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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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당당 그녀들이 사는 법

누구나 결혼 고정관념에 반기…“우리가 선택한 삶” 20대까지 확산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0-12-20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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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혼 당당 그녀들이 사는 법
    “비혼녀를 아시나요?”

    국립국어원 홈페이지(www.korean.go.kr)의 ‘이런 말도 있어요’는 국립국어원이 조사한 새로운 말 중 아직 사전에 오르지 않은 말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묻는 장이다. 8월 9일 이곳에 ‘비혼녀’란 단어가 올라왔다. 국립국어원은 비혼녀를 ‘결혼하지 않은 여성.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의 ‘미혼’과 달리 자발적으로 혼인을 선택하지 않은 상태임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로 정의했다. 사람들은 “현재 일상생활에서 비혼녀란 말을 쓰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 225명 중 60명(26%)이 쓰고 있다고 답했다. 실제 비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비혼’을 아는 사람이 늘었다는 건 반가운데, 비혼이면 그냥 비혼이지 비혼녀가 뭐예요? 된장녀처럼 무슨무슨녀도 아니고.”

    12월 8일 첫눈이 내린 날, 마포구 동교동 ‘언니네트워크(이하 언니네)’ 공간에서 정현희(29) 씨와 이김명란(28) 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여성주의단체 언니네의 액션공감팀에서 활동하며 비혼 운동을 벌이고 있다. 재밌고 즐거운 비혼 운동이 이들의 모토다.

    재밌고 즐거운 비혼운동



    아직 생소하지만 비혼 운동의 역사는 꽤 깊다. 2005년 언니네는 당시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개편을 추진하는 데 반대해 ‘다양한 삶의 형태를 선택할 권리, 여성이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행복할 권리’를 찾는 운동을 펼쳤다. 그 고민의 연장선에서 우리가 ‘정상가족’이라고 하는 제도 밖에서 살아가는 비혼 여성들의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언니네는 2007년 1회 비혼 여성 축제를 개최하며 비혼 선언을 내놓았다.

    “비혼은 ‘누구나 결혼해야 하고 결혼하고 싶어 한다’는 고정관념에 물음표를 던집니다. 비혼은 누구나 원하는 방식으로 살 자유와 권리가 있다는 우리 자신의 선언입니다.”

    현희 씨와 명란 씨는 20대 여성이다. 기자는 나이를 듣자마자 “20대의 비혼 선언은 섣부른 결정이 아닐까”라고 물었다. 현희 씨는 “비혼을 이야기하면 30대 골드미스를 기대한다. 하지만 20대의 비혼 선언에 더 주목해야 한다. 심화된 비혼 현상의 징후가 앞으로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모른다”고 말했다. 비혼은 여자를 이미 결혼한 여자,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자로 나누는 고정관념에 대한 반발이다. 그렇다고 비혼 여성끼리 홀로 삶을 꾸려나가는 것도 아니다. 단지 결혼을 하지 않을 뿐 그들은 외롭지 않다. 공동체를 꾸려 함께 살거나 각자 살면서 친밀감을 유지한다.

    비혼 당당 그녀들이 사는 법

    언니네에서 활동하는 이김명란 씨(좌)와 정현희 씨.

    이들이 정상가족 바깥의 삶을 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비혼 결심은 어느 날 갑자기 한 게 아니다. 현희 씨의 결심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에 입학하면 성인이 되고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여전히 가족들의 압박이 있었어요. 사회 구성원이 되려면 밟아야 하는 코스가 있었지요.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결혼이 아니면 독립은 없다고 하더군요.”

    명란 씨도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결심했다. 명란 씨는 누군가 “집안에 불화가 있어 비혼을 결심했느냐”고 물으면 “왜 결혼을 하려 하느냐”고 되묻는다.

    “질문을 해보면 결혼을 왜 하는지 뚜렷하게 답을 하지 못해요.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결혼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죠.”

    견고한 결혼제도를 외면한 이들을 가족과 사회는 반가워하지 않는다. 현희 씨 어머니는 딸에게 시집가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시집가지 않는 것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단지 딸의 비혼 결심이 누그러지기를, 변심하기를 기대할 뿐이다. 현희 씨는 한부모가정에서 고생하며 키워준 어머니에게 미안하지만 타협할 생각은 없다.

