 받아들이고/ 향기로운 잠, 무통의 잠, 그리고 내리는 빗줄기 온전히 들으시고/ 마음의 평안, 육신의 짧은 안녕, 부족한 자신을/ 사랑하세요, 사랑하고 싶어요.// 그러나 그러나 한 번만 살다가는 삶 속에서/ 바라는 것, 원하는 것, 되고 싶은 것/ 못 하고, 못 보고, 못 느끼고 이루지 못한다는 것/ 받아들일 수 없어요, 전혀, 전혀.”(‘전혀, 전혀’)
그중 한 사람의 유고시집이 출간됐다. 지난해 4월 24일, 대장암으로 투병한 지 1년여 만에 세상을 떠난 윤성근(1960~2011) 시인의 ‘나 한 사람의 전쟁’(마음산책)이다. 동국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1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은 ‘나는 햄릿이다’(1992)를 포함해 시집 4권을 냈다. 1999년부터는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로 일했다. 2010년 회사를 그만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후 죽기 전까지 쓴 시를 그의 아내이자 출판사 마음산책 대표인 정은숙 씨가 유고시집으로 엮어 낸 것이다.
시인은 죽음이 임박했음을 감지했던지 임종이 가까워졌을 무렵 시집 원고를 정리해 아내에게 넘기며 “부고하지 말 것”과 “일주기 때 유고시집을 만들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뜨고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뒤에 소식을 접하고 충격과 허망감을 느꼈던 사람들은 그가 떠난 지 꼭 1년 만에 한 권의 시집을 통해 뒤늦은 작별 인사를 받은 셈이다.
타계 1년 만에 시집으로 작별 인사
정 대표는 “시집 원고를 차마 읽지 못하고 편집자에게 모든 일을 맡겼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가 “죄송하고 염치없고 송구스럽다”며 보내온 짧은 편지에 적힌 것처럼 “본래 시니컬한 성격의 윤 시인은 책과 록 음악, 야구에 몰입할 때 빼고는 세상과 그리 친하지 못했”다. “담배는 하지 않았으나 술은 과하게 마셨”다. “암을 발견하기 얼마 전까지도 그는 자주 취해 있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병상에서 “미친 듯이 썼다”는 시 86편과 산문 1편은 말기암이 주는 고통을 섬뜩할 정도로 명징하게 기록하고 있다. 암 발병률이 높아지면서 암 예방법, 암을 이긴 사람의 식이요법이나 운동법 등은 언론 보도를 통해 자주 접했지만, 말기암 환자가 꺼져가는 생명을 불사르며 자신의 아픔을 육필로 남긴 경우는 흔치 않다. 김승희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투병 과정과 병동 생활을 격한 감정에 물들지 않은 하드보일드한 문체로 써낸 시집”이라며 “육체의 질병에 관한 치열한 패소그래피(병리 기록)면서 동시에 남은 자에게 공감의 기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아픔에 포로가 된 사람/ …그러므로 나는 밤을 기다리는 사람/ 꿈속에서만이라도 자유롭고 싶기에/ 그러나 꿈속에서도 현실이 뒤따라오기에 순간순간/ 끄집어진 고통,/ 영락없는 수인의 삶.”(‘귀환자’ 중에서)
“고통에도 뿔이 열나 솟구쳐 쌍봉낙타 타고 쌍고동 울리고/ 고통에도 순이 돋아 쭈삣쭈삣 찌를 듯한 찌리찌릿 삼지창/ 고통에도 이골이 났다는 말은 어찌 뱉을 수 있는 것인지요?/ 고통의 습관화, 고통의 일상화, 고통의 만성 무감각화가 범인에게 어찌/ 가능한 경지인지요?”(‘주말 자 모 일간지를 보고’ 중에서)
“숨 쉬고 있지만 배 속 통증에만 신경이 곤두서고”라고 말한 시인은 다른 암환자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시에 담아 표현하기도 했다.
