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경기가 열릴 때면 구장 한쪽엔 늘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감독도, 선수도, 심판도 아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야구를 사랑한다. 아니, 야구에 미쳤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상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할 법한 기상천외의 응원을 펼치는 이들. 야구가 곧 삶이고 열성팬을 넘어 광팬이 돼버린 사람들, 이른바 ‘명물’로 통하는 이들이다. 이들이 있기에 야구는 재미를 몇 배 더한다. 각 구단이 추천하는 홈구장 명물들 이야기.
연안부두 아저씨(SK 와이번스 인천문학구장)
SK 와이번스 홈경기 때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 있다. 8회초 상대팀 공격이 끝나고 8회말 SK 공격이 시작될 즈음, 배 모양의 모자를 쓴 ‘연안부두 아저씨’가 전광판에 등장한다. 이것을 신호로 한 무리의 깃발이 나부끼면서 SK 팬들은 환호성과 함께 응원가 ‘연안부두’를 목청이 터져라 부른다.
“♬어쩌다 한번 오는 저 배는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마음마다 설레게 하나~ 부두에 꿈을 꾸고 떠나는 배야~ 갈매기 우는 마음 너는 알겠지~ 말해다오~ 말해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SK 팬들 사이에서 연안부두 아저씨는 상징적인 존재다. 지정 응원석도 있다. 치어리더 응원대 앞에서 네 번째 줄 가운데다. 안병수(50) 씨. 고향이 경남 진주인 그가 SK와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열기가 채 식지 않았던 그해 가을, 건설업자인 안씨는 송도신도시 개발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인천에 올라왔다가 문학경기장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오직 그 이유로 문학경기장을 연고지로 한 SK의 열성팬이 됐다.
2003~04년 2년 동안 인천 홈경기는 물론 지방 원정경기까지 거의 전 경기를 따라다녔다. SK의 원정팬이 거의 없던 시절, 혼자서 독특한 응원복을 입고 전국을 누비며 응원하는 그의 모습은 금세 사람들 눈에 띄었다. ‘연안부두 아저씨’ 별명도 그 무렵 만들어졌다.
“2003년에 준우승을 했는데, 그때 처음 배를 만들어 머리에 썼어요. 그런데 다음 시즌이 시작됐을 때 신문마다 제게 붙인 별명이 다 달랐어요. 타월로 두루마리를 만들어 머리에 쓴다고 ‘두루마리 아저씨’ ‘타월 아저씨’라고 부르는가 하면, 어떤 신문은 제가 ‘나이트(클럽) 지배인’으로 알려져 있다고 해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항구도시 인천의 상징인 연안부두를 떠올렸고, 거기에다 아이들이 부르기 편하게 ‘아저씨’를 붙인 겁니다.”
그 후에도 안씨의 ‘고독한’ 지방원정 응원은 계속됐다. 2007년부터는 원정응원단을 모집해 함께 다녔다. 처음엔 가족들의 불만이 컸지만, 자신을 찾으러 야구장에 왔다가 오히려 다 야구팬이 됐다고 한다. 안씨는 “이젠 SK가 지면 내가 응원을 잘못해서 졌다며 마누라가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바가지를 긁는다”고 너스레를 떤다.
지난 8월에는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는데도 군산, 대전, 대구 등 세 번의 원정경기에 원정단을 이끌고 모두 다녀왔다. 아내와 가족이 이해해주면서 다녀오라고 했다는 것. 그에게 과연 야구란 무엇일까.
“야구가 곧 인생이에요. 인생을 살다 보면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뜻대로 되지도 않고, 때론 희생도 필요하죠. 야구도 똑같아요. 그래서 가끔 술자리에서 팬들에게 ‘희생정신을 가져라’라고 당부합니다. 희생을 하면서 즐길 수 있는 게 야구라고요.”
피켓녀(히어로즈 서울목동구장)
올해 정규리그에서 6위를 한 히어로즈는 9월26일 서울잠실구장에서 7위 LG 트윈스와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이미 포스트시즌에서 탈락이 확정된 두 팀에게 이날의 승패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그만큼 팬도 많지 않았다. 그날 히어로즈 응원석 한쪽에 눈에 띄는 응원 피켓이 하나 걸렸다.
‘2009년 히어로즈와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내년 가을엔 야구 보여주실 거죠?’
