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은 대부분 가난하거나 불우한 가정사를 갖고 있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 9년 전 부모가 이혼한 뒤 줄곧 아빠와 살아온 13살 이모 양은 최근 보육원에 맡겨졌다. 하지만 보육원의 언니, 오빠들이 이양을 괴롭히자 그곳을 탈출했다. 이후 휴대전화, 금반지, 현금, 지갑, 카드 등 돈이 될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훔쳐 생활했다. 이양도 소년보호재판의 결정으로 민간 소년보호시설에 맡겨졌다.
# 초등학교 6학년 최모 군은 아빠의 폭력을 참다못해 집을 뛰쳐나왔다. 그런 최군이 친구를 마구 때렸다가 소년보호재판에 넘겨졌다. 친구를 때린 이유는 아빠에게 자신의 거처를 알려줬기 때문. 최군은 지금도 친구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한다. 우울증 약까지 먹는 최군은 한 달에 한 번 자원봉사자로부터 생활지도를 받고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고,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한다. 어린이가 저지르는 범죄를 심각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무부 보고서엔 12세 이전에 비행을 저지를 경우, 만 13세 이후에 저지른 경우보다 재범률이 높다고 나와 있다. 따라서 최근 아동에 의한 범죄가 증가세에 있고, 그 연령대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간과할 일이 아니다.
소년보호재판은 19세 미만 소년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보호처분을 행하는 재판이다. 소년법상 ‘소년’은 범죄소년(14세 이상 19세 미만·범죄에 대한 형사책임을 물음)과 촉법소년(10세 이상 14세 미만·범죄에 대한 재판은 하되 형사책임을 묻지 않음), 범법소년(10세 미만·범죄에 대한 재판을 할 수 없음)으로 나뉜다.
2년여 동안 소년보호재판을 맡아온 서울가정법원 박종택(44·오른쪽 사진) 부장판사는 “최근의 청소년 범죄에선 13세 이하, 즉 촉법소년 범죄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울가정법원이 최근 4년간 접수한 청소년 범죄 중 촉법소년 범죄 건수는 2005년 2104건, 2006년 2600건, 2007년 3134건, 2008년 2654건에 이른다.
지난해 6월, 소년법의 재판 대상 연령을 만 12세 이상에서 10세 이상으로 바꾼 것도 아동 범죄 연령이 계속 낮아진 데 따른 것. 박종택 부장판사를 만나 이들 범죄의 양상과 원인, 대책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이들은 주로 어떤 범죄를 저지르나.
“경제적으로 어려워 가출한 아이들은 절도와 갈취를 많이 한다. 인터넷 중독일 경우 PC방 갈 돈을 마련하기 위해 또래들에게 ‘삥’을 뜯는다. 오토바이를 훔쳐 무면허로 폭주운전을 하기도 하고, 단지 호기심에서 음란물을 전송하기도 한다. 집단으로 성적인 언행을 하면서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등 성추행을 하는 경우도 많다.
남자아이뿐 아니라 여자아이도 이런 일을 많이 저지른다. 이들의 범죄 건수를 모두 파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초등학생이라 경찰이나 피해자가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경우도 많고, 10세 미만인 범법소년이라면 정황상 범죄를 저지른 게 분명해 보여도 경찰에서 조사조차 할 수 없다.
사소해 보여도 범죄는 계속 진화
이들의 범죄는 성인 범죄에 비하면 아직 경미하지만, 범죄는 진화하게 마련이다. 초등학교 때 자전거를 훔쳐 타던 아이가 중학교 때는 오토바이를 훔치고, 고등학교 때는 날치기, 강도로 변한다.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과 동거하면서 성관계를 하는 것은 물론, 돈을 벌기 위해 ‘조건만남’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임신해서 중절수술을 하고, 나중에는 내놓고 성매매를 한다. 중학교 1, 2학년 여학생이 이런 사연으로 재판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에겐 어떤 처분을 내리나.
“10세 이상부터는 소년원에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위계질서가 엄격한 소년원에서 악질적인 선배들로부터 나쁜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기에 되도록 민간 상담기관에 위탁한다. 웬만하면 보호관찰처분은 내리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를, 또는 주변인들이 그 아이를 범죄자로 낙인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에겐 어떤 특성이 있나.
“대개 가난하거나 불우한 가정사를 겪은 아이들이다. 70~80%가 이혼가정 출신인데, 편부모가 생계 때문에 일을 해야 하니 아이들은 방치되기 쉽다. 사회는 물론 부모도 관심을 잘 보이지 않는 탓에 성적이 뒤처지고 학교에서 무시당하기 일쑤다. 자존감이 부족해 울분을 표출하다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다 어른들에게 몇 번 혼나다 보면 엇나가고 방황한다. 또 엇나간 아이들끼리 어울린다.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가 커지는 데다 이혼율도 증가하고 있어 이런 아이가 계속 늘지 않을까 걱정된다.”
박 부장판사는 이와 함께 교육제도상의 맹점도 지적했다.
“이런저런 문제로 초등학교를 그만둔 아이들에게 검정고시를 치러 중학교에 입학하도록 독려한다. 하지만 검정고시는 매년 4월 한 차례 치러지고, 6월이면 합격 여부를 알 수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과는 한참 떨어져 있다. 따라서 검정고시에 합격한 아이가 중학교에 가려면 9개월을 놀아야 하는데, 그 기간에 다시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아동 범죄를 줄이기 위한 대책이라면.
“무엇보다 부모가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편부모 가정일수록 부모의 책임이 크다. 부부간에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아이와의 관계를 망가뜨리면 안 된다. 그래도 가정에서 해결되지 않는다면 국가가 부모처럼 보듬어줘야 한다. 어른에게 투자하는 비용의 10분의 1만 들여도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은 좋아질 것이다. 선진국들은 가정법원이 중심이 돼 문제 아동의 환경을 조사하고 그에 맞는 지원을 한다. 우리도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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