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트레이더들이 9월16일 심각한 표정으로 주가를 확인하고 있다.
투자자의 탐욕 효과적으로 제어 못해
한때 미국 경제의 부활을 이끌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자처했던 미국 금융시스템은 왜 한순간 붕괴되면서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졌을까. 전 세계의 찬탄과 부러움의 대상이던 미국 금융시스템은 어떻게 세계경제를 혼란에 빠뜨린 주범이 됐을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동서고금을 통해 지속적으로 되풀이돼온 ‘버블의 형성과 붕괴’라는 주제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과거에 없었던 유동화, 파생상품 등 이른바 금융혁신에 따른 여러 신상품이 버블 형성을 부추기고 버블 붕괴의 파장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기는 했다. 그래도 투자자들의 탐욕으로 비이성적인 열 현상이 발생하고, 뒤이은 조정과정에서 공포에 의해 시장이 극심한 혼란을 겪는 패턴은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부터 최첨단 정보통신기술과 금융기법으로 무장한 21세기 금융선진국에 이르기까지 대동소이하게 반복되고 있다.
탐욕과 공포, 이는 버블 형성과 붕괴를 초래하는 투자심리를 요약한 표현이다. 따라서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혼란을 막으려면 투자자의 탐욕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제어해 과도한 투기가 발생되지 않게 할 것인가와, 금융시장 급락기에 공포가 지배하는 투자자의 심리를 어떻게 진정시킬 것인가가 정책당국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21세기 최초의 글로벌 경제위기라고 할 수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충격의 발생과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미국 금융시스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향후 전개 방향을 전망해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충격으로 인한 금융시장의 혼란은 미국식 금융시스템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지금까지 미국의 금융 파워를 부러워하며 이를 모델 삼아 금융시스템 개혁을 추진해온 많은 나라들은 청사진을 다시 준비해야 하는 걸까. 또는 자본시장 중심과 은행 중심으로 대별돼온 세계 금융시스템이 자본시장 중심 시스템으로 수렴해가는 변화의 흐름이 다시 역전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의 혼란을 반드시 미국식 금융시스템의 실패로 볼 이유는 없으며, 단기적으로 투자시장은 위축되겠지만 금융의 장기적 변화 방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작금의 위기는 자율과 책임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시스템 문제라기보다는 급속히 진전된 금융혁신을 따라잡지 못한 관리, 감독의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한 결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표적인 자본시장 중심 금융시스템을 가진 나라로서 금융 발전을 주도해왔으며, 이러한 금융혁신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주택저당대출을 증권화한 주택저당증권(MBS)이다. 즉 금융기관의 주택저당대출을 자본시장에서 매매될 수 있는 증권으로 만든 것인데, 이를 통해 금융기관들은 자금을 좀더 손쉽게 저렴한 비용으로 조달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이러한 증권화 상품을 다시 분해,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 좀더 복잡한 금융상품을 창출해내면서 초과 이익을 올리는 비즈니스가 성행했다.
자산유동화 증가는 금리규제 폐지와 함께 과거에 주택금융시장을 이용하기 어려웠던 저소득층의 모기지론 접근 가능성을 높였다. 그 결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크게 성장했고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가계의 주택보유율이 높아지는 제2차 주택보유 붐의 배경으로 작용했다(1차 주택보유 붐은 30년 만기 고정금리 모기지론 도입과 함께 중산층의 주택보유가 증가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약 20년간이다). 따라서 금융혁신은 저소득층의 금융 이용 가능성과 주거안정성을 높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가계부채가 증가하는 것도 과거에 각종 규제와 금융시장의 비효율성 등이 제거됨으로써 가계부채를 통한 자금조달이 최적 수준 이하에서 적정 수준으로 상승하는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그린스펀 탓?
파산한 리먼브러더스 직원들이 짐을 싸 회사를 나오는 모습.
먼저 이른바 ‘그린스펀 독트린’이라 불리는 비대칭적 통화정책 기조가 문제였다. 전 FRB 의장인 그린스펀은 자산가격 버블은 사전에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산가격이 상승할 때는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반대로 급락할 때는 금리를 인하해 버블 붕괴를 막는 정책을 택했다. 이는 FRB가 자산가격 상승을 방임하는 한편, 자산가격이 떨어질 때는 금리 인하로 이를 억제할 것이라는 신호를 시장참가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주택투기를 부추겼다. 이에 따라 실수요 외에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투기적 수요가 가세해 주택가격 상승과 부채증가를 촉진했다. 공급 면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등의 유동화와 구조화가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사업이라는 것을 인식한 금융기관이 적극 투자하면서 유동화 증권 등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동일한 상품을 분해, 재결합하는 구조화를 통해 초과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금융시장이 비효율적임을 의미한다. 또한 성공에 대해서는 큰 보상을 지급하는 반면, 실패에 대해서는 관대한 업계의 비대칭적 보상구조도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위험투자를 야기한 요인이다.
이 과정에서 지적할 수 있는 문제점은 거시적으로 통화정책이 수행되지 못했다는 점이고, 미시적으로는 금융기관의 자체적인 리스크(위험) 관리와 금융시장 감독이 미흡했다는 점이다. 과잉유동성과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에도 FRB는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버블을 키웠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또한 줄줄이 무너진 금융기관들은 선진 금융기법과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갖췄다고 자부해왔지만 결국 주택시장의 리스크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오히려 잠재적 부실을 키웠다.
한편 미국은 금융감독 기능이 FRB, 통화감독청(OCC),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SEC 등으로 분산돼 효과적인 감독이 이뤄지지 못했다. 분산된 금융감독 시스템은 견제와 균형 측면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금융감독 기구를 통합해 금융 복합화에 대응하고 있는 세계적 추세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2008년 4월 미 재무부는 금융감독 개혁 청사진을 통해 감독권한을 FRB로 집중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시스템과 고위험-고수익 투자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위험-고수익 투자는 금융의 효율화와 활성화를 촉진할 수 있다.
하지만 탐욕에 따른 투기를 통제하지 못하면 시장의 복수가 현실화될 수 있다. 인간의 이기적 동기가 존재하는 한 금융시장에서 투기와 버블을 영원히 제거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금융기관이나 감독당국이 시장에 잠재한 리스크를 정확히 평가하고 통제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적절한 리스크 부담이 혁신과 성장의 동력이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조건적인 리스크 최소화가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과도한 버블 붕괴의 후유증은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바와 같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위험을 적절히 통제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금융시장 효율화, 개별 금융기관의 자체 리스크 관리와 함께 효과적인 보상구조의 수립, 감독당국의 지속적 관리와 감독이 어우러질 때 가능하다. 금융의 규제 완화와 혁신을 통해 자본시장을 육성하고 금융강국으로 도약하려는 목표를 가진 한국도 이번 사태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