이른바 ‘피켓녀’로 불리는 강지혜(25) 씨의 작품이다. 3년 전만 해도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이끌려 야구장에 갔다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릴 정도로 야구를 싫어했던 그가 지금은 광팬으로 변신해 있다.
“지난해 어느 날 스트레스 풀 곳도 없고 해서 친한 친구와 야구를 보러 갔는데,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스트레스도 확 풀리고. 지금은 야구를 몰랐던 때가 너무나 아까울 만큼 폭 빠져 있어요.”
평범한 중소기업 회사원인 강씨가 히어로즈의 팬이 된 이유는 세 가지. 홈구장이 목동인 집에서 가깝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는 신생팀이어서 가족적인 분위기가 좋았고, 세 번째는 히어로즈가 야구를 너무 못하고 팬도 얼마 안 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응원을 시작하게 됐다는 것.
“시즌 초반인 5월에 9연패를 했어요. 가뜩이나 팬이 별로 없었는데, 두산전에서 5월이면 펄펄 난다고 ‘오월동주’로 불리는 김동주가 홈런을 치니까 몇 안 되는 팬도 다 나가버리더라고요. 너무 안쓰러웠어요. 못할 때 더 응원해줘야 하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히어로즈를 응원했죠.”
그 후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홈경기가 있는 날에는 거의 빠짐없이 경기장을 찾았다. 간혹 지방 원정응원도 마다하지 않았다. 팬카페 회원들과 친해지면서 혼자서도 부담 없이 경기장을 찾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피켓을 만들게 된 것은 ‘한 명이 열 명 몫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부터다. 경기에 지는 날이면 더욱 썰렁해지는 응원석을 뭘 가지고라도 채우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씩 만들기 시작한 피켓이 벌써 40개가 넘는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피켓 문구로는 ‘윤구야, 누나는 너 크는 맛에 야구장 온다’를 꼽는다. 히어로즈 투수 강윤구가 같은 강씨인 데다 동생뻘 되는 나이라 만든 피켓이다. 물론 그는 강윤구의 열성팬이다.
“히어로즈가 이길 때도 재미있지만 져도 재미있어요. 다른 팀 선수들과는 투지가 다르거든요. 선수들이 제가 만든 피켓을 보고 조금이라도 힘을 낼 수 있다면 큰 보람이죠.”
‘볼독’ 미르(SK 와이번스 인천문학구장)
SK 와이번스에는 8개 구단에서 유일하게 야구공을 나르는 개가 있다. 지난해 5월5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첫선을 보인 이른바 ‘볼독(balldog)’이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활용되는 골든레트리버(4세)로, 이름은 ‘비룡(飛龍)’이라는 의미의 순우리말인 ‘미르’다.
볼독이 하는 일은 경기 시작 전 시구(始球)자와 심판에게 야구공을 가져다주는 것. 선수가 홈런을 치고 운동장을 돌고 들어오면 다른 선수들과 함께 도열해 있다가 하이파이브를 해주기도 한다. 한국프리스비협회가 보유하고 있던 개를 훈련시켜 팬들에게 이벤트 삼아 제공하는 서비스다.
내년부터는 좀더 색다른 볼거리를 준비하고 있다. 볼독이 포수 노릇을 하거나 배트걸을 대신해 야구방망이를 물어오는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 야구방망이에 개의 침이 묻는 것을 선수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서비스 시행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볼독은 ‘출장비’ 명목으로 급여를 받는데, 연봉은 3000만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경수 아저씨(LG 트윈스 서울잠실구장)
튀어도 너무 튄다. 황금색 가면을 쓰고 ‘경수 6번’이라고 커다랗게 쓴 샛노란 체육복을 입은 모습 말이다. ‘경수 6번’은 LG트윈스 2루수 박경수를 가리킨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박경수 아저씨’다. 황금색 가면, 배트맨 가면, 붉은색 가면 등을 자주 바꿔 쓰기에 ‘마스크맨’으로도 통한다.
음반기획·제작사 워디엔터테인먼트 대표 김준호(29) 씨가 바로 그다. 김씨가 이처럼 유독 박경수를 응원하는 까닭은 뭘까. 프로야구 원년부터 골수 야구팬이 된 김씨의 첫 번째 우상은 김재박이다. 발이 빠르고 감각적인 수비를 펼치는 게 매력 넘쳤다고 한다. 김재박이 자신처럼 키가 작아서 약간의 동질감도 느꼈다.
