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당 밖 인사 누구를 영입할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쇄신안을 만들 시간은 한 달 남짓 남았고, 현재 한나라당의 인기는 바닥권에 머문다.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구성은 박 전 대표가 풀어야 할 첫 번째 숙제이자 가장 중요한 숙제다. 비대위원의 면면이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할 경우, 당장 쇄신 의지를 의심받고 당 안팎에서 강한 저항에 부닥쳐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
비대위원 구성 숫자와 관련해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은 비대위가 최고위원회의 구실을 대신하는 만큼, 기존 최고위원회의 정도로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박 전 대표가 임명할 수 있는 비대위원은 최대 8명이다. 친박 진영에서는 4명 정도는 당 외부인사가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한 친박 관계자는 “당의 변화와 쇄신을 위해서는 당 밖의 인사 중 누구를 영입하느냐가 중요하다. 국민이 보기에 한나라당스럽지 않은, 보수성향 색채가 옅은 이가 많이 참여해야 국민이 변화를 체감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비대위에 참여할 당내 인사로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홍정욱 의원이 거론된다. 두 사람 모두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 객관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고, 계파 성향이 옅어 당내 화합 차원에서도 적합하다는 이유에서다.
외부인사를 공동 비대위원장이나 부위원장으로 구성하는 안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오고 있다. 당 쇄신 의지를 보이는 동시에, 박 전 대표가 총선 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을 시점에 연속성 측면에서 공동 비대위원장이 비대위를 이끄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당 대표 구실까지 수행하게 된 박 전 대표는 당직 인선도 해야 한다. 본격적인 쇄신안 논의 착수를 위해 비대위와 당직 인선은 가급적 빨리 마무리 지을 가능성이 높다.
박 전 대표는 12월 14일 재창당을 요구하는 쇄신파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재창당을 뛰어넘는 쇄신과 개혁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구상하는 ‘재창당을 넘는 변화’는 뭘까.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해산에는 부정적이지만 실제 참모진은 한나라당을 해체하고 신당을 창당하는 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할 정도로 쇄신 범위는 유동적이다.
친박 핵심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인식하는 위기의 수준은 당을 지키자는 영남 의원들이 아닌 생존이 절박한 수도권 의원들과 맥을 함께한다”며 “박 전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실패하면 대선을 위해 준비했던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혁명적 쇄신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서민과 빈곤층까지 포함한 중도로의 노선 확장을 위해 정강 정책을 바꾸는 것도 추진할 듯하다. 이러한 작업은 자연스럽게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로 이어져 현 정부와 단절을 선언하고 새로운 정당으로 거듭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박 전 대표는 12월 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는 양적 발전, 양적 성장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발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는 정당을 혁신하는 내용의 혁신안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는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에게 자율성을 더 줘야 하고 국회 운영을 상임위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명을 바꾸는 안에 대해서는 친박 의원 내부에서 의견이 나뉜다. 다만 박 전 대표는 “국민의 신뢰를 받으면 당명 변경을 논의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오른쪽)는 총선 공천과 관련해 12월 1일 동아일보-채널A 공동 인터뷰에서 “투명해야 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하며, 개방해야 한다”는 3가지 총선 공천 원칙을 밝힌 바 있다.
박 전 대표 쇄신안의 핵심이 될 공천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기대하는 측에서는 2004년 총선 때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탄핵 정국으로 갑작스럽게 사퇴하고 등장한 박 전 대표가 보여준 ‘비움’의 리더십을 강조한다. 당시 박 전 대표는 공천권을 모두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지역구 공천은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 비례대표 공천은 박세일 서울대 교수가 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공천권을 내려놓았다.
‘투명·납득·개방’ 공천의 3원칙
박 전 대표가 공천권에 욕심 있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의심에 대해 한 친박 핵심의원은 “2004년에도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았던 박 전 대표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을 속이면서 사적으로 공천권을 남용하겠느냐”며 ‘기우’임을 강조했다. 다른 관계자는 “박 전 대표는 2004년뿐 아니라 대표 시절 재·보궐선거 때도 본인이 사적으로 공천한 적이 없다. 2007년 대선 경선 때 박 전 대표가 대표 시절 공천해 당선된 의원 가운데 정작 박 전 대표를 지지한 의원이 별로 없을 정도로 박 전 대표는 공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총선 공천과 관련해 12월 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투명해야 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하며, 개방해야 한다”는 공천 3가지 원칙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공천을 잘하려면 후보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낙천자 반발을 무마할 논리도 마련해야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처럼 공천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물론 그 주변 인물 중에서도 공천 작업에 관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서청원 전 미래희망연대 대표나 강창희 전 의원 정도가 경험했으나 이들도 주도한 적은 없다.
게다가 2004년과 달리 당내에는 박 전 대표를 견제하는 세력이 존재한다. 그들이 공천에서 불이익을 받는 모양새로 비칠 경우 탈당 빌미가 될 수도 있다. 170석의 현역의원이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대대적인 물갈이를 하는 것도 부담이다. 지역에서 고정표를 지닌 현역의원이 공천에 불복해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표를 갉아먹어 공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한된 시간에 제반 여건까지, 비상대책위원장인 박 전 대표를 둘러싼 환경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한마디로 총체적 ‘위기’다. 박 전 대표가 여러 난관을 뚫고 어떤 쇄신과 공천으로 국민에게 감동을 줘 ‘위기’를 ‘기회’로 바꿀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