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 500만명이 넘는 추모객이 다녀갔다. 재임 때 바닥권이던 그의 인기를 되돌아보면 놀라운 숫자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추모와 애도라는 단순한 감정이 이처럼 많은 국민을 동원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힘은 바로 이데올로기다. ‘고학력’ ‘상류사회’ ‘권위’에 대한 반제(antithesis)인 ‘서민’ ‘탈권위’가 이념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상류사회는 자유가 좋을 것이고 서민은 평등을 바랄 것이다. 서민들이 평등에 대한 욕구를 ‘추모’로 표출했다고 본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놓고 보수와 진보, 좌익과 우익 또는 좌파와 우파의 이념논쟁이 제기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문제는 논의되는 이념들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념에 대한 부정확하고 왜곡된 인식이나 지식은 우리 사회에 대한 진단이나 처방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이념들을 대별하는 용어다. 보수는 사회의 기존 가치와 체계, 질서를 유지하려는 이념을 가리킨다. 반면 진보는 기존 질서를 타파하거나 개혁해 변화를 추구하는 이념을 담고 있다. 보수와 진보 모두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소중한 가치로 인식한다. 전자가 자유를 강조하는 반면 후자는 평등을 강조한다. 자유와 평등은 둘 중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사회의 방향이 달라진다.
보수를 우익 혹은 우파, 진보를 좌익 혹은 좌파로도 부른다. 이 용어들은 프랑스혁명 직후 보수세력과 개혁세력의 회의장에 앉은 위치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지칭하는 개념에서 출발해 우익은 자유주의자에서 파시스트까지, 좌익은 사회민주주의자에서 공산주의자까지 여러 스펙트럼을 포괄하고 있다.
용어들은 본질적 의미와 함께 뉘앙스도 품고 있는데, ‘우익’과 ‘좌익’이 ‘우파’와 ‘좌파’보다 강한 의미를 전달한다. 우익과 좌익은 해방공간에서부터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의미했다. 우익은 반공이념의 총체였고 좌익은 용공분자 불온이념인 동시에 불법집단이었다. 이제 북한이 하나의 정치적 실체로 인식되면서 좌익은 진보이념을 통칭하는 좌파라는 말로 대체됐다.
따라서 우리의 좌파는 반보수적인 진보이념과 이른바 통일세력, 북한에 호의적인 세력을 가리킨다. 다만 시민들이 진보의 개념보다는 좌익 이미지에 익숙하다 보니 좌파와 좌익을 동일시하면서 반보수적 이미지는 묻히고 ‘친북 빨갱이’로 덧칠되는 실정이다.
보수와 진보를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이 다양해서 교차되기 때문이다. 역사의 변화와 맞물려 돌아갈 때, 어느 한 시대에서는 진보이념이었던 것이 다른 역사적 상황에서는 보수이념으로 평가되고 분류되기도 한다.
이념에 대한 왜곡된 인식, 엉뚱한 처방 낳을 수도
오늘날 살아 있는 모든 이념은 자유주의에서 태어났다. 자유주의가 자본주의를 토대로 하자 이에 대응하는 사회주의가 출현하면서 보수와 진보로 갈리게 됐다.
보수이념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자유주의에서 고전적 자유주의, 현대적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그리고 보수주의, 신보수주의로, 자본주의는 수정자본주의로 변화해왔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보수적이라면 현대적 자유주의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로의 복귀라는 점에서 보수적이다.
보수주의도 마찬가지다. 전통적 보수주의에 비해 신보수주의는 사회주의 요소를 일부 수용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다. 자본주의에 비해 수정자본주의도 사회주의 논리를 부분적으로 포용한다는 점에서 진보적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분명한 진보이념이다. 아울러 ‘제3의 길’은 자본주의 관점에서는 진보이념이지만 사회주의 관점에서는 보수이념이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사회주의보다 근본적이라는 점에서 극단적 이념이다. 다만 공산주의를 주창하고 이론화한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의도와 달리, 레닌과 스탈린에 의해 공산주의가 전제정치의 수단이 된 까닭에 공산주의로 포장된 레닌주의나 스탈린주의는 이념이라기보다는 권력의 도구가 됐다.