그때부터 김재박의 포지션인 유격수를 맡은 선수들을 좋아하게 됐다. 김재박-유지현-권용관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김씨가 좋아하는 LG 유격수 라인이다. 김씨는 이 라인에 LG에 입단한 유망주 박경수를 포함시키기 위해 그렇게 온몸으로 응원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박경수는 경기 중 팔을 다쳐 지금은 2루수로 뛰고 있다.
마스크를 쓰게 된 계기도 김재박에게서 비롯됐다. 바쁜 일과를 보내다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 야구장을 찾곤 하던 그는 2007년 시즌을 앞두고 자신의 우상이던 김재박이 LG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다시 야구에 빠져들었다. 전국을 돌면서 열정적으로 응원하던 김씨는 TV 화면에 얼굴이 잡히면서 거래처로부터 연락받는 일이 잦자 얼굴을 감추려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아볼 사람은 다 알아봤다.
“김재박 감독도 처음에는 저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전국을 쫓아다니면서 이상한 옷차림에 마스크를 쓰고 괴성을 질러대고, 선수들을 따라가 같은 호텔에서 잠을 자고 하니까. 그러다 호텔 사우나에서 우연히 김 감독을 만나 통성명하고 유격수 라인을 응원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니까 그제야 오해를 푸는 것 같았어요.”
우연인지, 그의 응원 덕분인지는 몰라도 2007년 LG의 9차례 광주 원정경기 중에서 그가 원정 응원을 간 7차례는 LG가 이기고, 나머지 2차례는 졌다. 음반기획사 대표답게 김씨는 지난해부터 LG의 응원가를 제작하기 위해 나섰다. 그룹 ‘트위니’를 구성한 데 이어 8월 싱글음반 ‘가슴이 떨려’를 발표했다. 하지만 올해 LG의 성적은 최하위권에 머물렀고(7위), 김 감독도 사실상 경질됐다.
“음반 작업 때문에 원정경기에 자주 응원을 가지 못했는데, 그래서인지 구단 성적이 좋지 않아 죄책감이 들어요. 내년 시즌까지는 6개월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온몸이 근질근질해서 어떻게 참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젖은 낙엽(두산 베어스 서울잠실구장)
LG 트윈스에 ‘박경수 아저씨’가 있다면 두산 베어스에는 ‘젖은 낙엽’이 있다. 박경수 아저씨가 화려한 응원복장으로 승부한다면, 젖은 낙엽의 응원무기는 최첨단 LED 피켓이다. 30대 초반이라고만 밝힌 이동진 씨가 그 주인공이다. ‘젖은 낙엽’은 두산 홈페이지의 회원 커뮤니티인 ‘곰들의 대화’(약칭 ‘곰대’로 통한다)에서 이씨가 사용하는 필명.
“야구에 빠져서 응원을 하다 보면 목이 상해 고생하는 경우가 숱하거든요. 그래서 고안해낸 게 LED 피켓입니다. 지난 4, 5월부터 시작했어요.”
이씨의 최신식 응원무기는 방송 카메라에 자주 잡혔고 어느 순간부터 LED 피켓은 새로운 응원문화로 자리잡았다. 이씨는 그 개척자인 셈. 이씨는 1982년 OB 베어스 시절 리틀베어스 활동을 한 원년 팬이다. 어릴 적 부모와 함께 야구를 보러 다니면서 28년 동안 야구장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올해도 홈경기 68경기 중에서 65경기에 나가 응원전을 펼쳤다. 원정경기까지 합하면 90경기 가까이 봤다. 무엇이 그를 야구에 미치게 할까.
“야구는 아무도 모릅니다. ‘야신(野神)’이라는 김성근 감독조차 야구를 모른다고 하잖아요. 다만 야구의 매력이라면 특정한 선수의 플레이가 아닌, 모든 선수의 팀플레이로 만들어지는 예술작품이라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케밥 파는 외국인(롯데 자이언츠 부산사직구장)
부산사직구장은 부산을 찾는 외국 관광객에게 꼭 들러봐야 할 명소로 소문나 있다. 그래서 사직구장에서는 외국인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초 이곳에 또 하나의 명물이 등장했다.