    주변에서는 돈 문제를 가장 걱정한다. 대부분의 비혼 여성은 풍족한 골드미스가 아니다. 평범한 삶을 꾸리며 살아가거나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아등바등 산다. 두 사람도 언니네에서 일하며 받는 돈이 수입의 전부다. 현희 씨는 “‘골드’한 딸들에게는 부모가 조건 따져보며 결혼을 천천히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골드하지 못한 우리 부모들은 딸들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기에 신자유주의 시장에서 살아남았으면 하는 마음, 결혼시키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명란 씨는 최근 어머니와 크게 싸웠다. 어머니가 명란 씨 이름으로 든 보험을 명란 씨가 해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저축도 하고 생활도 할 만큼 충분히 번다고 생각하지만, 어머니는 딸의 미래가 불안하기만 하다. 어머니는 명란 씨와 싸운 뒤 보험을 되돌려놓았다.

    비혼 결심의 바탕에는 생활방식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다. 한국 사회의 화두 중 하나는 노후대책이다. 자식이 있든 없든 홀로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아야 한다. 명란 씨는 “현재 한국은 국가가 노후를 해결해주지 않으니 각자 열심히 사보험을 들며 돈으로 해결하고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친밀감, 유대감을 느끼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희 씨도 현재의 가족제도에 비판적이다.

    “가족 구성원이라 해도 각자의 생계유지에 바빠 심리적 지지를 보내거나 위안이 돼주지 못해요. 이런 상황에서 정상가족이 비혼보다 좋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몸이 아파서 가족의 보살핌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비혼 여성끼리 돌봄 품앗이를 하면 된다고 말한다. 이것이 이들이 말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관계’다.

    비혼 당당 그녀들이 사는 법
    이기적? 남성들이 훨씬 더 이기적

    저출산 시대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자 이들의 선택을 ‘이기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외국에서 신부를 수입하는 상황인데, 출산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명란 씨는 “남성들이 이기적으로 살아왔다. 여성의 생애주기는 M자 곡선으로 출산, 육아 뒤 재진입을 하려면 낮은 곳으로 가거나 포기를 해야 한다. 여자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살아온 사람이 누구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현희 씨는 “비혼 여성을 소비지향적 이미지로 보는데, 비혼 여성 중에 잘사는 사람은 소수다. 또래 비정규직 친구들 삶의 실상을 보면 이기적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제도와 정책도 비혼 여성에게 불리하다. 현희 씨는 “결혼한 사람에게는 세제나 대출 등 여러 혜택이 따른다. 하지만 비혼은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불이익을 당한다. 비혼이면 지원해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시선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비혼 여성들은 전셋집을 마련하고 싶어도 전세자금 대출이 어려워 원룸과 월세방을 전전해야 한다. 한 여성 모임은 35세 미만에 결혼하지 않은 1인 가구가 대출을 받지 못하는 문제를 오랫동안 지적해왔다. 1인 가구에 대한 ‘징벌적 세금’도 마찬가지. 전기요금의 경우 다양한 할인혜택이 있지만 1인 가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비혼 운동가들은 다문화가족, 다자녀가정의 지원을 줄이자는 게 아니라 ‘저출산 위기 담론’을 강조하며 특정 가족 우대정책을 펴는 정부의 가부장적 논리에 대해 비판한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도 있다. 비혼 운동가 대부분은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살아간다. 비혼 여성 중에는 위급한 상황에 응급실에 갔다가 병원에서 가족의 동의서를 요구해 난처했던 사람이 많다. 현희 씨는 “살아가면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많다. 나를 돌봐주고 지지하는 사람이 혈연적 의미의 가족이 아닐 수 있다. 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제도적으로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혼 PT나이트 프로젝트 진행

    스스로 비혼의 삶을 선택했지만 현희 씨와 명란 씨에게도 고민은 있다. 현희 씨는 “결혼에는 결혼부터 출산, 자녀교육 등 정해진 절차가 있다. 하지만 비혼 여성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불리한 점이 있다면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등을 참고할 생애주기가 아직 없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왕언니’들과 많이 접촉하고 제주도, 전주 등지의 비혼공동체를 방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명란 씨도 “삶의 모델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그래서 비혼 운동 집단을 모아서 경험담이나 노하우를 나누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비혼 PT(프레젠테이션) 나이트’라 이름 붙이고 10개에서 15개 집단을 섭외해 발표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에게 비혼은 ‘비정상’을 의미하겠지만, 이들에겐 넘어야 할 삶의 과정일 뿐이다. 잘 웃는 현희 씨와 명란 씨는 30대를 준비하며 삶에서 다양한 관계 맺기에 열심이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즐겁게 지내고 지지도 해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관계를 늘려가는 것이다. 현희 씨의 말이다.

    “비혼이란 말에도 갈증이 있어요. 비혼을 알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고 싶어요. 비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걸 넘어서, 비혼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그에 맞는 이름을 갖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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