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세계는 미국발(發) 금융위기를 겪었다. 이 위기는 금융을 둘러싼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그중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패시브(Passive) 투자의 증가다.
패시브 투자는 전체 시장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장 자체가 성장하는 것을 따라가면 투자자는 수익을 얻게 된다.
시장이라는 말이 상당히 추상적일 수 있는데, 실제로는 코스피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 같은 시장 지수를 쓴다. 패시브 투자의 반대는 액티브(Active) 투자다.
액티브 투자는 주가가 오를 것 같은 종목을 골라내거나, 시장이 좋을 것 같은 타이밍을 맞추는 등의 기술을 써서 하는 투자다. 일반 개인투자자는 뮤추얼펀드를 통해 액티브 투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액티브 펀드에 등 돌린 투자자들
금융위기 이후 패시브 투자의 증가는 두 가지 특징을 보인다. 이 특징들은 거의 모든 선진화된 금융시장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첫 번째는 액티브 투자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패시브 투자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액티브 투자는 급속히 줄고, 패시브 투자는 급속히 늘었다.
두 번째는 주식처럼 증권거래소에서 실시간으로 거래되는 ETF(Exchange Traded Fund)를 통한 패시브 투자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ETF는 주식처럼 거래가 가능해 빠르고 편리할 뿐 아니라 수수료가 뮤추얼펀드에 비해 상당히 저렴하다는 장점 덕에 급속히 성장했다. 다양한 뮤추얼펀드와 비슷한 특징을 가진 ETF를 거의 다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ETF는 다양해졌다.
투자자들은 왜 갑자기 이런 변화를 택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투자 실적 때문이다. 액티브 뮤추얼펀드의 실적을 이야기할 때는 비교가 되는 패시브 펀드의 실적과 대조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하면 지난 5년간 오직 11.2%의 액티브 뮤추얼펀드가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패시브 펀드 가운데 하나인 뱅가드 500 패시브 인덱스 펀드보다 좋은 성과를 냈다고 한다. 미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유럽 여러 국가의 액티브 뮤추얼펀드도 미국과 비슷하거나 더 나쁜 결과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결과가 나온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기본적으로 해를 거듭해 계속 시장을 이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여러 선진국의 주식시장 지수는 좋은 성과를 보여왔다. 재정위기까지 겪고 회복이 더디던 유럽의 주식시장 지수조차 지난 5년간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여왔다.
전반적으로 주식시장 지수가 좋은 상태에서 액티브 펀드 매니저들은 이보다 더 좋은 성과를 보여야만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여기에 더해 액티브 펀드 투자자들은 훨씬 많은 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이 수수료를 제하고 난 수익률이 이렇게 위기 이후 회복세에 있는 주식시장의 수익률과 비교해 높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투자자들이 액티브 투자를 외면하자, 해외 많은 자산운용사는 패시브 펀드의 운용과 판매에 더 중점을 두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또한 기존 특정한 액티브 투자에 에지를 가지고 있던 중·소형 자산운용사는 투자금이 많이 빠져나가면서 고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 패시브 투자가 맞는 선택일까.
앞에서 액티브 투자가 쓰는 방법으로 시장보다 더 좋은 성과를 지속적으로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 했다. 그렇다. 그런데 만약 주식이 오르내리는 타이밍을 제대로 잡을 수 있다면 액티브 투자는 패시브 투자보다 훨씬 많은 성과를 낸다. 특히 액티브 투자를 통해 엄청나게 나쁜 시간들만 피할 수 있다면 액티브 투자는 패시브 투자에 비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다.
하비에르 에스트라다(Javier Estrada) 스페인 IESE 비즈니스 스쿨 교수의 연구를 보면 지난 40년간 주식시장이 가장 나빴던 열흘간만 주식시장에 투자하지 않는 기술이 있었다면 평균 2배 이상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패시브 펀드 쏠림의 결과
현재 세계 투자자들이 액티브 펀드를 외면하는 이유는 금융위기 이후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수수료가 싼 패시브 펀드가 더 좋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투자자들의 의사결정에 금융위기 이후 최근 10년 동안 경험이 너무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또다시 과거 수익률을 쫓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단지 이번에는 액티브 펀드의 과거 수익률을 쫓아 액티브 펀드를 골라내는 것이 아니라, 패시브 펀드의 과거 수익률을 쫓아 떼를 지어 몰려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투자자들이 패시브 투자로 몰리면 많은 투자금이 몇 개의 대형 패시브 펀드 상품에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세계 금융시장은 이미 이런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한두 개 자산운용사의 자산은 엄청나게 많아진 반면, 나머지 자산운용사는 그냥 남아 있거나 심지어 자산이 줄어드는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두 개 회사가 금융시스템 전체에 미치는 시스템 리스크가 커진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시장이 추락하면(market crash), 그 리스크는 크고 오래 지속된다.
이는 그동안 시장의 이상상태(market’s abnormality)가 생길 때마다 그 기회를 수익률로 바꾸면서 이상상태를 없앴던 액티브 펀드의 활동을 줄게 해 시장이 비효율적이 될 것이다. 결국 끝에 가서는 시장이 비효율적으로 바뀌면서 액티브 펀드는 좀 더 쉽게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과거 수익률을 쫓는 투자자들은 다시 패시브 투자를 버리게 될 텐데, 이때 너무나 많은 자금이 한꺼번에 패시브 투자에서 빠져나온다면 이는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다. 그리고 투자자들은 또 한 번 패시브 투자를 탓하고 액티브 투자로 옮겨갈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패시브 투자와 액티브 투자가 각각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사이클이 반복됐다. 그리고 많은 개인투자자가 과거 수익률을 쫓기 때문에 한창 올랐을 때 사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앞에서 패시브 투자의 증가는 ETF의 증가를 통해서도 급속히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액티브 ETF도 쉽게 볼 수 있지만, 많은 ETF는 지수를 기반으로 한 패시브 상품의 자산배분 등을 통해 급속히 성장했다. 그런데 이 패시브 상품을 묶어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행위는 많은 경우 패시브 투자라고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보자. 패시브 주식 ETF를 60%, 그리고 패시브 채권 ETF를 40% 섞어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치자.
그리고 6개월 후 주식 ETF의 비중을 70%로 늘렸다. 이 의사결정에는 주식시장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뒷받침돼 있기 때문에 패시브라 볼 수 없다. 액티브한 의사결정이다. 또 다른 한 가지 경우는 지수에 투자한다고 해서 모두 패시브하게 시장을 따라간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수를 만드는 자체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방법을 선택하는 과정 역시 액티브한 의사결정이다. 예전 같은 금리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명한 투자는 누구에게나 필수다. 그리고 현명한 투자의 가장 기본은 무엇을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개인투자자를 다치게 하는 것은 수익률만 뒤쫓는 행위다.
영주 닐슨
•전 헤지펀드 퀀타비움캐피탈 최고투자책임자
•전 Citi 뉴욕 본사 G10 시스템트레이딩헤드
•전 J.P.Morgan 뉴욕 본사 채권시스템트레이딩헤드
•전 Barclays Global Investors 채권 리서치 오피서
•전 Allianz Dresdner Asset Management 헤지펀드 리서치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