이른바 ‘케밥 파는 외국인’이다. 정확히 말하면 ‘케밥 파는 터키인’ 이브라힘 바나스(37) 씨다. 터키에는 야구가 없다. 당연히 바나스 씨도 야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그런 그를 사직구장으로까지 이끌고 온 사람은 부산 경성대 인근의 터키 전통음식점 ‘베이(Bey)케밥 하우스’ 대표 이상석 씨다. 요리사 경력 25년의 바나스 씨는 이곳 주방장이다.
이씨가 2001년 서울의 한 터키 레스토랑에서 매니저로 일할 때 바나스 씨가 주방장으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아내의 건강이 좋지 않아 터키로 돌아갔던 바나스 씨는 지난해 이씨의 연락을 받고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지난해 바나스와 사직구장에 자주 왔는데, 의외로 외국인이 많더라고요. 가족 단위로 온 사람도 많고요. 그래서 이런 곳에서 케밥을 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구단 홍보팀에 설명을 하고, 조그만 매장을 임대해 시작하게 됐죠.”
매장의 위치는 1루 지정석 바로 위. 2평 남짓한 조그만 공간이어서 테이크아웃과 이동판매 전문점이다. 처음에는 외국인과 여성이 주로 먹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요즘은 케밥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중장년이 아이들, 손자들 갖다줄 거라며 포장해가기도 한다.
덕분에 매출이 크게 늘었다. 5월 롯데가 최하위로 밀려나 관중이 적었을 때는 하루에 300~350개밖에 못 팔았는데, 그 후 점차 관중이 늘어나면서 평일에는 하루 500~600개, 주말에 관중이 가득 찰 때는 최고 850개까지 팔려나갔다. 그러는 사이 바나스 씨도 야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야구라는 스포츠를 한국에 와서 처음 알게 됐는데, 축구에 비해 매우 섬세하면서도 힘이 넘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아직 정확한 룰은 모르지만 롯데 팬들의 응원 열기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해태아줌마(KIA 타이거즈 광주무등구장)
KIA 타이거즈 팬 중에 ‘해태아줌마’를 모르면 ‘정말 간첩’이란 소리를 듣는다. 해태아줌마는 KIA의 전신인 해태 시절부터 타이거즈의 모든 경기를 찾아다닌 김윤희(50) 씨다. 홈, 원정을 가리지 않고 경기 시작 전엔 경기장 바깥에서 껌과 담배를 팔다 경기가 시작되면 한복으로 갈아입고 홀로 응원을 펼쳐 팬들의 시선을 끈다.
이 일을 프로야구 원년 때부터 쉬지 않았으니 무려 27년째. 응원이라고 해봐야 작은 꽃술을 흔드는 게 전부지만 선수들이나 광주 팬들 사이에선 이종범, 선동렬에 맞먹는 스타급 대우를 받는다. KIA가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9월24일 군산경기장에도 해태아줌마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매표소 옆에 자리를 꿰차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담배를 팔았다.
쌓아놓은 담배 앞엔 ‘3천온’(3000원)이라고 손으로 쓴 종이를 세워놓았다.
“얼마나 파셨어요? 힘들지 않으세요?”
“아따, 무릎이 아파 힘들제. 광주에서 군산 오는 버스비가 1만7000원이요. 왕복 버스비 벌 때까진 팔아야 항께로….”
김씨는 바지를 걷어올려 왼쪽 무릎을 보여줬다. 눈에 띄게 부어 있었는데, 관절염이라고 했다.
“야구장 간다니 외동딸이 화장까지 시켜줘서 기분이 더 좋아. 우리 강아지(딸)는 아기 때도 내가 야구장 간다면 기저귀를 흔들며 좋아했제. 다 커서는 나더러 (담배장사) 그만 하라고도 했는데, 이젠 ‘엄마 딱 5만원만 벌고 잘 응원하고 와’라며 어깨를 두드려준당께. 우리 딸은 대학 나오고 좋은 회사에 취직도 했어요.”
무엇보다 KIA의 독주가 그를 신나게 했다. KIA의 내일에 대해서도 낙관적이다.
