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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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 촉촉한 순정만화 ‘웹’에서도 궁합 잘 맞아요”

‘매리는 외박 중’ 만화가 원수연 씨 “두근두근 사랑과 감성, 더 보여주고파”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0-12-20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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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랑 촉촉한 순정만화 ‘웹’에서도 궁합 잘 맞아요”
    “2009년 초 인터넷에서 ‘매리는 외박 중’ 연재를 시작했더니, 어디엔가 꼭꼭 숨어 있던 ‘20년 전 독자’들이 툭툭 튀어나와 ‘오랜 팬’이라며 댓글을 달더군요. 정말 기뻤죠. 작가로서 제가 살아 있음을 느꼈고요. 그런데 순정만화 팬이 많긴 했나 봐요. 구청 가서 등본 하나를 떼도, 앉아 있던 여직원이 제 이름과 얼굴을 번갈아 보며 ‘팬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볼이 발간 소녀였을 텐데, 이젠 저랑 같은 아기 엄마가 돼 있네요.”

    ‘엘리오와 이베트’ ‘LET 다이’ ‘풀하우스’…. 20, 30대 여성이라면 학창시절 만화가 원수연(49) 씨의 작품 한두 편쯤 읽어봤을 것이다. 1988년 국내 최초의 순정만화잡지 ‘르네상스’ 창간호부터 읽었을 만큼 순정만화를 좋아했던 기자 역시 원씨의 ‘20년 전 독자’이자 ‘오랜 팬’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12월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단독주택이 쭉 늘어서 있는 골목을 지나 넝쿨이 우거진 담 가운데 은빛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담한 마당이 있는 2층 단독주택이 나타났다. 이곳이 원씨와 그의 남편인 만화가 강도하 씨의 작업공간이자 ‘풀하우스’를 연상케 하는 ‘스위트홈’이다. 2000년 원씨는 ‘위대한 캣츠비’로 유명한 만화가 강도하(41) 씨와 결혼했고 현재 열 살, 일곱 살인 아들과 딸이 있다. 1층엔 원씨의 작업실이, 지하엔 강씨의 작업실이 있고 2층엔 부부 침실과 아이들의 방이 있다고 했다.

    “작업실과 생활공간이 같이 있다 보니 조금 산만하긴 해요.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잡다한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아이들이 돌아와 함께 놀아줘야 하죠. 저녁 먹고 난 뒤에야 몰입해서 일을 할 수 있어요. 사실 순정만화 작업은 몰입 시간이 필요해요. 몰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감정이입이 되고, 그래야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거든요. 그런데 삶이 계속 ‘잘리고’ ‘나뉘다’ 보니 몰입이 잘 안 되는데, 어느 순간 발등의 불처럼 마감 시간이 다가오죠. 특히 인터넷 연재는 마감이 더 빠르고 잦아요. 조금 버거울 때도 있지만, 독자들과 함께 호흡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해요.”

    남편 강도하 씨가 이중결혼 소재 제공



    2009년 2월 원씨는 데뷔 22년 만에 처음으로 인터넷 만화 ‘매리는 외박 중’을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연재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여자 ‘매리’가 매력적인 록 가수 ‘무결’, 그리고 외모, 배경, 성격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남 ‘정인’과 이중결혼을 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현재 50% 정도 이야기가 전개됐다. 또 이 작품은 동명의 드라마(KBS2·사진)로 각색돼 현재 방영 중이다. 그런데 이중결혼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제공한 이는 바로 남편 강씨였다고 한다.

    “말랑 촉촉한 순정만화 ‘웹’에서도 궁합 잘 맞아요”
    “어느 날 남편이 ‘재미있는 스토리가 떠올랐다’고 하더군요. 한참 듣고 있는데, 문득 제가 하면 더 잘할 것 같았어요. 결혼에 대한 ‘판타지’와 ‘실제’를 ‘이중결혼’이라는 흥미로운 장치를 통해 진지하게 접근하고 싶었거든요. 2명의 남편이 실은, 결혼의 두 가지 측면을 상징하는 거죠. 저는 매리가 누구랑 맺어지는지를 떠나 매리도, 여성 독자들도 제 만화 속에서 행복해지길 원해요. 아, 결말을 누설한 건가요? 호호.”

