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들어 치른 두 번의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는 친이계 후보가 당대표에 선출됐다. 지난해 7월 14일 치른 한나라당 전당대회.
친이계 “우린 완전히 비주류”
다시 1년이 흘렀다. 그사이 안상수 당대표가 ‘보온병’ ‘자연산’ 발언으로 잇따라 구설에 올랐고, 그를 밀었던 친이계까지 싸잡아 욕을 먹었다. 더욱이 친이가 주도한 4·27재·보궐선거(이하 재보선)에서 참패하면서 안상수 체제가 무너졌다. 안상수 체제 붕괴의 충격이 채 가시기 전 치른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이계는 결정타를 맞았다. 친이계가 지지한 안경률 후보가 중립 황우여 후보에게 완패한 것. 그들이 주도한 당내선거로서 첫 패배였던 셈. 친이계 핵심 의원은 “친이가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하는 생각에 온몸이 떨렸다”고 말했다. 다음 전당대회까지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친이계 손에서 당권이 벗어난 순간이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세 번째인 전당대회가 7월 4일 열린다. 전당대회 준비를 위해 꾸려진 비상대책위원장엔 우여곡절 끝에 친이계 정의화 의원이 앉았지만,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또한 뒤바뀐 흐름 앞에선 무기력했다. 비대위 소속 친이계 의원이 한 일이라곤 당헌·당규 개정안을 주도적으로 통과시킨 것뿐이다. 개정안의 뼈대는 ‘1인 1표제 전환, 여론조사 폐지’. 이를 두고 당내에선 조직 분포에서 친박계나 소장파를 앞서지만, 여론조사에서 앞서가는 후보가 없는 친이계가 전당대회 승리를 위해 도발을 감행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그 도발은 불발에 그쳤다. 친박과 소장파가 전국위원회에서 이를 부결시킨 것이다. 친이계 핵심 의원은 “이제 우리는 완전히 비주류”라는 말로 뒤바뀐 상황을 실감케 했다. 당헌·당규 논란 끝에 7·4 전당대회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친이계 품 안에서 3년간 머물던 당권이 4·27재보선을 기점으로 친박계 소장파 연합군이 마련한 ‘임시숙소’에 머물며 향후 2년간 거처할 새 보금자리를 찾는 것이다.
당내에선 당권경쟁이 또 다른 계파전쟁으로 치달아선 안 된다는 우려가 강한 편이다. 그렇지만 실제 계파전쟁을 피할지는 미지수다. 계파전쟁을 우려하는 만큼 총선을 주도할 차기 당권을 ‘적’에게 넘기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 또한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 친이계에선 “이번에도 지면 미래는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김무성, 원희룡, 나경원 카드를 놓고 고심해왔다. 3명의 장단점이 엇갈려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지만, 결국 원희룡 카드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원내대표는 6월 16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수도권 출신에게 당대표를 맡기는 것이 (당에게) 1%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원희룡 카드는 친이계 소장파가 주도한다. 친이계 서울지역 초선의원은 “원 전 사무총장은 개혁과 쇄신, 젊음이라는 상징성이 매력적”이라고 평했다. 운동권과 검사라는 극단의 경력을 가진 원 전 사무총장은 16대 총선을 앞두고 영입돼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으로 불리면서 개혁 노선을 걸어왔다. 이명박 정부 들어 쇄신특위위원장과 사무총장으로 당무 경력도 쌓았다. 친이계 소장파는 청와대-친이계와 소통이 가능하면서도 개혁성을 잃지 않은 원희룡 카드가 최적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왼쪽부터) 권영세 남경필 박진 원희룡 유승민 전여옥 홍준표(가나다 순)
다만 원 전 사무총장은 “친이계만의 당대표는 의미 없다”며, ‘친이 후보’라는 꼬리표에 부담을 느끼는 눈치다. 당이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모든 계파와 세력이 동의하는 지도부가 선출돼야 한다는 판단인 것. 실제 원 전 사무총장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직접 만나서라도 화합의 지도부를 관철시킨다는 구상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범 당권 후보’가 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다.
친박계는 대표 후보를 직접 출마시켜 총력전을 펼치는 전략은 구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의 의중을 잘 아는 친박계 중진의원은 “박 전 대표는 친박이 전당대회에 깊이 개입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다. 다만 현실적으로 대표까지는 아니더라도 최고위원은 1명 배출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차기 지도부와 최소한의 통로는 있어야 한다는 인식인 것이다. 유승민 의원이 1순위로 꼽힌다. 친박계 의원이 잇따라 모여 ‘추대’했다.
대표 후보를 출마시키진 않지만 대표를 노리는 다른 후보와 연대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여전히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친박 중진의원은 “친이계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움직여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친박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카드를 친이계가 민다면 친박계도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뉘앙스다. 만일 친이계가 내놓은 카드가 친박계와 절충점을 찾는다면 전당대회는 의외로 싱거운 싸움이 될 수 있다. 계파를 초월하는, 사실상 추대 형식을 띨 것이기 때문이다. 원 전 사무총장의 구상도 이런 시나리오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절충이 어렵다면 친박계도 대표를 노리는 다른 후보와 연대할 가능성이 높다. 홍준표 전 최고위원과 남경필 의원이 후보군으로 꼽힌다. 친박계 일부 중진의원은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홍준표 카드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6월 7일 열린 한나라당 전국위원회에서 친박계와 소장파는 친이계의 당헌·당규 개정 시도를 무산시켰다.
당 쇄신 주도했던 소장파는 주춤
물론 자칫 잘못하면 2006년 전당대회 꼴이 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당시 전당대회에선 권영세 의원이 예선을 거쳐 소장파 대표로 출마했지만 6위로 낙선했다. 소장파 표마저 계파전쟁에 휩쓸려 분산됐던 것이다.
현재로선 판세를 가늠하기 매우 어렵다. 만일 친이계와 친박계가 대표 후보를 놓고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최소한 특정 후보를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면 전당대회는 계파 충돌을 피하면서 ‘무난하게’ 마무리될 수 있다. 가능성은 반반이다. 하지만 친이계가 원 전 사무총장을 밀고, 친박계 홍 전 최고위원에게 표를 모아주는 식의 맞대결이 된다면? 누구도 승리를 자신하기 힘들다.
40대인 원 전 사무총장은 구태의연하고 늙은 이미지의 한나라당에 변화와 쇄신, 젊음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100여 명을 넘나드는 친이계 당협위원장의 조직적 지원과 30∼40대 젊은 대의원의 지지가 기대된다. 1만 명에 달하는 청년선거인단의 전폭적 지지도 예상 가능하다. 홍 전 최고위원은 원숙함과 함께 추진력 넘치는 리더십에 대한 기대감도 충족시킬 수 있다. 친박계와 중립지대의 지원이 기대된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여론조사 2위를 차지한 대중성도 강점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상대방을 압도하는 전력 우위를 보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세 번째인 7·4 전당대회의 최종 승자가 며칠 후면 밝혀진다. 친이계가 원내대표 경선 패배의 치욕을 씻는 명예회복전이 될지, 아니면 친박계가 연대 후보를 통해 또다시 친이계를 무너뜨릴지, 그것도 아니면 당내 모든 세력이 공감하는 정답이 나올지 궁금증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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