“성적이 좋으니께 선수들 표정도 좋아부러요. 서재응이가 아는 체하고 김종모 코치도 반겨줘. 일본 코치(간베 투수코치)도 나 보면 인사를 한다니까요. 내년이 호랑이띠니까 KIA는 더 잘될 거여. 그리고 프로야구는 콘서트 좋아하는 요즘 젊은애들 다 뺏어와야 해. 그래야 살아.”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연안부두 아저씨(SK 와이번스 인천문학구장)
SK 와이번스 홈경기 때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 있다. 8회초 상대팀 공격이 끝나고 8회말 SK 공격이 시작될 즈음, 배 모양의 모자를 쓴 ‘연안부두 아저씨’가 전광판에 등장한다. 이것을 신호로 한 무리의 깃발이 나부끼면서 SK 팬들은 환호성과 함께 응원가 ‘연안부두’를 목청이 터져라 부른다.
“♬어쩌다 한번 오는 저 배는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마음마다 설레게 하나~ 부두에 꿈을 꾸고 떠나는 배야~ 갈매기 우는 마음 너는 알겠지~ 말해다오~ 말해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SK 팬들 사이에서 연안부두 아저씨는 상징적인 존재다. 지정 응원석도 있다. 치어리더 응원대 앞에서 네 번째 줄 가운데다. 안병수(50) 씨. 고향이 경남 진주인 그가 SK와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열기가 채 식지 않았던 그해 가을, 건설업자인 안씨는 송도신도시 개발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인천에 올라왔다가 문학경기장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오직 그 이유로 문학경기장을 연고지로 한 SK의 열성팬이 됐다.
2003~04년 2년 동안 인천 홈경기는 물론 지방 원정경기까지 거의 전 경기를 따라다녔다. SK의 원정팬이 거의 없던 시절, 혼자서 독특한 응원복을 입고 전국을 누비며 응원하는 그의 모습은 금세 사람들 눈에 띄었다. ‘연안부두 아저씨’ 별명도 그 무렵 만들어졌다.
“2003년에 준우승을 했는데, 그때 처음 배를 만들어 머리에 썼어요. 그런데 다음 시즌이 시작됐을 때 신문마다 제게 붙인 별명이 다 달랐어요. 타월로 두루마리를 만들어 머리에 쓴다고 ‘두루마리 아저씨’ ‘타월 아저씨’라고 부르는가 하면, 어떤 신문은 제가 ‘나이트(클럽) 지배인’으로 알려져 있다고 해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항구도시 인천의 상징인 연안부두를 떠올렸고, 거기에다 아이들이 부르기 편하게 ‘아저씨’를 붙인 겁니다.”
그 후에도 안씨의 ‘고독한’ 지방원정 응원은 계속됐다. 2007년부터는 원정응원단을 모집해 함께 다녔다. 처음엔 가족들의 불만이 컸지만, 자신을 찾으러 야구장에 왔다가 오히려 다 야구팬이 됐다고 한다. 안씨는 “이젠 SK가 지면 내가 응원을 잘못해서 졌다며 마누라가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바가지를 긁는다”고 너스레를 떤다.
지난 8월에는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는데도 군산, 대전, 대구 등 세 번의 원정경기에 원정단을 이끌고 모두 다녀왔다. 아내와 가족이 이해해주면서 다녀오라고 했다는 것. 그에게 과연 야구란 무엇일까.
“야구가 곧 인생이에요. 인생을 살다 보면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뜻대로 되지도 않고, 때론 희생도 필요하죠. 야구도 똑같아요. 그래서 가끔 술자리에서 팬들에게 ‘희생정신을 가져라’라고 당부합니다. 희생을 하면서 즐길 수 있는 게 야구라고요.”
피켓녀(히어로즈 서울목동구장)
올해 정규리그에서 6위를 한 히어로즈는 9월26일 서울잠실구장에서 7위 LG 트윈스와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이미 포스트시즌에서 탈락이 확정된 두 팀에게 이날의 승패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그만큼 팬도 많지 않았다. 그날 히어로즈 응원석 한쪽에 눈에 띄는 응원 피켓이 하나 걸렸다.
‘2009년 히어로즈와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내년 가을엔 야구 보여주실 거죠?’
이른바 ‘피켓녀’로 불리는 강지혜(25) 씨의 작품이다. 3년 전만 해도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이끌려 야구장에 갔다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릴 정도로 야구를 싫어했던 그가 지금은 광팬으로 변신해 있다.