    하지만 원씨는 “처음 하는 인터넷 연재가 쉽지만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보통 순정만화는 느긋하게 감정선을 건드려 독자가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데, 한 달에 두 번 60여 쪽씩 보여주는 잡지 연재는 이런 긴 호흡과 잘 맞았다. 하지만 인터넷 연재는 매주 15쪽 내외로 짧게 끊어가다 보니, 독자를 제대로 흡입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

    “미묘한 눈빛 한 번 던지고, 상대방에게 설레는 감정 하나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8쪽이 훌쩍 넘어가거든요. 그러다 보니 눈빛 교환만으로 한 회가 끝나기도 하죠. 이럴 땐 댓글 보기가 두려워요. ‘이야기가 시작하다가 만다’ ‘기승전결이 없다’ 등 비난이 많거든요. 연재 시작할 때 남편이 ‘절대 댓글을 신경 쓰지 마라’고 했지만, 처음엔 비난 댓글이 환청처럼 들려와 작업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어요. 하지만 매회 ‘기승전결’을 넣으면 전체적으로 볼 때 들쑥날쑥 웃기는 이야기가 돼요. 처음 생각했던 대로 꾸준히 밀고 나갈 계획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인터넷 연재의 가장 큰 매력은 댓글”이라고 강조했다. 댓글을 꼬박꼬박 읽으며 칭찬과 비난 모두 조언으로 받아들인다고. 또 10대 독자가 주를 이루는 만화잡지와 달리 독자층이 다양하다는 점도 인터넷 만화의 장점 중 하나다. ‘미디어다음’에 따르면 ‘메리는 외박 중’과 같은 순정만화는 여성이 80%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 중 20, 30대가 70% 이상이다. 40대의 비중도 15%나 된다. 반면 10대는 10% 정도다.

    “제가 잡지 연재를 더는 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 있어요. 주 독자층이 초등학생, 중학생이었거든요. 어린 친구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은 저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작가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인터넷 연재를 통해 저랑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독자들과 호흡하다 보니, ‘웹으로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말고도 여러 순정만화 작가가 인터넷 연재를 시작했는데, 좋은 현상이라고 봐요. 하지만 온·오프라인 만화 산업이 균형 있게 발전해야 해요. 인터넷 연재를 한 후 오프라인 단행본으로 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원작의 장점 다소 부족한 드라마

    “말랑 촉촉한 순정만화 ‘웹’에서도 궁합 잘 맞아요”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에 대해선 “다소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주인공을 맡은 탤런트 문근영(매리 역)과 장근석(무결 역), 김재욱(정인 역)은 마치 만화 속 인물이 현실에 튀어나온 것 같은 ‘싱크로율’에 무척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하지만 두 명의 남자 주인공이 팽팽히 맞서는 원작과 달리, 드라마는 남녀 주인공과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또 다른 남성이라는 무난한 삼각구도 로맨스로 진행돼 안타깝다는 것. “아직 초반인 만큼 조금 더 원작과 비슷하게, 원작의 장점을 잘 살렸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또 원씨는 “우리나라 만화가 경쟁력 있는 문화콘텐츠인 만큼 만화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개선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제 만화만 해도 중국, 대만,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에 수출됐고 팬 사인회도 자주 갔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어요. 제 지금 목표는 일본 시장입니다. 또 꽤 많은 한국 작가의 작품은 유럽에서 인정받고 있죠. 조금 쑥스럽지만(웃음), 스웨덴 한 출판사의 편집장이 남편인 강도하 씨에게 ‘한국 만화 중 당신 작품이 최고’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이처럼 우리 만화는 경쟁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낮고, 불법 복제물이 판을 치며, 작가들은 경제적인 부분을 걱정하죠. 그런데 인터넷과 모바일 세상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도 결국 우리의 몫이라고 봐요.”

    아무리 순정만화의 독자층이 넓어졌다고 해도, 순정(純情)은 순정이기에 아름답다. 30, 40대 독자라 해도 순정만화를 읽으며 10, 20대 때의 두근두근했던 감성을 느끼고자 한다. ‘매리는 외박 중’ 역시 결혼을 그렸다고 하지만, 풋풋한 순정만화의 본분은 유지하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그는 어떻게 순정만화적 감성을 유지하는 걸까.

    “저도 한때 ‘만화가는 철들면 안 된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니 마음가짐이 달라지긴 하더군요. 당시 동성애와 청춘의 혼란을 소재로 한 ‘LET 다이’를 그리고 있었는데, 감정 잡는 데 무척 어려움을 겪었죠. 하지만 사람에 대한 감성과 사랑은 더욱 풍성해졌어요. 조금 간지럽지만 제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은 아이를 낳은 것이에요. 그런 마음을 되새기며 작품을 쓰려고 해요. 두근거림은 살아 있되, 조금 더 따뜻하고 풍부해진 감성을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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