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앞서 2005년 국립국어원의 ‘청소년 언어 실태조사’에서는 고교생의 76.4%가 친구들과 대화할 때 욕설을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욕설의 강력한 전염력을 고려하면 2년 만에 도달한 99.1%라는 수치는 예고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필자의 최근 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평범한 여고생 그룹을 45분간 관찰한 결과 15종류의 욕설을 무려 248회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학생 또한 욕설 사용량에서는 초중고생과 별 차이가 없다. ‘청소년 욕설 일상화의 원인규명을 위한 설문조사와 그 결과 분석’이라는 최근 논문에 따르면 남자 1학년 대학생은 5분간 35회 욕설을 사용한다. 그리고 대학원생을 포함한 조사대상의 97.5%가 일상적인 대화에 욕설을 쓴다. 대학생은 20대 성인이 된 뒤에도 10대 시절부터 몸에 밴 욕설 습관을 그대로 이어왔을 뿐 아니라 이런 습관을 개선하겠다는 의식도 없었음을 보여준다.
20대 성인임에도, 지성인 간판을 단 대학생임에도 이들은 국내외의 온갖 욕설은 물론이거니와 손가락 중지를 추켜올리는 ‘행위 욕설’까지 보란 듯이 해댄다. 인성교육이 전무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욕설까지 수입해 ‘애용’하는 대학생들의 행태에 어이가 없을 뿐이다.
신입생 강연에서 “씨X” “지X” 내뱉어
좋고 나쁨의 구별 없이 무작정 따라하기 좋아하는 초등학생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생의 욕설 습관이 이 정도니 대책을 내놓는 것조차 힘들다. 대학을 ‘지성의 전당’이라고 일컫는 것은 적어도 한국의 경우 사치(奢侈)를 넘어 사기(詐欺)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대학 안에서 기초질서를 찾아보기 어렵고 인문학을 비롯한 인성 함양에 도움이 될 만한 교과과정도 취업과 전공 앞에 거의 사라지고 있다. 이것이 장차 대한민국의 중추 구실을 할 대학생들의 서글픈 현실이다.
이처럼 욕설에 중독된 대학생의 심각성을 조금도 이해 못했는지 아니면 오히려 이용해보려 했던 것인지, 신해철이라는 유명 로커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욕설을 쏟아내며 그들의 흥미를 끌었다. 지난 3월 고려대 신입생 대상 강연에서 ‘씨×’ ‘지×’ ‘졸×’ 등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강연을 해 ‘해도 너무한다’는 비난을 들었다. 같은 달 입시학원 광고에 출연한 것이 논란이 되자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오른손 중지를 추켜세우고 ‘손가락 욕설’을 하는 사진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가 자신을 비판하는 여론에 대해 ‘욕설파문? 삽질하네’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청중은 욕을 날릴 때마다 펑펑 터지며 웃어댔는데 강연과는 무관한 인간들만 그럴 수 있느냐”며 화를 냈다는 것이다.
3월14일 고려대 신입생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가수 신해철. 그는 이날 욕설을 쏟아내며 학생들의 흥미를 끌었다. 입시학원 광고 출연(위)이 논란이 되자 자신의 홈페이지에 ‘손가락 욕설’ 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다.
‘독설가’ ‘쓴소리의 대가’라는 신해철의 대표 타이틀은 개념 없이 내뱉는 욕설을 두고 붙여진 것이 아니다. 학생을 청중으로 둔 공석에서의 욕설이 어떻게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이미 욕설 사용이 일상이 된 학생들을 상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신해철은 그들에게 공적인 자리에서의 욕설 사용을 권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욕설 일상화 전체 인구 22%
이 중년 로커의 행태도 문제지만 이를 합리화하는 일부 언론의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신해철 강연, 욕설 논란 껍질 속 본질 명쾌 메시지’라는 기사의 타이틀은 해당 강연의 청중이 욕설에 중독된 대학생이었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수단으로서의 욕설을 정당화하는 데만 초점을 뒀다. 이처럼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언론 보도는 결과지상주의에 물든 한국사회 병폐의 극단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들이 활개 치는 저질 온라인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된 청소년들의 현실을 생각하면 숨이 막혀온다.
한국 청소년의 욕설 사용이 뭐 그리 큰 문제를 초래할까 봐 이리도 소란이냐고 묻고 싶은가? 청소년과 대학생들의 욕설 일상화로 한국의 선진기술이 퇴보할 리는 없다.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리도 없다. 하지만 한국의 사회 정서는 더욱 폭력적이고 살벌하게 변할 것이 분명하다는 의견을 논리적으로 부정할 수 있겠는가? 이미 기초질서가 붕괴 위험에 놓인 이 사회에서 전 세대에 걸쳐 욕설까지 일상화한다면 선진사회로의 진입은 영원히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는 의견에는?
신해철은 지금이라도 현실의 심각성을 직시해야 한다. 2009년 현재 욕설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세대의 최고연령은 1983년생인 27세로 파악되고 있다. 최저연령은 초등학교 1학년인 8세(2002년생)다. 최고연령과 최저연령 사이의 인구 규모는 대한민국 인구의 22%가량 된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인구가 10년, 20년 후에 사회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갈 생각을 하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하기 두렵다.
또한 막말, 욕설, 비속어 등으로 말이 ‘썩어가는’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 청소년들의 언어 현실을 감안해서라도 공석에서의 욕설 사용은 부디 삼가주기를 바란다. 청소년의 언어습관을 개선해달라는 무리한 부탁이 아니다. 적어도 욕설 사용의 합리화를 조장하는 행위는 그만두라는 것이다.
신해철은 학생들에게서 호응을 얻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욕 한마디 내뱉는 것일지 모르겠으나, 일선의 많은 교사는 그 한마디 욕으로 더욱 악화된 학생들의 사고방식과 언어습관을 순화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시간씩 강연을 하고 프로그램 개발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국 교육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방송에서 ‘입시노동’ ‘청소년 학대 정책’ 운운하며 수백만 아이들의 ‘인생’을 염려하던 그의 교육적 소신(所信)은 가차 없이 소신(燒燼·다 타버림)해버렸다. 그나마 ‘한때의 염려’로 한 가닥 거미줄처럼 남아 있을지도 모를 양심에 욕설 행위의 당부(當否)를 한 번이라도 자문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