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큰 재앙이며 그중에서도 제1, 2차 세계대전은 세상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꿀 만큼 거대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각종 매체를 통해 학살 장면을 접한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은 섬세하고 순수한 영혼을 얼마나 더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연극 ‘워 홀스’는 이 질문에 나름의 답변을 제시한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상연하는 연극 ‘워 홀스’는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소년과 군마(軍馬)의 안타까운 우정을 다룬 작품이다. 참혹한 전쟁 중에도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조명해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프랑스의 동화작가 미셸 머퍼고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이 연극은 영국 국립극장에서 매진 행렬을 이루며 영국연극협회가 주최하는 올리비에상을 수상했다. 이후 브로드웨이로 옮겨와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연출상, 무대디자인상을 비롯해 5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현재 링컨센터에서 상연 중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로 개봉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앨버트의 아버지는 사촌과의 경쟁 때문에 경매에 나온 망아지를 사고, 이를 아들 앨버트에게 준다. 앨버트는 망아지를 조이라 부르며 한없는 애정을 쏟아붓는다. 조이 역시 앨버트와 교감하며 그를 위해 행동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앨버트의 아버지는 건강하게 자란 조이를 군마로 팔아버리고, 앨버트는 조이를 찾기 위해 나이를 거짓으로 올려 입대한다. 그 후 조이와 앨버트는 각기 처참한 전투를 겪는다. 앨버트는 눈을 다치고, 조이는 기력이 쇠진해 일종의 안락사를 당하기 직전. 이들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를 보지 못한다. 앨버트와 조이가 끝내 만나지 못하고 공연이 끝난다면 작품은 매우 비관적일 것이다. 그러나 연극은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긴다. 간간이 독일과 프랑스 군인들이 동물과 적국의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는 모습 또한 휴머니즘적 메시지를 전한다.
‘워 홀스’가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감동을 주는 스토리와 뛰어난 연출력 덕분이다. 조이를 비롯한 다른 말과 거위 등 동물은 실물 크기의 인형으로 표현되는데, 여러 명이 달라붙어서 동물의 각 부위를 조종하는데도 어찌나 섬세하게 움직이는지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이 조금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시시각각 표정이 달라지는 듯 보이는 말의 눈동자는 공연이 거듭되면서 인형에 말의 영혼이 담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회전무대를 사용하면서 무대장치를 최소화하고, 시공간적 배경과 장면을 삽화적 영상으로 표현한 점도 돋보인다. 비주얼과 인형, 그리고 작품 내용이 어우러지면서 동화처럼 결이 고운 느낌을 전달한다. 한편 희망적인 결말에도 전쟁 참상을 표현하는 시청각적 이미지는 섬뜩할 정도로 잔혹하다.
암시와 복선의 장면들을 통해 내용을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전달한다.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들이 때때로 군인이나 시체로 변신하는 등 배우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조명, 배우들의 진솔하고 열정적인 연기, 섬세한 인형의 움직임이 작품의 감동을 극대화한다. 미국 뉴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