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B> 냇가에서 돌탑 쌓기. 공들여 쌓아올린 뒤 무너뜨리는 것도 또 다른 놀이가 된다.
간단한 먹을거리와 갈아입을 옷을 챙겨 냇가로 가니, 큰비가 한바탕 온 뒤라 물도 많고 깨끗해 놀기에 안성맞춤. 그렇다고 무작정 물에 들어가기는 어렵다. 자연에서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연에서의 물놀이는 수영장에서와는 판이하다. 우선 물 깊이와 물살을 잘 살펴야 한다. 수영장은 깊이가 정해져 있지만 계곡은 발 디디는 곳마다 다르다. 발아래는 잔돌과 굵은 돌, 심지어 들쑥날쑥 바위도 숨어 있다. 물속에 잠긴 큰 돌에는 이끼마저 끼어 있어 자칫 미끄러지기도 한다.
물살 역시 제멋대로다. 넓고 평평한 곳은 물살이 느리지만 좁은 곳은 빠르다. 심지어 커다란 바위 사이로 빠르게 흐르는 물은 공포 그 자체다. 이보다 더 위험한 곳은 물이 소용돌이치는 곳. 물이 계곡 아래로 곧장 흐르지 않고, 어느 지점에선 빙글빙글 돈다. 그런 곳에 휘말리면 살아나기 어렵다.
물수제비 뜨기 … 돌탑 쌓기 … 다이빙 …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냇물에 무작정 뛰어들지 않고 살펴보기부터 한다. 어디가 안전하고 놀기에 좋을지를. 둘레 환경과 하나 되는 과정이다. 점점 물과 익숙해지자 큰 아이들이 먼저 안전하다 싶은 곳에서 헤엄을 친다. 작은 아이들은 얕은 곳에서 그야말로 물장구치며 논다.
이렇게 한바탕 물에 들어갔다 나온 다음 놀이를 바꾼다. 딱히 정해진 틀이나 프로그램이 없어도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논다. 이번에는 물수제비 뜨기. 수제비처럼 납작한 돌을 골라 물 위를 향해 힘차게 수평으로 던지면 부력이 생기면서 돌멩이가 탐방탐방 튀기며 나간다. 한 번 튀기면 물수제비가 하나. 한 번도 못하는 아이도 있고, 어떤 아이는 다섯 번, 누구는 일곱 번…. 아이들마다 더 잘 던지려고 좋은 돌을 고르기에 열심이다. 강에는 무수히 많은 돌이 있지만 같은 돌은 없다. 다 다르다. 어쩌면 그 맛에 이 놀이가 더 재미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할 만큼 하고 나니 이번에는 돌탑 쌓기다. 강에 널린 넓적돌을 누가 더 높이 쌓나. 각자 터를 잡고 쌓기 놀이에 몰입한다. 아이들 가운데 부모가 집을 지으면서 돌로 축대 쌓는 걸 보았던 녀석들은 솜씨가 다르다. 넓적돌 아래에 작은 굄돌을 받칠 줄 아는 게 아닌가. 그런 만큼 견고하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누군가의 탑이 우르르 무너진다. 너무 높이 쌓는 것도 위험하다. 한 녀석이 외친다.
“야, 우리 이제 부수기 놀이 하자!”
돌탑에서 5m쯤 떨어진 거리에서 돌멩이 하나씩 들고 돌탑을 맞혀 넘어뜨리기다.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정확히 맞히는 것도 어렵지만 맞는다고 해서 돌탑이 쉽게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그 아슬아슬함이란! 이렇게 아이들은 주어진 자연을 이용해서 놀이를 무궁무진하게 펼쳐간다. 놀다 보니 배가 출출하다. 가져간 간식으로 배를 채운다.
<B>2</B> 깊은 물에 돌멩이를 던지며 물의 힘과 자기 안의 두려움을 함께 탐색한다. <B>3</B> 냇가 헤엄은 고개를 내미는 ‘개헤엄’이 제격이다. <B>4</B> 넓적돌이 물에 뜨면서 튀겨가는 모습. 물수제비 놀이를 누가 처음 생각했을까.
이제는 나도 몸이 근질근질했다. 어린이 마음이 일어서인지 아니면 아이들 앞에서 잘난 체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수영으로 내를 건너겠다고 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아저씨, 파이팅!”
내의 전체 너비는 약 50m, 수영을 할 만한 곳은 20m 남짓밖에 안 된다. 아이들이 숨죽이며 내 움직임을 지켜봤다. 새로운 뭔가를 갈망하는 눈빛이 내 등 뒤에서도 느껴질 만큼. 물살을 거스르지 않고 흐름을 따라, 강 아래로 비스듬히 헤엄을 치면 어렵지 않다. 반대로 돌아올 때는 다시 한 번 호기를 부렸다. 좀더 강 위로 올라와 큰 바위 위에서 다이빙을 해서 아이들 곁으로 왔다. 그랬더니 아이들 가운데 덩치가 큰 녀석이 자신도 건너보겠다 했다. 그러자 또 한 애도 나섰다.
내가 간단히 주의할 점을 알려주고 아이들보다 앞장서 헤엄을 쳐갔다. 그러자 동생들은 형들이 하는 모습을 보며 부러움 반 존경심 반으로 응원했다. 큰 아이들 역시 무사히 강을 건넜고, 돌아오는 길은 나처럼 다이빙해서 왔다. 내게 쏠렸던 작은 아이들의 관심이 계곡을 건넌 형들에게로 완전히 기울었다. 나 역시 이 녀석들이 대견했다. 이 아이들 수영은 한마디로 ‘개헤엄’이다.
이는 자유형이니 평형이니 하는 수영과는 다르다. 개를 물에 집어넣으면 헤엄을 치는데, 고개를 물 밖으로 내논 상태에서 네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간다. 이게 바로 개헤엄. 들쑥날쑥 냇가에서 헤엄은 개헤엄이 제격이다. 여기서는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다. 위험 때문에 늘 앞을 보고 있어야 한다. 언제 어떤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을지 알 수 없기에 그렇다.
또한 위치에 따라 물살의 빠르기도 다르기에 늘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야 한다. 이처럼 자연에서 놀이는 변화무쌍해 자연과 하나가 되는 만큼 놀이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놀이를 자급자족한다는 건 어디서 무얼 하든 잘 놀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 아이들이 자연 놀이만 하는 건 아니다. 보드게임도 즐기고, 공놀이도 하며, 인터넷 게임을 하기도 한다. 다만 그 모든 놀이의 바탕은 자연이 아닐까 싶다.
돈 들이지 않고도 짜릿하게 놀 수 있는 힘이 있기에 놀이기구를 갖고 노는 놀이 역시 쉽게 즐기는 것 같다. 요즘은 점점 더 자연에서 놀 기회를 잃어버리고 자라는 아이가 많다. 그래서인지 흙을 싫어하고, 벌레라면 무조건 두려워하는 아이들을 가끔 만난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취약한 것도 이러한 세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돈 들이지 않고도 잘 놀 수 있는 힘이 절실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