“옆에 앉은 말기암 환자 아주머니/… 남편과 통화하는데 그 말을 안 해준다./ 볶음밥 솜씨가 일품이라는 경상도 남편/ 아내가 없어도 살아갈 수는 있으리니/ 그 말을 해줄 리가 없는 것일까./ 그러나 씩씩한 부산 아주머니 기어이/ 사랑한다는 말을 이끌어내고/ 전화기 폴더를 닫는다, 그 눈에 이슬 한 방울.”(‘할 말이 그것밖에는’ 중에서)
“죽도 넘길 수가 없어 링거를 상용”하고 “혈관도 주삿바늘을 피해 자꾸 숨는” 지경에 이르고 “통증이 치받는 순간이면” “딴 사람 몸에 들어온 혼령인 듯” 느껴질수록, “멈춰 서라는 경고 방송을 무시하는 음주운전자의 차처럼”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결국 의학기술과 의료진에게 “읍소”하며 “연명”하는 신세가 된 데 대한 시인의 회한도 깊어진다.
투병 과정 치열하게 기록해 가슴이 짠
“나는 몰랐네. 평화스런 날들을 일상을 타기해야 할 그 무엇으로 생각하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술을 마시고 게다가 싫다는 사람에게까지 재우쳐 먹이고/ 게우고 와서도 입가심으로 한잔 마시고 속 편하게 초저녁 반납하고 나면/ 술로 새우는 밤이 편안하다는 이상한 논리를 천명하고/ 멀쩡한 사람이 술을 안 마시면 인구 감소가 이뤄지느냐면서 호기를 부린 끝에/ 주지육림에 빠지자고 구호를 외치며 이상한 셈법으로 합리화하며/ 이런 날들이 지금은 손을 넣어서라도 자꾸만/ 도려내고 싶어집니다.”(‘이상한 셈법’ 중에서)
산문 ‘한 사람의 투병에 부쳐’에 따르면 시인은 암을 발견하기 한참 전부터 복부 팽만감, 위쓰림, 위산과다 등으로 여러 번 위 내시경 검사를 받아 경증의 위염과 식도염이 있다는 정도는 알았다. 복통에 잠을 깨는 일이 반복되자 “신의 계시처럼” 직장 내시경 검사를 예약하면서도 위에 탈이 났으리라고 의심했지 대장은 안중에도 없었다. 건강검진에서 2년마다 위 내시경을 하고 있던 터라 직장 내시경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을 뿐이다. 그런데 손쓸 일이 별로 없을 정도로 직장에 암이 퍼져 있었다.
돌이켜보니 수년 전부터 그의 몸은 끈질기게 SOS를 치고 있었다.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변에 피가 섞여 나왔지만 그러다 또 괜찮아지기에 치질의 한 증상으로 간주하고 말았다. 그러다 6~7년 전 치질 수술을 받았는데 “그때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됐을 것”이라고 그의 암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말했다. 시인은 “종종 직장 선배들이 나이 오십에 직장 내시경을 받는다고 했을 때도 관장을 해야 하는 등 번거롭고 또 거북하기까지 해서 태무심하고, 앞으로 하면 될 일로 치부했다”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인생에서 결코 피할 수 없고 부인할 수도 없는 위기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터무니없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들이 있다.”
시인이 자신의 지난날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며 필 맥그로의 ‘리얼 라이프’에서 옮겨 적은 구절이다. 어찌 시인의 얘기이기만 하겠는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은 게 산 사람의 어리석음인 것을. 김 교수의 표현대로 “마지막 한 방울의 피를 다하여” 글을 남기고 간 시인은 산 사람이 죽을 때 죽더라도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테다.
“한 치 앞도 못 보고, 과거로도 돌아갈 수 없으니/ 바라는 것, 원하는 것, 되고 싶은 것/ 못 된다고 슬퍼하지는 말아요./ 약한 자신의 존재를 수긍하고 받아들이고/ 향기로운 잠, 무통의 잠, 그리고 내리는 빗줄기 온전히 들으시고/ 마음의 평안, 육신의 짧은 안녕, 부족한 자신을/ 사랑하세요, 사랑하고 싶어요.// 그러나 그러나 한 번만 살다가는 삶 속에서/ 바라는 것, 원하는 것, 되고 싶은 것/ 못 하고, 못 보고, 못 느끼고 이루지 못한다는 것/ 받아들일 수 없어요, 전혀, 전혀.”(‘전혀, 전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