“지난해 어느 날 스트레스 풀 곳도 없고 해서 친한 친구와 야구를 보러 갔는데,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스트레스도 확 풀리고. 지금은 야구를 몰랐던 때가 너무나 아까울 만큼 폭 빠져 있어요.”
평범한 중소기업 회사원인 강씨가 히어로즈의 팬이 된 이유는 세 가지. 홈구장이 목동인 집에서 가깝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는 신생팀이어서 가족적인 분위기가 좋았고, 세 번째는 히어로즈가 야구를 너무 못하고 팬도 얼마 안 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응원을 시작하게 됐다는 것.
“시즌 초반인 5월에 9연패를 했어요. 가뜩이나 팬이 별로 없었는데, 두산전에서 5월이면 펄펄 난다고 ‘오월동주’로 불리는 김동주가 홈런을 치니까 몇 안 되는 팬도 다 나가버리더라고요. 너무 안쓰러웠어요. 못할 때 더 응원해줘야 하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히어로즈를 응원했죠.”
그 후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홈경기가 있는 날에는 거의 빠짐없이 경기장을 찾았다. 간혹 지방 원정응원도 마다하지 않았다. 팬카페 회원들과 친해지면서 혼자서도 부담 없이 경기장을 찾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피켓을 만들게 된 것은 ‘한 명이 열 명 몫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부터다. 경기에 지는 날이면 더욱 썰렁해지는 응원석을 뭘 가지고라도 채우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씩 만들기 시작한 피켓이 벌써 40개가 넘는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피켓 문구로는 ‘윤구야, 누나는 너 크는 맛에 야구장 온다’를 꼽는다. 히어로즈 투수 강윤구가 같은 강씨인 데다 동생뻘 되는 나이라 만든 피켓이다. 물론 그는 강윤구의 열성팬이다.
“히어로즈가 이길 때도 재미있지만 져도 재미있어요. 다른 팀 선수들과는 투지가 다르거든요. 선수들이 제가 만든 피켓을 보고 조금이라도 힘을 낼 수 있다면 큰 보람이죠.”
‘볼독’ 미르(SK 와이번스 인천문학구장)
SK 와이번스에는 8개 구단에서 유일하게 야구공을 나르는 개가 있다. 지난해 5월5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첫선을 보인 이른바 ‘볼독(balldog)’이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활용되는 골든레트리버(4세)로, 이름은 ‘비룡(飛龍)’이라는 의미의 순우리말인 ‘미르’다.
볼독이 하는 일은 경기 시작 전 시구(始球)자와 심판에게 야구공을 가져다주는 것. 선수가 홈런을 치고 운동장을 돌고 들어오면 다른 선수들과 함께 도열해 있다가 하이파이브를 해주기도 한다. 한국프리스비협회가 보유하고 있던 개를 훈련시켜 팬들에게 이벤트 삼아 제공하는 서비스다.
내년부터는 좀더 색다른 볼거리를 준비하고 있다. 볼독이 포수 노릇을 하거나 배트걸을 대신해 야구방망이를 물어오는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 야구방망이에 개의 침이 묻는 것을 선수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서비스 시행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볼독은 ‘출장비’ 명목으로 급여를 받는데, 연봉은 3000만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경수 아저씨(LG 트윈스 서울잠실구장)
튀어도 너무 튄다. 황금색 가면을 쓰고 ‘경수 6번’이라고 커다랗게 쓴 샛노란 체육복을 입은 모습 말이다. ‘경수 6번’은 LG트윈스 2루수 박경수를 가리킨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박경수 아저씨’다. 황금색 가면, 배트맨 가면, 붉은색 가면 등을 자주 바꿔 쓰기에 ‘마스크맨’으로도 통한다.
음반기획·제작사 워디엔터테인먼트 대표 김준호(29) 씨가 바로 그다. 김씨가 이처럼 유독 박경수를 응원하는 까닭은 뭘까. 프로야구 원년부터 골수 야구팬이 된 김씨의 첫 번째 우상은 김재박이다. 발이 빠르고 감각적인 수비를 펼치는 게 매력 넘쳤다고 한다. 김재박이 자신처럼 키가 작아서 약간의 동질감도 느꼈다.