우리 사회는 특히 진보이념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어 이를 피하려 한다. 보수진영에서는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좌파정권이라 부르지만, 북한의 공산주의는 왕조시대에나 있는 부자세습 권력체계라는 점에서 더 이상 진보의 모델이 아니다. 북한은 이제 좌파나 진보의 대상에서 안보·민족·통일 정책의 대상으로 분리돼야 한다.
김대중 정권이 진보라면 그것은 이전의 보수정권과 상대적인 점에서 진보정권이다. 일부 정책이 수정자본주의를 따랐다는 점과 그동안 견지되던 상호주의 대북정책을 햇볕정책으로 변화시켰다는 점 때문이지, 그 대상이 북한이어서가 아니다.
다만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보다 수정자본주의적인, 혹은 분명한 진보이념을 토대로 하는 정권이었다. 예를 들면 균형발전 정책과 부동산 정책은 평등추구 정책이었다는 점에서 진보적이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권이 이를 사회주의, 진보, 평등으로 부르지 않은 것은 진보이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에 대한 정치적 고려에서였을 것이다. 진보와 사회주의 이념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의 정당지지율은 이러한 해석의 충분한 단초가 된다.
보수주의 창시자 에드먼드 버크는 정당을 ‘이념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사실상 이념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선진당으로 분할돼 있다. 이념 차이가 없다 보니 지역을 분할의 기초로 하고 있다. 정책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분명한 진보이념을 표방하는 정당은 민주노동당 혹은 진보신당뿐이다.
이제 보수와 진보의 이념은 당당히 전면으로 나와야 한다. 특히 정당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민에게 자신들의 정책을 가장 간명하고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용어는 ‘보수와 진보’ ‘자유와 평등’ 어느 하나의 선택이다. 국민도 이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국민 스스로가 이제 공산주의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추모와 애도라는 단순한 감정이 이처럼 많은 국민을 동원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힘은 바로 이데올로기다. ‘고학력’ ‘상류사회’ ‘권위’에 대한 반제(antithesis)인 ‘서민’ ‘탈권위’가 이념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상류사회는 자유가 좋을 것이고 서민은 평등을 바랄 것이다. 서민들이 평등에 대한 욕구를 ‘추모’로 표출했다고 본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놓고 보수와 진보, 좌익과 우익 또는 좌파와 우파의 이념논쟁이 제기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문제는 논의되는 이념들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념에 대한 부정확하고 왜곡된 인식이나 지식은 우리 사회에 대한 진단이나 처방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이념들을 대별하는 용어다. 보수는 사회의 기존 가치와 체계, 질서를 유지하려는 이념을 가리킨다. 반면 진보는 기존 질서를 타파하거나 개혁해 변화를 추구하는 이념을 담고 있다. 보수와 진보 모두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소중한 가치로 인식한다. 전자가 자유를 강조하는 반면 후자는 평등을 강조한다. 자유와 평등은 둘 중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사회의 방향이 달라진다.
보수를 우익 혹은 우파, 진보를 좌익 혹은 좌파로도 부른다. 이 용어들은 프랑스혁명 직후 보수세력과 개혁세력의 회의장에 앉은 위치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지칭하는 개념에서 출발해 우익은 자유주의자에서 파시스트까지, 좌익은 사회민주주의자에서 공산주의자까지 여러 스펙트럼을 포괄하고 있다.
용어들은 본질적 의미와 함께 뉘앙스도 품고 있는데, ‘우익’과 ‘좌익’이 ‘우파’와 ‘좌파’보다 강한 의미를 전달한다. 우익과 좌익은 해방공간에서부터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의미했다. 우익은 반공이념의 총체였고 좌익은 용공분자 불온이념인 동시에 불법집단이었다. 이제 북한이 하나의 정치적 실체로 인식되면서 좌익은 진보이념을 통칭하는 좌파라는 말로 대체됐다.
