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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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봄, 수치의 새로운 도전

마침내 당선 국회 입성… 개헌이 일차 과제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입력2012-04-09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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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67) 여사가 24년 만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수치 여사는 4월 1일 치른 미얀마 보궐선거에 하원의원 후보로 출마해 옛 수도 양곤의 빈민층 지역인 카우무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했다. 내각 진출 등으로 공석이 된 하원의원 37명, 상원의원 6명, 지역의회 의원 2명을 뽑는 이번 선거에는 여당인 통합단결발전당을 비롯해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인 민족주의민주동맹 등 모두 17개 정당이 참가했다.

    이번 선거에서 수치 여사와 민족주의민주동맹이 승리했지만, 미얀마의 권력구도가 당장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통합단결발전당은 2010년 총선에서 상·하원과 지방의회를 합쳐 전체 1154석 중 883석을 차지해 입법부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됐던 까닭은 수치 여사가 민주화의 발판을 합법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기회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출범한 미얀마 민간정부는 독재체제를 청산한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보이려고 보궐선거를 민주적으로 실시하겠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테인 세인 대통령은 사상 처음으로 미국, 유럽연합(EU), 호주, 일본, 아세안(ASEAN) 등 외국 선거감시인단의 참관을 허용했다. 미국, EU 등 서방국가는 보궐선거를 공정하고 민주적으로 실시할 경우 세인 대통령이 그동안 추진해온 민주화 개혁 조치의 진정성을 인정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바 있다.

    미얀마 민주화 상징적 사건

    미얀마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의 막내딸로 태어난 수치 여사는 두 살 때 아버지가 정적의 손에 암살당하는 슬픔을 겪었다. 인도 대사로 임명된 어머니를 따라 열다섯 살 때 미얀마를 떠난 그는 1964년 영국 옥스퍼드대에 진학해 철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1972년 영국인 마이클 아리스와 결혼한 후 두 아들의 어머니이자 평범한 주부로 생활했다. 그러다 1988년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얘기를 듣고 영국에서 귀국했다. 당시 미얀마는 군부 독재로 수많은 민주 인사가 투옥되고 있었다. 그해 8월 8일 대학생들과 시민 단체 회원들이 이른바 ‘8888항쟁’이라고 부르는 대규모 민주화시위를 벌였는데 군부는 시위대를 무차별적으로 무력 진압했다.



    이를 지켜본 수치 여사는 민족주의민주동맹을 창당하고 민주화 운동을 시작했다. 민족주의민주동맹은 1990년 총선에서 전체 485석 가운데 392석을 얻어 대승했지만, 군부는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고 수치 여사를 가택에 연금했다. 이후 수치 여사는 가택연금과 해제를 반복하며 15년 동안 집에 갇혀 있었다. 남편이 1999년 전립선암으로 영국에서 사망했지만 수치 여사는 군부가 입국을 허락치 않을까 우려해 가 보지도 못했다. 2010년 말 가택연금에서 완전히 풀려난 수치 여사는 마침내 하원의원으로 제도권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그가 군부가 구축한 현재의 정치체제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보다 민주화 개혁을 가속화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세인 대통령이 그동안 정치범 석방 등 각종 민주화 조치를 단행했지만 실제로는 서방의 제재조치를 풀려는 일종의 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수치 여사는 비록 극소수더라도 의회에서 민주화 목소리를 강력하게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8888항쟁’을 이끌었던 미얀마 민주화 조직인 88세대 학생그룹의 지도자 민꼬나잉은 “수치 여사와 민족주의민주동맹은 의석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의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서 “수치 여사와 민족주의민주동맹은 제도권에서, 88세대 학생그룹은 사회운동을 통해 민주화 개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수치 여사도 “미얀마는 이제 막 민주화 길에 들어섰으며,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강조했다.

    수치 여사와 민족주의민주동맹이 무엇보다 먼저 추진할 과제는 개헌이다. 2008년 군부 주도로 만든 헌법에 따라 입법·사법·행정부 등 주요 권력기관은 군부 출신이 장악했다. 대통령 선출도 의석의 25%가 군부에 할당된 의회에서 맡았다. 따라서 오는 2015년 대선 이전까지 군부와 타협해 개헌을 도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 총사령관은 “군은 국가의 생명과도 같은 헌법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면서 군부의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마웅 자르니 영국 런던정경대(LSE) 방문연구원은 “군부와 수치 여사는 각각 경제적 고립과 정치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전략적 공생관계에 있다”면서 군부의 향후 행보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무튼 미얀마가 이번 보궐선거를 어느 정도 공정하게 실시한 만큼 세인 대통령을 군부의 하수인이라고 생각하는 미국 등 서방 국가는 의구심을 상당히 누그러뜨릴 것으로 보인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은 미얀마 정부의 개혁 의지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기득권 지키려는 군부

    미국과 EU는 앞으로 미얀마에 대한 제재 조치를 단계적으로 해제할 가능성이 높다. 서방 각국 기업과 외국 투자자는 미국, EU의 움직임에 발맞춰 미얀마의 풍부한 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선점하려고 적극적으로 투자할 움직임을 보인다.

    미얀마 정부도 서방의 투자를 유치하려고 4월 1일부터 37년간 유지해온 고정환율제를 폐지하고 관리변동환율제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자국의 통화가치를 고정하지 않고 외환시장의 수급 상태에 따라 변동되도록 하는 것으로, 환율 안정을 위해 정부가 부분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한다. 미얀마는 1975년부터 자국 통화 차트(kyat)를 달러당 6.4차트로 고정했지만, 실제로는 암시장에서 달러당 800차트 안팎에 거래됐다.

    관리변동환율제는 세인 대통령이 단행한 최대의 경제 개혁 조치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암시장이 미얀마 군부가 돈을 유용하고 착복하는 주요 통로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얀마 군부는 천연가스를 수출한 뒤 공식장부에는 달러당 6.4차트로 계산한 것처럼 기록하지만, 실제로는 암시장에서 현시세로 교환해 그 차액을 착복하거나 무기 구입 등에 전용해왔다. 세인 대통령의 개혁 조치는 앞으로 군부 실력자들의 자금줄을 끊는 동시에 미얀마 경제 발전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미얀마 정부는 해외 송금에 대한 규제도 완화해 외국 기업의 투자도 대폭 유치할 계획이다.

    지난 50여 년간 군부 독재에 시달려온 미얀마 국민의 민주화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들은 수치 여사를 “아메 수(어머니 수)”라고 부르면서 미얀마를 잘 사는 민주화 국가로 이끌어주기를 바란다. 수치 여사는 “이번 선거의 승리는 국민의 승리이며, 미얀마에 새로운 시대로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수치 여사가 과거 오랜 투옥생활 끝에 대통령까지 됐던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나 체코의 바츨라프 하벨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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