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탈북인이 북한의 여성 인권을 고발하며 울고 있다(왼쪽).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취조실에서 보위부원이 북송된 탈북 여성을 발로 걷어차는 모습.
“중국에선 어떤 남자하고? 제일 먼저 배꼽 맞춰본 사람은?”
국정원 조사관이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들어온 A씨에게 물었다.
“국정원이 배꼽 맞춘 사람 물어보는 곳이냐”고 A씨가 되물었다. 조사관이 재떨이를 들고 깨뜨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곤 “나가. 너 같은 거 조사 안 해”라고 고함쳤다.
“한국에 잘못해서 온 것도 아닌데, 구박했다. 그 사람 지금도 국정원에 있다. 배 아프니 약 달라고 하면 밥 먹지 말고 누워! 침대에 누워 자! 이렇게 소리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탈북 여성의 한국살이는 고되다. 북한 출신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지만 티가 날 수밖에 없다. 탈북인 B씨는 “나라를 잘못 만났다 할까, 시대를 잘못 만났다 할까. 원망도 못 하겠다”고 하소연했다. B씨의 말은 북한 여성의 오늘을 함축한다.
“남자에 맞아도 말대꾸조차 못해”
북한 체제는 김일성을 어버이로 부르는 대(大)가정. 수령은 어버이면서 대가정의 가부장(家父長)이다. 수령과 인민은 유기체적 관계다. 가부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건 어버이를 버리는 비도덕적 행위. 가정은 가부장적 위계질서로 구축한 국가의 미니어처다. 여성은 은혜를 받는 대상자로서 국가와 남성에게 보답해야 할 존재다.
탈북인 C씨는 “법이 그렇다.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건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 남자한테 말대꾸도 못 한다”고 말했다. D씨는 “북한은 이혼도 안 시켜준다. 굽어지게 맞아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회고했다. 여성 인권은 국가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다. 수령을 정점으로 가부장적 질서를 통해 위계화한 사회에서 여성은 동원·착취 구조의 말단을 차지한다. 국가 목표에 복종하는 노동기계, 출산기계, 양육기계로 구실하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 계획경제가 붕괴하면서 북한 여성은 생계를 도맡았다. 당국은 남성이 장사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E씨는 “남자는 일거리가 없어도 국영기업소에 나가야 한다. 먹고사느라 여자만 죽으라고 고생한다”고 전했다.
장사로 돈 벌어 가족을 먹이는 북한 여성은 남편을 ‘불편’이라고 부른다. 국영기업소에 출근하는 여성은 ‘49호 환자’(49호 병원은 정신계통 환자가 입원하는 곳)라는 놀림도 당한다. 북한에서 장사는 낯 뜨거운 일이다. 계획경제는 시장에 기생해 연명했고, 남성은 여성에게 빌붙었다. 그런데도 천한 일 하는 여성은 괄시받는다. F씨의 회고.
“장사하는 여자 아랫도리는 안전원 거라고 한다. 중국 물건을 갖고 시비를 건다. 문제 제기를 못 한다. 얼굴이 반반한 여성은 마음대로 활보한다.”
G씨는 이렇게 말했다.
“여행증도 있고, 차표도 있는데 안전원이 뇌물을 달라고 했다. 막 따졌더니 몸 한번 바치라고 그러더라. 열차에 안전원 칸이 따로 있는데, 돈 주기 싫은 사람은 몸으로 때우는 거다.”
이렇듯 북한 여성은 관료로 상징되는 ‘남성 권력’으로부터 성적 치욕을 겪는 게 예삿일이다. 탈북 혹은 밀수하다 걸려 구류장에 수감되면 사정이 딱하다 못해 슬프다.
H씨의 증언이다.
“홀딱 벗겨놓고는 ‘이 간나, 중국 아 새끼하고 실컷 놀아먹은 간나’라고 하면서 때리고 머리채 잡아당기고. 때리지 않고 생각해준다는 게 성노리개로 방에 데려다가 놀고.”
모성 보호 조치도 허술하다. 생계가 다급해 낙태하는 여성도 적지 않다. I씨는 국가안전보위부 구류장에서 강제로 낙태해야 했다.
“중국 아이는 조선에서 못 낳으니까 지우라고 했다. 병원에서 배에 큰 주사를 놓았다. 죽은 아이를 낳았다.”
북한은 출신성분, 사회성분에 따라 가치 실현 기회가 다르다. 성분이 나쁘면 하류 인생을 산다. 토대가 나쁜 여성은 최하층으로 사는 게 숙명이다. 성 차별에 성분 차별이 더해진다. J씨는 “아버지가 탄광에서 일하니까 나도 탄광에 가겠구나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교육받았다. 똑같은 일을 해도 남자는 대접받는다. 같은 시간 일해도 남자는 세대주니까. 차별을 응당한 걸로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토대 나쁜 여자가 토대 좋은 남자와 결혼하면 남자 앞길이 막힌다. 입당도 안 되고, 간부 승진도 못 한다.
남녀 차별 당연하게 생각
북한은 개발도상국 중 여성 교육수준이 상당히 높은 축에 속한다. 북한은 의무교육이 11년(한국은 9년)에 달한다. 경제가 바닥을 길 때는 교육수준이 낮은 중국 하류층에게 시집가(혹은 팔려가) 노예 취급을 받는 예도 많았다. K씨는 “중국에서 매일 맞았다. 부인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노예 삼아, 성희롱 대상 삼아 학대하고 천대했다”고 회고했다. L씨는 “허베이(河北)성으로 팔려갔다. 키 145cm의 왜소한 남자가 들어왔는데 아들 같았다”면서 혀를 찼다.
중국의 대북 지원과 북·중 무역 등으로 북한 경제가 숨통을 트면서 매매혼, 인신매매는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이 기사가 소개한 북한 여성의 사연과 증언은 국가인권위원회가 탈북 여성의 구술을 녹취해놓은 기록을 입수해 재구성한 것이다. 북한을 탈출한 특수 집단을 상대로 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과장했을 소지도 배제할 수 없으나 북한 여성이 가난, 인권 유린의 이중고를 겪는 것만은 분명하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북한 여성의 인권 보장은 핵무기보다 더 시급한 선결과제”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