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나 이 사건은 취침 시간에 최전방 GP 내무반에서 순식간에 벌어졌다. 요즘 군대는 장병 관리나 사고 예방 여건이 아주 좋다고 하지만, 총과 수류탄을 소지할 수 있는 GP 부대에서 마음먹고 일을 계획하는 소수 군 부적응자들의 ‘심리적 동선(動線)’까지 파악한다는 건 어려운 현실. 그래서 최전방으로 자식을 보낸 부모들은 앞으로 또 이런 일이 터질까봐 좌불안석이다.
육군은 11월28일 국방부 브리핑을 통해 황모 이병이 고된 부대생활에 염증을 느껴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졌다고 발표했다. 수류탄이 터지면서 잠자고 있던 이모 이병 등 5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이병은 상태가 심각하다.
취침 시간에 쾅 … 철저한 ‘계획’대로 범행
이번 사건은 2005년 경기도 연천 보병 28사단 530GP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비록 이번 사건이 8명의 장병이 사망하고 4명이 중경상을 입은 연천 총기사건과는 피해 정도에서 큰 차이가 있고 아직 보강 수사가 진행되지 않은 단계이긴 하나, 범행 동기나 정황에서 유사점이 적지 않다.
물론 연천 사건은 사건의 핵심 사안을 놓고 아직도 군과 유가족 측의 견해가 엇갈리는 상황이라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 연천 사건 사망자 유가족 측은 3년여 간 군 검찰 수사 및 검안 기록의 석연치 않은 부분을 줄기차게 지적하면서 사건 조작 의문까지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군의 수사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두 사건은 비슷한 구석이 많다. 재발 방지 측면에서 두 사건을 짚어보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 부대생활 과정에서의 어려움, 잦은 마찰, 열등감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후임병이 이를 ‘해소’하지 못하고 ‘폭발’한 점부터가 그렇다.
직접적인 범행 동기를 보자. 황 이병은 7월 입대 후 동작이 느리고 근무수칙 등을 제대로 암기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주 질책을 당하면서 심적 고통에 시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동기인 이 이병과 여러 면에서 비교되며 열등감과 질투심도 깊어졌다고 한다. 선종출 육군 수사본부장(5군단 헌병대장)은 브리핑에서 “황 이병이 내성적 성향과 반항적 기질로 선임병들과 마찰이 잦았고, 동기생보다 인정받지 못한 데 대한 질투심과 열등감이 있었다”고 밝혔다.
2005년 연천 GP 총기난사 사건 발표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고 부대 장병들.
연천 총기난사 사건 당시 내무반 동료들을 향해 총기와 수류탄을 난사한 김모 일병도 선임병과의 불편한 수직관계와 GP 환경에 대한 압박감이 주된 범행 동기였다. 이 부분은 김 일병의 공소장에도 자세히 언급돼 있다.
“김 일병은 선임병들에게서 ‘목소리가 작다’ ‘관등성명을 잘 대지 않는다’ ‘표정관리를 잘 못한다’는 등의 이유로 질책과 욕설을 당했으며, GP에 투입된 후 점점 빈번해지는 선임병들의 질책,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부담감, GP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장기간 생활하는 심리적 압박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결국 범행을 계획하게 된다.”
범행 동기와 정황 유사점 매우 커
연천 총기난사 사건 희생 장병들의 합동안장식.
황 이병은 야간 고가 초소 경계근무를 마치고 상황실에 도착해 이 이병의 수류탄을 훔치는 것부터 미리 생각해둔 ‘시나리오’대로 움직였다. 그는 수류탄을 훔치기 직전 “물탱크에서 물이 올라가는 소리가 난다”며 상황병을 따돌렸다. 잘못 알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수류탄의 살상 범위까지 염두에 두고 투척했다.
연천 사건은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야간근무 날에 발생했다. 이날은 GP 간부들이 주말만이라도 사병들의 휴식을 보장해주기 위해 야간근무 시 ‘밀어내기식’ 근무 규정을 ‘고정식’으로 변칙 운영하는 시점. 김 일병으로선 ‘공백’과 ‘여유’를 이용할 수 있는 최적의 날을 택한 셈이다.
김 일병은 내무반과 상황실 인원 등을 살해하고 부대를 장악했을 때, 범행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의 군번줄을 내무반에 남기고 다른 부대원의 군번줄을 갖고 나오는 계획도 세웠다.
또한 공소장에 따르면 김 일병은 범행 후 기름을 내무반에 뿌리고 GP를 전소시킨 뒤, 공용화기(K-4, 57mm 무반동총)를 이용해 GP 통문을 폭파하고 후방으로 도주하는 다소 허황된 계획까지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범행 수위 판단에 대해선 다소 차이가 있다. 황 이병의 경우 아직 상황을 단정할 수 없지만 그의 진술대로라면 동료들을 살해할 의도까지는 없었던 듯하다. “수류탄의 살상 범위를 5m 이내로 알고 있던 황 이병이 ‘빨래 건조대와 총기함 쪽으로 던지면 사람이 다치기는 해도 죽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는 것(육군 수사본부 관계자). 육군은 황 이병에게 살해 의도까지는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미필적 고의’라는 단서를 붙였다.
반면 김 일병에겐 동료들을 살해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있었다. 군생활 동안 단 두 번 사격을 해봤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는 수 분 내에 상황실, 취사장, 내무반을 돌며 소총과 수류탄을 난사했다. 공소장에도 ‘6월13일(사고는 6월19일 발생) 더 이상 부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겠다고 판단한 김 일병은 GP를 탈출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를 위해서는 GP 인원들을 모두 살해할 수밖에 없다고 마음먹은 뒤…’라고 기록돼 있다.
11월28일 ‘GP 수류탄 사고’ 수사를 마친 육군 수사본부장이 수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천 총기난사 사건 발표 도중 한 수사관이 사고가 일어났던 GP 내무반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오른쪽).
범행의 최종 목표를 현실도피로 삼은 점도 두 가해자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육군 수사본부는 “황 이병이 부대 내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외부에 알려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 일병도 아예 GP를 탈출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다. 여러모로 비교되는 두 사건. 그러나 다시는 비교되는 일이 일어나선 안 돼야 하기에 더욱 주목을 끌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