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내 말 좀 들어봐’(열린책들 펴냄)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먼저 ‘상투적이다’라는 평이 눈에 띈다. 외국에서는 ‘참신하고 지적이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며 그에 합당한 예우를 받은 책이지만, 국내 독자에게는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독자 처지에선 그럴 만한 요소가 많다. 이 책은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플롯 자체가 식상하다. 3명의 남녀 주인공이 적당한 비중을 나눠 갖고, 두 연인이 결혼을 하지만 여자가 남편 친구와 불륜의 관계를 맺으면서 남자는 비탄에 잠기고, 여자는 다시 연민에 빠져드는 삼류소설, 혹은 통속 드라마의 전형이다.
어떤 독자는 이쯤에서 한때 선풍적 인기를 끌며 뭇 남편의(혹은 뭇 아내의) 등골을 서늘하게 한 ‘부부 클리닉’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만 읽으면 이 책은 그저 화장실 한쪽에 두는 것이 마땅하다. 게다가 작가는 독자를 피곤하게 만드는 재주까지 있다. 책 제목만큼이나 작가가 말이 많기 때문이다. 마치 모노드라마처럼 말과 말로 이어진다. 세 주인공이 각자의 처지를 그야말로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한참을 읽다 보면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필자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수다맨 ‘강성범’ 씨가 지하철역을 줄줄 외우고, 500년 묵은 너구리 이야기를 할 때 느꼈던 호흡곤란을 다시 겪어야 했다. 책을 읽다가 “잠시만 멈춰줘!”라고 소리치고 싶을 때도 있었을 정도니 말이다. 더욱이 작가가 여기저기서 끌어대는 현학과 방대한 상식은 네이버의 지식인 창을 열어두고 ‘누가 이기나 한번 해봐?’ 하는 오기가 들 만큼 잡다하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필자가 이 책에 상당히 좋지 않은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오해다. 이 책은 독서 편력에 한 번쯤 추가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물론 플롯이 훌륭하다거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거창한 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은 모두 자기 경우가 있다’라는 평범하고도 무서운 진리를 되새기게 하기 때문이다. 연쇄살인범 유영철도 나름의 이유가 있고, 동포 가슴에 방아쇠를 당긴 전두환 씨도 할 말은 있다. 사랑하는 사람도, 이별하는 사람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아들도, 아내도 다 자기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서운함과 분노, 서글픔은 자기 경우와 남의 경우가 맞지 않아서 일어나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이것이 틀림없는데 타인은 아닐 때 나는 섭섭하다. 내 경우에는 두 번의 이혼 끝에 서른 살 차이가 나는 여자와 세 번째 결혼을 해도 합당한 일이고, 타인의 경우에는 그것이 영 마뜩잖은 게 세상이다. 그래서 경우가 맞지 않는 사람의 생은 늘 우울하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세상엔 모두 자기 경우가 있다는 것’ ‘우리가 참이라고 믿는 질서나 합당함이 꼭 옳고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것’ 두 가지다. 저자는 세 주인공의 어처구니없는 애정행각을 각자의 입을 통해 변명(?)하게 함으로써, 궁극에는 누가 경우가 없는 사람인지 알 수 없게 하는 모호한 상황을 만든다. 즉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거창한 이데올로기나 사상을 전파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지독한 통속성을 바탕으로 최종적으론 “그래, 대체 통속성이 뭔데?”라는 질문을 던져놓는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자기 경우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TV 토론에 나온 사람들은 새해 벽두부터 으르렁거리고, 국회의원들은 마지막 날까지 서로 손가락질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억장 무너지는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그분들에게 추천하는 책이기도 하다. 다만 책을 읽기 전에 명심할 점은 제목이 ‘내 말 좀 들어봐’이지 ‘뭐라고 말 좀 해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flowingsky@naver.com
어떤 독자는 이쯤에서 한때 선풍적 인기를 끌며 뭇 남편의(혹은 뭇 아내의) 등골을 서늘하게 한 ‘부부 클리닉’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만 읽으면 이 책은 그저 화장실 한쪽에 두는 것이 마땅하다. 게다가 작가는 독자를 피곤하게 만드는 재주까지 있다. 책 제목만큼이나 작가가 말이 많기 때문이다. 마치 모노드라마처럼 말과 말로 이어진다. 세 주인공이 각자의 처지를 그야말로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한참을 읽다 보면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필자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수다맨 ‘강성범’ 씨가 지하철역을 줄줄 외우고, 500년 묵은 너구리 이야기를 할 때 느꼈던 호흡곤란을 다시 겪어야 했다. 책을 읽다가 “잠시만 멈춰줘!”라고 소리치고 싶을 때도 있었을 정도니 말이다. 더욱이 작가가 여기저기서 끌어대는 현학과 방대한 상식은 네이버의 지식인 창을 열어두고 ‘누가 이기나 한번 해봐?’ 하는 오기가 들 만큼 잡다하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필자가 이 책에 상당히 좋지 않은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오해다. 이 책은 독서 편력에 한 번쯤 추가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물론 플롯이 훌륭하다거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거창한 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은 모두 자기 경우가 있다’라는 평범하고도 무서운 진리를 되새기게 하기 때문이다. 연쇄살인범 유영철도 나름의 이유가 있고, 동포 가슴에 방아쇠를 당긴 전두환 씨도 할 말은 있다. 사랑하는 사람도, 이별하는 사람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아들도, 아내도 다 자기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서운함과 분노, 서글픔은 자기 경우와 남의 경우가 맞지 않아서 일어나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이것이 틀림없는데 타인은 아닐 때 나는 섭섭하다. 내 경우에는 두 번의 이혼 끝에 서른 살 차이가 나는 여자와 세 번째 결혼을 해도 합당한 일이고, 타인의 경우에는 그것이 영 마뜩잖은 게 세상이다. 그래서 경우가 맞지 않는 사람의 생은 늘 우울하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세상엔 모두 자기 경우가 있다는 것’ ‘우리가 참이라고 믿는 질서나 합당함이 꼭 옳고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것’ 두 가지다. 저자는 세 주인공의 어처구니없는 애정행각을 각자의 입을 통해 변명(?)하게 함으로써, 궁극에는 누가 경우가 없는 사람인지 알 수 없게 하는 모호한 상황을 만든다. 즉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거창한 이데올로기나 사상을 전파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지독한 통속성을 바탕으로 최종적으론 “그래, 대체 통속성이 뭔데?”라는 질문을 던져놓는다.
박경철<br>의사
flowing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