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경주 국제 유소년(U-12) 축구 페스티벌’에 참가한 어린 선수들이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6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14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한국 음악도 5명이 남녀 성악 부문에서 각각 1위, 피아노 부문에서 2, 3위, 바이올린 부문에서 3위에 오르며 음악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비단 음악만이 아니다. 축구에서도 많은 해외파 선수가 한국인 특유의 근성을 바탕으로 국위 선양을 한다. 이들의 성과에 주목한 유수의 클럽 스카우터가 한국의 어린 선수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 사실 클럽에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선수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어린 선수를 원한다.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효과를 얼마나 극대화할 수 있느냐를 가장 먼저 살핀다. 그러다 보니 어린 선수에게 관심을 가지는 클럽은 약간 생소할 수 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화려하게 우승했다고 처음부터 프리마돈나로 열연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아마도 ‘프리마돈나의 시녀’ 정도로 데뷔할 것이다. 언제 프리마돈나로 무대에 설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좌절할 필요는 없다. 무대에 익숙해지면서 자신의 저력을 서서히 보여주면 된다. 꾸준히 무대에 서면서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내공을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젊은 축구선수의 해외 진출 역시 마찬가지다. 클럽 이름보다 실력을 꾸준히 쌓을 수 있는 팀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의 축구 영웅 나카타 히데요시(34)는 1998년 이탈리아 세리아A 페루지아에서 2시즌 동안 48경기에서 12골을 넣었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그는 명문팀 AS로마로 깜짝 이적했다. 그리고 그해에 동양인 최초로 이탈리아리그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하지만 AS로마의 우상인 프란체스코 토티(35)와 포지션이 완벽하게 겹치는 점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나카타는 패색이 짙거나 토티의 컨디션이 나쁠 때만 출장 기회를 얻었다. 점점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횟수가 많아졌고, 결국 클럽은 그를 파르마로 이적시켰다. 그 후 나카타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28세에 은퇴했으며, 환경운동가 길을 걷고 있다. 만일 그가 페루지아에서 좀 더 실력을 쌓고 상위팀으로 옮겼다면 그의 축구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주변 상황 탓에 주어진 길을 수동적으로 그냥 가는 경우가 많다. 일단 길에 들어서면 방향을 바꾸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열정과 패기를 잘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정확하게 찾는 직관력이 필요하다. 이는 젊은 음악도나 해외로 진출하려는 축구선수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에게 필요한 얘기일 것이다.
* 황승경 단장은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에서 축구 전문 리포터로 활약한 축구 마니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