그때부터 김재박의 포지션인 유격수를 맡은 선수들을 좋아하게 됐다. 김재박-유지현-권용관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김씨가 좋아하는 LG 유격수 라인이다. 김씨는 이 라인에 LG에 입단한 유망주 박경수를 포함시키기 위해 그렇게 온몸으로 응원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박경수는 경기 중 팔을 다쳐 지금은 2루수로 뛰고 있다.
마스크를 쓰게 된 계기도 김재박에게서 비롯됐다. 바쁜 일과를 보내다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 야구장을 찾곤 하던 그는 2007년 시즌을 앞두고 자신의 우상이던 김재박이 LG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다시 야구에 빠져들었다. 전국을 돌면서 열정적으로 응원하던 김씨는 TV 화면에 얼굴이 잡히면서 거래처로부터 연락받는 일이 잦자 얼굴을 감추려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아볼 사람은 다 알아봤다.
“김재박 감독도 처음에는 저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전국을 쫓아다니면서 이상한 옷차림에 마스크를 쓰고 괴성을 질러대고, 선수들을 따라가 같은 호텔에서 잠을 자고 하니까. 그러다 호텔 사우나에서 우연히 김 감독을 만나 통성명하고 유격수 라인을 응원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니까 그제야 오해를 푸는 것 같았어요.”
우연인지, 그의 응원 덕분인지는 몰라도 2007년 LG의 9차례 광주 원정경기 중에서 그가 원정 응원을 간 7차례는 LG가 이기고, 나머지 2차례는 졌다. 음반기획사 대표답게 김씨는 지난해부터 LG의 응원가를 제작하기 위해 나섰다. 그룹 ‘트위니’를 구성한 데 이어 8월 싱글음반 ‘가슴이 떨려’를 발표했다. 하지만 올해 LG의 성적은 최하위권에 머물렀고(7위), 김 감독도 사실상 경질됐다.
“음반 작업 때문에 원정경기에 자주 응원을 가지 못했는데, 그래서인지 구단 성적이 좋지 않아 죄책감이 들어요. 내년 시즌까지는 6개월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온몸이 근질근질해서 어떻게 참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젖은 낙엽(두산 베어스 서울잠실구장)
LG 트윈스에 ‘박경수 아저씨’가 있다면 두산 베어스에는 ‘젖은 낙엽’이 있다. 박경수 아저씨가 화려한 응원복장으로 승부한다면, 젖은 낙엽의 응원무기는 최첨단 LED 피켓이다. 30대 초반이라고만 밝힌 이동진 씨가 그 주인공이다. ‘젖은 낙엽’은 두산 홈페이지의 회원 커뮤니티인 ‘곰들의 대화’(약칭 ‘곰대’로 통한다)에서 이씨가 사용하는 필명.
“야구에 빠져서 응원을 하다 보면 목이 상해 고생하는 경우가 숱하거든요. 그래서 고안해낸 게 LED 피켓입니다. 지난 4, 5월부터 시작했어요.”
이씨의 최신식 응원무기는 방송 카메라에 자주 잡혔고 어느 순간부터 LED 피켓은 새로운 응원문화로 자리잡았다. 이씨는 그 개척자인 셈. 이씨는 1982년 OB 베어스 시절 리틀베어스 활동을 한 원년 팬이다. 어릴 적 부모와 함께 야구를 보러 다니면서 28년 동안 야구장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올해도 홈경기 68경기 중에서 65경기에 나가 응원전을 펼쳤다. 원정경기까지 합하면 90경기 가까이 봤다. 무엇이 그를 야구에 미치게 할까.
“야구는 아무도 모릅니다. ‘야신(野神)’이라는 김성근 감독조차 야구를 모른다고 하잖아요. 다만 야구의 매력이라면 특정한 선수의 플레이가 아닌, 모든 선수의 팀플레이로 만들어지는 예술작품이라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케밥 파는 외국인(롯데 자이언츠 부산사직구장)
부산사직구장은 부산을 찾는 외국 관광객에게 꼭 들러봐야 할 명소로 소문나 있다. 그래서 사직구장에서는 외국인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초 이곳에 또 하나의 명물이 등장했다.
