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장 면세점 설치는 공항공사와 관세청, 항공사 등 이해당사자 간의 의견대립으로 15년째 지지부진한 상태다.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 설치된 한 면세점.
“이용객 편의” vs “보안·세관 어려움”
출국장이 아닌 입국장에 면세점이 들어서면 이런 문제는 사라진다. 이용객은 국내로 들어오기 직전 면세점을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공항은 출국장에 면세점 66개가 즐비한 것과 대조적으로 1층 입국장에는 1개도 없다. 현행 관세법에 해외 반출 목적으로만 면세품을 구입하도록 규정돼 있어 입국장에는 면세점을 설치할 수 없는 탓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출국장뿐 아니라 입국장에도 면세점을 만들어달라는 이용객의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홍콩, 중국, 영국, 호주 등 62개국 111개 공항에서 출국장 및 입국장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유독 한국에만 입국장 면세점이 없다는 것. 입국장 면세점 설치에 적극적인 곳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공항공사)다. 공항공사 마케팅팀 이상조 팀장은 “입국장 면세점이 생기면 출국장 면세점에서 구매한 물건을 다시 갖고 귀국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외국에서 쓰는 비용을 한국에서 쓰기 때문에 외화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점도 입국장 면세점 설치의 주요 이유로 거론된다. 한국인이 해외 면세점에서 사용한 금액은 연간 7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2009년 12월 공항공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94%가 입국장 면세점에서 물건을 사겠다고 답했다. 입국장에서 구입하면 그만큼 외화 유출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에 힘이 실린다.
국회예산정책처도 국제공항의 운영 효율성 제고를 위해 공항공사의 주장을 거들고 있다. 9월 27일 예산정책처는 ‘국제공항사업 평가’ 보고서를 통해 “세계적으로 입국장 면세점이 증가하고 있다”며 “많은 해외여행객이 출국 때 공항 면세점에서 구입한 물품을 여행기간 소지하고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이러한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입국장 면세점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여론을 등에 입고 그동안 입국장 면세점 도입을 위해 16대, 17대 국회에서 3차례 의원입법을 발의했다. 그때마다 관세청과 항공사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돼 다시 추진하는 일이 반복됐다. 18대 국회에서도 입국장 면세점 설치를 골자로 하는 관세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관세법 개정안이 몇 번이나 무산된 전례에서도 알 수 있듯 입국장 면세점 설치는 간단치 않은 문제다. 인천공항 이전 김포공항이 국제선을 담당하던 1994년부터 이 문제가 제기됐을 정도로 오래 묵은 사안이나 논의는 진전되지 않은 채 제자리걸음이다. 2001년 개항한 인천공항에 입국장 면세점을 만들기 위해 착공 단계에서부터 여객터미널 2곳, 탑승동 2곳 등 4곳에 총 550㎡ 규모의 부지를 마련해뒀으나 관련법 개정이 표류하면서 사실상 방치돼 있다.
논의가 진척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관세청과 항공사 등의 반대 때문이다. 관세청은 “입국장 면세점 설치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반응이다. 세금 형평성 문제와 밀수 단속의 어려움이 있음은 물론 보안상 문제도 많다는 것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한국은 이라크 파병국으로 테러 위협이 상존한다. 공항·항만의 대테러 감시, 단속 활동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입국장에 면세점을 설치하면 화장품, 향수 등 강한 향 때문에 마약, 폭발물, 검역 탐지견의 후각 탐지 능력 저하가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공항공사·항공사 수익 문제도 걸려 있어
항공사들은 기내 면세점으로 고수익을 얻고 있다. 입국장 면세점이 설치되면 기내 면세점 매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입국장 면세점 설치를 두고 표면에선 국민의 편의와 보안 등을 반대 이유로 거론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권 문제가 얽혀 있다. 그동안 출국장 면세점을 이용하기 부담스러운 이용객들은 귀국하는 항공기의 기내 면세점을 이용해왔다. 기내에 배치된 카탈로그에서 물건을 고른 뒤 승무원에게 주문해 물건을 받는 것이다.
항공사 편에선 기내 면세점은 별도의 임대공간과 판매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고수익 사업이다. 자유선진당 변웅전 의원실에 따르면 2009년 대한항공의 기내 면세점 매출액은 1680억 원, 아시아나항공은 822억 원으로 두 항공사의 기내 면세품 매출액은 연간 2500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입국장 면세점이 설치되면 기내 면세점이 직격탄을 맞는다. 변웅전 의원실 측은 “항공사의 반대 요지는 ‘기내 면세품 매출 감소’다. 입국장 면세점을 설치하면 기내 면세점 매출은 다소 감소할지 모르지만 해외 면세점 소비를 줄여 귀한 외화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항공사 측은 “기내 면세점 매출은 일부에 불과하다. 항공사로서는 운송이 원활히 되는 것이 최고”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입국장 면세점 설치는 공항공사가 임대 수입을 늘리기 위한 방책이다. 공항공사가 돈벌이에 급급하다”고 날을 세웠다. AOC 관계자는 “동일한 면적의 공간을 항공사에 임대하면 공항공사는 연간 2억 원의 임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반면 이를 면세점 등 상업시설에 임대하면 156억 원의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공항공사 측에선 당연히 면세점을 선호한다”며 “공공기관이나 다름없는 공항공사가 손쉽게 돈을 벌려고 입국장 면세점 설치를 추진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10월 4일 변웅전 의원이 다시 한 번 관세법 개정안을 발의함으로써 입국장 면세점을 추진하려는 공항공사와 관세청·항공사 등 이해당사자 간의 지루한 힘겨루기가 계속될 전망이다. 공항공사는 관세청 등 일부 기관의 우려에 대해 “융통성 있게 취급 품목을 정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적극 추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입국장 면세점 설치라는 해묵은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아니면 과거처럼 흐지부지 변죽만 울리다가 무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