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10월 12일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해창리 들녘에서 콤바인을 직접 운전하며 벼 수확을 하고 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차영 대변인의 평가다. 차 대변인은 손 대표의 최측근이다. 지난 전당대회 때도 손 대표의 대변인 노릇을 했다. 그런 그의 평가인 만큼 가장 적확할 수도, 아니면 편향된 시각일 수도 있다.
다만 손 대표가 요즘 끊임없이 뭔가를 버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당내 인사에서 측근들을 버렸고, 한미 FTA 재협상을 반대했던 평소 소신도 버렸다. 그 때문일까.
손 대표가 10월 3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선출된 지 1개월 남짓 지난 지금,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도는 급상승했다. 6~8%에 머물렀던 지지율이 2배 이상 늘어난 15% 선까지 치솟은 것. 여야 대권후보군 중에선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과연 이 같은 결과가 차 대변인의 설명처럼 손 대표가 버렸기 때문에 얻은 것일까. 최근 정치권 안팎에선 손 대표의 지지율 상승 배경에 대한 분석과 그의 리더십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등장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평가하기엔 시기상조라는 분위기가 대세지만, 손 대표의 지지율 상승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다.
야당 대표주자 대체로 긍정적 평가
유민영 피크15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올해 6월 지방선거 당시 선거 기여도가 컸고, 9월 재보궐선거 때 수도권을 중심으로 강원지역까지 지지층을 넓혀 정치적 영향력이 커졌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돼 명실상부한 야당의 대표주자로 인정받으면서 자연스레 지지도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인영 최고위원은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데 따른 컨벤션 효과도 있지만, 손 대표가 당원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 순조롭게 당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지지율이 상승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손 대표가 이처럼 무난하게 당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취임 이후 당 안팎의 정치적 환경과도 무관치 않다. 손 대표가 대표에 취임하자마자 국회는 국정감사에 돌입했다. 여야 정치권은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 원외인 손 대표는 서민정치를 내세우면서 농민과 중소상인을 만나는 등 민생 현장을 주로 찾았다.
당 정체성과 정책을 놓고 손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던 정동영, 박주선 두 최고위원이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재외공관 국정감사 일정에 맞춰 한동안 해외에 나간 것도 손 대표로선 부담을 더는 데 도움이 됐다.
손 대표 나름대로의 노력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측근 인사를 배제한 당직자 인선이 대표적이다. 당초 당 안팎에선 당내 지지기반이 약한 손 대표가 사무총장과 비서실장, 대변인 등 주요 당직 중 2~3개는 최측근으로 배치할 것이라 전망했다. 구체적으로 사무총장에는 김부겸 의원, 비서실장에는 이찬열 의원, 대변인에는 차영 대변인 등이 거론됐지만, 손 대표는 초기 인선에서 이들을 모두 배제했다. 그 대신 이낙연 의원을 사무총장에, 양승조 의원을 비서실장에, 이춘석 의원을 대변인에 앉혔다. 이 대변인을 제외한 나머지는 범(汎)손학규계에는 포함될 수 있지만 측근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차 대변인은 뒤늦게 합류했다.
당 대표 지명직 최고위원에 김영춘 전 의원을 선택한 것도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산 출신인 김 전 의원은 1984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한 대표적인 운동권 386 출신이다. 손 대표와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에 몸담았던 전력이 있지만, 2004년 정동영 최고위원이 열린우리당 의장이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는 등 현 민주당 지도부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정 최고위원이 손 대표의 초기 인사에 별다른 비토를 하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후문이다.
또 손 대표가 자신의 소신을 고집하지 않고 당 대표로서 당내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것도 지지도 상승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손 대표는 예전부터 한미 FTA 찬성론자였다. 2008년 4·9총선 직후 손 대표는 “한미 FTA를 조속히 처리해 통합민주당이 신뢰받는 대안이 될 수 있음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손 대표는 통합민주당 대표였다.
그런데 손 대표는 최근 자신의 소신을 일단 접었다. 정동영, 박주선, 천정배, 조배숙 최고위원이 독소조항 제거를 위한 한미 FTA 전면 재협상을 주장하는 등 당 지도부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린 데 따른 것. 손 대표는 당내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홍재형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한미 FTA 특위를 가동시켰다. “특위를 통해 당론을 모으고, 자신도 그 과정에 참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라는 게 손 대표 측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손 대표가 10월 27일 서울 모처에서 비공개로 최고위원 워크숍을 열고 천정배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한 ‘당 개혁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당 개혁에 필요한 모든 제도정비를 일임한 것은 당론을 중심으로 당을 이끌어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인영 최고위원은 이에 대해 “손 대표가 분명한 자기 색깔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당 대표로서 당론을 모으는 데 노력하는 한편, 정부여당을 향해 비판을 강화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손 대표와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정동영 최고위원 측은 “아직 이런저런 평가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전제하고 “손 대표가 지금처럼 탕평인사와 당내 의견을 광범위하게 청취하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모두에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10·27재보선 참패 아직은 관심과 기대치?
10월 14일 기업형 슈퍼마켓(SSM) 피해 지역인 서울 성북구 정릉동 소상공인들을 만나 의견을 주고받는 손학규 대표.
“당 대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자리다. 자칫 반대파에게 발목을 잡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안 하려면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 정세균 최고위원이 지난 2년간 당 대표로서 해왔던 ‘선당후사’의 길이 그런 것이다. 손 대표가 지금처럼 정책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면 앞으로 입을 열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그러면 대권도 자연스레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 관계자가 지적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법안에 대한 손 대표의 어정쩡한 태도다. 손 대표는 SSM 규제법안인 ‘유통산업발전법안’과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안’ 동시처리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분명한 당론을 정하지 못한 채 분리처리를 주장한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떠넘기는 모양새를 취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이철희 부소장은 “배춧값이 폭등하자 배추밭으로 달려가서 배추를 뜯어먹는 등 민생현장으로 달려간 손 대표는 그동안의 야당 대표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고, 그게 지지율 상승효과를 이끈 것 같다”면서 “하지만 이것은 지지층의 관심이나 기대치를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손 대표가 이 상승세를 이어가려면 손 대표만의 정치와 여러 현안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 확실한 손 대표의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손 대표가 내놓은 콘텐츠는 전무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손 대표도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한 듯 최근 자신만의 정치를 위한 키워드를 내놨다. ‘국민 공감의 정치’다. 차 대변인은 “함께 잘사는 나라, 국민생활 우선정치를 위해 국민 속에서 국민의 눈으로 보고 국민의 힘으로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10·27재보궐 선거에서 손 대표는 상처를 입었다. 민주당의 텃밭인 광주 서구청장 재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무소속에 이어 국민참여당 후보에게까지 밀리며 3위에 그쳤다. 후보공천 과정에 손 대표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당력을 집중한 텃밭에서의 참패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전당대회에서 자신을 지지해준 광주지역 민심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과연 국민은 손 대표의 새로운 키워드에 공감할 수 있을까. 그 결과가 바로 손 대표의 정치적 미래이자, 그의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