이른바 ‘케밥 파는 외국인’이다. 정확히 말하면 ‘케밥 파는 터키인’ 이브라힘 바나스(37) 씨다. 터키에는 야구가 없다. 당연히 바나스 씨도 야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그런 그를 사직구장으로까지 이끌고 온 사람은 부산 경성대 인근의 터키 전통음식점 ‘베이(Bey)케밥 하우스’ 대표 이상석 씨다. 요리사 경력 25년의 바나스 씨는 이곳 주방장이다.
이씨가 2001년 서울의 한 터키 레스토랑에서 매니저로 일할 때 바나스 씨가 주방장으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아내의 건강이 좋지 않아 터키로 돌아갔던 바나스 씨는 지난해 이씨의 연락을 받고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지난해 바나스와 사직구장에 자주 왔는데, 의외로 외국인이 많더라고요. 가족 단위로 온 사람도 많고요. 그래서 이런 곳에서 케밥을 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구단 홍보팀에 설명을 하고, 조그만 매장을 임대해 시작하게 됐죠.”
매장의 위치는 1루 지정석 바로 위. 2평 남짓한 조그만 공간이어서 테이크아웃과 이동판매 전문점이다. 처음에는 외국인과 여성이 주로 먹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요즘은 케밥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중장년이 아이들, 손자들 갖다줄 거라며 포장해가기도 한다.
덕분에 매출이 크게 늘었다. 5월 롯데가 최하위로 밀려나 관중이 적었을 때는 하루에 300~350개밖에 못 팔았는데, 그 후 점차 관중이 늘어나면서 평일에는 하루 500~600개, 주말에 관중이 가득 찰 때는 최고 850개까지 팔려나갔다. 그러는 사이 바나스 씨도 야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야구라는 스포츠를 한국에 와서 처음 알게 됐는데, 축구에 비해 매우 섬세하면서도 힘이 넘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아직 정확한 룰은 모르지만 롯데 팬들의 응원 열기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해태아줌마(KIA 타이거즈 광주무등구장)
KIA 타이거즈 팬 중에 ‘해태아줌마’를 모르면 ‘정말 간첩’이란 소리를 듣는다. 해태아줌마는 KIA의 전신인 해태 시절부터 타이거즈의 모든 경기를 찾아다닌 김윤희(50) 씨다. 홈, 원정을 가리지 않고 경기 시작 전엔 경기장 바깥에서 껌과 담배를 팔다 경기가 시작되면 한복으로 갈아입고 홀로 응원을 펼쳐 팬들의 시선을 끈다.
이 일을 프로야구 원년 때부터 쉬지 않았으니 무려 27년째. 응원이라고 해봐야 작은 꽃술을 흔드는 게 전부지만 선수들이나 광주 팬들 사이에선 이종범, 선동렬에 맞먹는 스타급 대우를 받는다. KIA가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9월24일 군산경기장에도 해태아줌마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매표소 옆에 자리를 꿰차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담배를 팔았다.
쌓아놓은 담배 앞엔 ‘3천온’(3000원)이라고 손으로 쓴 종이를 세워놓았다.
“얼마나 파셨어요? 힘들지 않으세요?”
“아따, 무릎이 아파 힘들제. 광주에서 군산 오는 버스비가 1만7000원이요. 왕복 버스비 벌 때까진 팔아야 항께로….”
김씨는 바지를 걷어올려 왼쪽 무릎을 보여줬다. 눈에 띄게 부어 있었는데, 관절염이라고 했다.
“야구장 간다니 외동딸이 화장까지 시켜줘서 기분이 더 좋아. 우리 강아지(딸)는 아기 때도 내가 야구장 간다면 기저귀를 흔들며 좋아했제. 다 커서는 나더러 (담배장사) 그만 하라고도 했는데, 이젠 ‘엄마 딱 5만원만 벌고 잘 응원하고 와’라며 어깨를 두드려준당께. 우리 딸은 대학 나오고 좋은 회사에 취직도 했어요.”
무엇보다 KIA의 독주가 그를 신나게 했다. KIA의 내일에 대해서도 낙관적이다.
“성적이 좋으니께 선수들 표정도 좋아부러요. 서재응이가 아는 체하고 김종모 코치도 반겨줘. 일본 코치(간베 투수코치)도 나 보면 인사를 한다니까요. 내년이 호랑이띠니까 KIA는 더 잘될 거여. 그리고 프로야구는 콘서트 좋아하는 요즘 젊은애들 다 뺏어와야 해. 그래야 살아.”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