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인공적인 바이러스도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신종플루 바이러스(왼쪽)와 최근 백신 목적으로 재설계한 사스 바이러스.
인공생명체는 유전자를 설계하고 DNA를 합성한 뒤 생명체에 도입해 만든 생명체를 말한다. 이들은 새로운 유전자로 구성된 새 기능을 가진 생명체다. 인공생명체는 유전자변형생물체(LMO·Living Modified Organism)와는 구별된다. LMO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한두 개의 유전자를 주입해 만든 것이지만, 인공생명체는 기술적 진보를 바탕으로 수십만 염기쌍의 유전자를 넣거나 전체 유전자를 재설계한 뒤 합성해 만든 것으로 LMO가 수행할 수 없었던 새로운 기능을 지닌다.
유전자 재설계 새로운 생명체 만들어내
인류 문명의 역사는 생명체들을 이용해 농업과 목축을 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인류는 식량과 의복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생물들을 진화시켜왔다. 그러나 수만 년 동안 인류가 진행시킨 생물자원의 진화는 우수한 품종 간의 교배로 더 나은 품종을 만드는 데 불과했다. 따라서 전혀 다른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20세기에 들어와 인류는 생물체의 정보가 DNA에 포함돼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1953년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한 후, 생물체 정보를 읽어내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유전자·DNA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려는 연구가 끊임없이 진행됐다. 1970년대에는 DNA의 특정한 염기서열만 잘라내는 제한효소가 발견되고, 잘라진 DNA 조각을 다시 붙여주는 라이게이즈 효소가 발견돼 이를 이용한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 발명됐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의 발명으로 인류는 어떤 유전자든 원하는 생물체에 삽입해 지금까지 만들 수 없었던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는 1980년 유전자 재조합 특허를 획득, 매년 수천만 달러의 로열티를 받는다. 이 기술을 이용해 첫 번째로 만든 생명체가 인간의 인슐린을 생산하는 대장균이다. 인간의 인슐린 유전자를 담은 약 200개 염기쌍의 DNA를 화학 합성해 대장균에 넣어 인간 인슐린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됐다.
1980년대 초 실리콘밸리에는 인간의 질병 치료에 유용한 인체 단백질을 생산하는 제넨텍, 암젠 같은 여러 회사가 생겨났다. 지금까지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미생물부터 식물, 동물까지 다양한 LMO를 만들어 여러 산업에서 이용하고 있다.
생명공학 시대는 두 바퀴에 의존해 고속질주를 해왔다. DNA 정보를 읽어내는 기술과 DNA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기술이 그것이다. 1975년 생어(Sanger)에 의해 DNA 염기서열을 하루에 수백 염기쌍씩 읽어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는데 현재는 인간 전체 DNA 32억 염기쌍을 하루에 읽어내는 장비가 개발됐다.
1980년 미국에서 DNA를 합성하는 포스포라미디트(Phosphoramidite) 화학물질이 발명돼 하루에 DNA 20~30염기쌍을 합성할 수 있게 됐다. 현재는 하루에 수십만 DNA 염기를 합성하는 장비를 바이오니아에서 개발 중이다. 1980년대 중반 실리콘밸리에서 DNA 자동합성기와 DNA 자동염기서열 결정장비가 개발된 뒤 해마다 그 속도가 2배씩 빨라졌다.
인간 게놈프로젝트를 통해 생명체 전체 유전자 정보를 읽어내는 기술의 발전으로 2009년까지 각종 미생물, 동식물 1100여 종의 전체 유전자가 밝혀졌다. 그 결과 생명체의 원소기호라 할 수 있는 유전자 염기서열과 그 기능을 알게 됐다. 인류는 이를 설계하고 대량으로 DNA를 합성해 인간이 원하는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DNA 합성 기술 한국이 최고
DNA 기술은 반도체 기술보다 발전 속도가 빠르다. 매년 유전자 정보의 양이 평균 2배씩 늘고 있다. 이 추세라면 앞으로 10년 후 100만 종 이상의 생명체에 대한 유전자 염기서열 정보를 축적해 지구상 대부분의 생물체 DNA 정보가 유전자 데이터베이스(DB)에서 검색되고 설계에 사용될 전망이다.
인공생명체 산업은 소프트웨어 산업과 같이 ‘연구개발 중심’ ‘복합 융합기술’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고부가가치 물질을 생산하는 합성생명체를 설계하고, 실제 합성을 통해 새로운 합성생명체를 만들어내려면 엄청난 개발비가 투입된다. 하지만 일단 만들어진 생명체는 자연계의 생명체처럼 초저가 바이오매스 투입으로 스스로 복제하며 고부가가치 물질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인공생명체를 이용한 산업이 지구가 당면한 식량, 에너지, 환경, 보건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21세기 핵심기술로 부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세기 원소주기율표가 알려지고 화학결합에 대한 이론들이 정립됨으로써 제약산업을 비롯한 2조 달러의 각종 화학산업이 창출된 것처럼, 인공생명체도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신(新)산업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지금까지 각종 천연약물과 건강 기능성물질을 생산하는 미생물, 영구면역을 만들어주는 합성바이러스, 암세포만 파괴하는 미생물,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바이오디젤·바이오가솔린을 생산하는 광합성 미생물, 환경오염 물질을 분해해내는 미생물, 각종 화학물질이나 바이오플라스틱을 만드는 미생물 등이 개발됐다. 심지어 빛에 반응해 감광필름 같은 사진을 만들 수 있는 미생물도 발명됐다.
국내의 인공생명체 개발에 대한 투자는 뒤처져 있다. 2007년부터 2년간 지식경제부에서 대덕연구개발특구 클러스터 사업으로 ‘맞춤형 합성생명공학 클러스터 구축사업’을 처음 진행해 대용량 유전자 설계 및 합성 기술과 단백질 진화 기술을 개발했다. 유전자 설계 및 합성, 생명체 합성 기술이 21세기 산업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지금부터라도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다행히 이 분야의 핵심 기술인 DNA 합성 기술은 한국이 이미 세계 정상에 올라와 있다.
앞으로 상상 이상의 인공생명체를 기반으로 하는 수많은 제품이 개발될 것이다. 지금까지 반도체·조선·자동차 등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해왔으나 이제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기능을 가진 고부가가치 인공생명체를 설계하고, 만드는 산업이 한국의 신성장 동력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