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Mirror, 2010, 768 oxidized steel tiles, motors, control electronics, video camera 244×132×15cm, edition of 6, bitforms gallery ▲Mirrors Mirror, 2008, 768 polished steel tiles, motors, control electronics, video camera, custom color lighting, 223.5×167.6×15.2cm, edition of 6, bitforms gallery
가혹한 운명의 화살 앞에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라고 고뇌하던 햄릿. 그가 21세기에 산다면 아마 “접속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라고 하지 않을까요? 2009년 만 3세 이상 인구의 인터넷 이용률은 77.2%이고, 그중 93%가 하루에 한 번 이상 인터넷에 접속하며, 주 평균 접속시간이 14시간이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집 주소보다 e메일 주소를 더 많이 사용하고, 메신저로 대화하며, 온라인으로 쇼핑하고 게임하고…. 컴퓨터의 발달은 우리의 일상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미술은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먼저 전통 미술의 개념을 뒤흔들어 놓았던 기술의 발전을 살펴보겠습니다.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회화의 재현성에 결정적 타격을 입힌 사진의 발명이 첫 번째 신호탄이고, 먼 곳의 사건을 안방에서 생중계로 볼 수 있게 만든 TV와 반복 재생이 가능한 비디오의 발명이 두 번째라면, 가상현실을 생산하는 컴퓨터의 출현이 세 번째이자 현시점에서 가장 강력한 도전매체겠지요.
사실 미술계에서는 컴퓨터를 단순히 드로잉 도구나 가상현실을 생산하는 매체로만 사용해왔습니다. 1986년 해럴드 코헨은 컴퓨터가 스스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로봇 화가 ‘AARON’을 발명하고, AARON의 첫 흑백 드로잉을 선보인 적이 있습니다. 1990년 제프리 쇼는 ‘읽기 쉬운 도시(The Legible City)’에서 관람자가 대형 스크린 앞에 설치된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핸들 방향을 바꾸면 암스테르담에서 맨해튼까지 원하는 도시의 골목골목을 누비는 것처럼 스크린 영상이 바뀌도록 프로그램을 입력했습니다. AARON이나 ‘읽기 쉬운 도시’는 그림 그리는 도구나 가상현실을 생산하는 도구로 컴퓨터를 활용한 예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컴퓨터가 도구로 쓰였지만 가상이 아닌 진짜 현실을 만들어낸 작품이 있으니, 바로 다니엘 로진(Daniel Rozin·49)의 ‘Rust Mirror’(2010)입니다. 관객이 녹슨 철판 조각들로 만들어진 스크린 앞에 서면 스크린에는 어느새 관객의 이미지가 형성됩니다. 관객이 움직일 때마다 철판이 철커덕철커덕 움직이고, 이와 함께 스크린의 이미지도 변하죠. 사실 작품에는 비디오카메라가 설치돼 있는데 카메라가 잡은 이미지 정보를 컴퓨터가 실시간 분석해 픽셀별로 명암을 계산합니다. 이 계산에 따라 철판 뒤에 달린 모터가 각각의 철판을 얼마만큼의 각도로 움직일 것인지를 결정하는데요. 철판의 각도에 따라 빛이 반사되는 양이 달라지고 이 때문에 관객의 이미지가 생성되는 거죠. 이를 통해 아날로그 실체인 관객이 디지털 수치로 계산돼 픽셀로 변하는 과정을 눈앞에서 시청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아 개념이 처음 생성되는 건 거울, 그리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타자를 통해서라고 합니다. 이 시대, 우리의 자아 개념은 바로 디지털 기술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을 디지털 거울에 비친 자화상으로 보여줍니다. 이제 가상현실은 컴퓨터 안에 갇힌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디디는 이 현실세계까지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