따라서 우리의 좌파는 반보수적인 진보이념과 이른바 통일세력, 북한에 호의적인 세력을 가리킨다. 다만 시민들이 진보의 개념보다는 좌익 이미지에 익숙하다 보니 좌파와 좌익을 동일시하면서 반보수적 이미지는 묻히고 ‘친북 빨갱이’로 덧칠되는 실정이다.
보수와 진보를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이 다양해서 교차되기 때문이다. 역사의 변화와 맞물려 돌아갈 때, 어느 한 시대에서는 진보이념이었던 것이 다른 역사적 상황에서는 보수이념으로 평가되고 분류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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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에 대한 왜곡된 인식, 엉뚱한 처방 낳을 수도
오늘날 살아 있는 모든 이념은 자유주의에서 태어났다. 자유주의가 자본주의를 토대로 하자 이에 대응하는 사회주의가 출현하면서 보수와 진보로 갈리게 됐다.
보수이념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자유주의에서 고전적 자유주의, 현대적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그리고 보수주의, 신보수주의로, 자본주의는 수정자본주의로 변화해왔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보수적이라면 현대적 자유주의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로의 복귀라는 점에서 보수적이다.
보수주의도 마찬가지다. 전통적 보수주의에 비해 신보수주의는 사회주의 요소를 일부 수용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다. 자본주의에 비해 수정자본주의도 사회주의 논리를 부분적으로 포용한다는 점에서 진보적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분명한 진보이념이다. 아울러 ‘제3의 길’은 자본주의 관점에서는 진보이념이지만 사회주의 관점에서는 보수이념이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사회주의보다 근본적이라는 점에서 극단적 이념이다. 다만 공산주의를 주창하고 이론화한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의도와 달리, 레닌과 스탈린에 의해 공산주의가 전제정치의 수단이 된 까닭에 공산주의로 포장된 레닌주의나 스탈린주의는 이념이라기보다는 권력의 도구가 됐다.
우리 사회는 특히 진보이념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어 이를 피하려 한다. 보수진영에서는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좌파정권이라 부르지만, 북한의 공산주의는 왕조시대에나 있는 부자세습 권력체계라는 점에서 더 이상 진보의 모델이 아니다. 북한은 이제 좌파나 진보의 대상에서 안보·민족·통일 정책의 대상으로 분리돼야 한다.
김대중 정권이 진보라면 그것은 이전의 보수정권과 상대적인 점에서 진보정권이다. 일부 정책이 수정자본주의를 따랐다는 점과 그동안 견지되던 상호주의 대북정책을 햇볕정책으로 변화시켰다는 점 때문이지, 그 대상이 북한이어서가 아니다.
다만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보다 수정자본주의적인, 혹은 분명한 진보이념을 토대로 하는 정권이었다. 예를 들면 균형발전 정책과 부동산 정책은 평등추구 정책이었다는 점에서 진보적이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권이 이를 사회주의, 진보, 평등으로 부르지 않은 것은 진보이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에 대한 정치적 고려에서였을 것이다. 진보와 사회주의 이념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의 정당지지율은 이러한 해석의 충분한 단초가 된다.
보수주의 창시자 에드먼드 버크는 정당을 ‘이념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사실상 이념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선진당으로 분할돼 있다. 이념 차이가 없다 보니 지역을 분할의 기초로 하고 있다. 정책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분명한 진보이념을 표방하는 정당은 민주노동당 혹은 진보신당뿐이다.
이제 보수와 진보의 이념은 당당히 전면으로 나와야 한다. 특히 정당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민에게 자신들의 정책을 가장 간명하고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용어는 ‘보수와 진보’ ‘자유와 평등’ 어느 하나의 선택이다. 국민도 이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국민 스스로가 이제 공산주의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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