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및 소비자 관련 트렌드를 관찰하는 ‘트렌드 워칭’ 그룹들이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한 것은 1980년대다. 그들은 대기업들에 최신 트렌드 정보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앨빈 토플러나 존 네이스비트 같은 명망 있는 미래학자들의 몫이었던 미래 예측이 상품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페이스 팝콘이나 이르마 잰들 같은 트렌드 전문가들은 미래학자를 대신해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처음 미국에서 시작된 트렌드 읽기 전문가 그룹들의 비즈니스는 곧 유럽으로 건너갔고,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좀더 체계적으로 연구됐다. 트렌드를 ‘방향성 있는 변화의 흐름’이라고 정의할 때 결국 트렌드 예측은 변화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 툴을 필요로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번역서로 이름이 알려진 독일의 마티아스 호르크스 같은 이들이 대표적인 1세대 연구자들이다.
“트렌드 예측이 트렌드다”
하지만 팝콘이나 호르크스 등이 스스로 트렌드 연구가 메타과학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학문적 엄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이들도 많았다. 일부 비판가들은 “미래연구자나 기관들은 추측, 억측을 통해 호평을 얻으면서 미디어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집단”이라고 혹평했다. 독일의 비판가 러스트는 한마디로 “남는 것은 마술뿐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비판에도 트렌드 워칭은 점점 더 비즈니스 꼴을 갖춰갔다. 글로벌 기업인 제너럴 일렉트릭(GE), 디즈니, 코카콜라, 다임러크라이슬러, 3M이 잇따라 트렌드 연구팀을 구성하거나 최소한 전략을 세우는 데 트렌드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에 이미 ‘트렌드 예측이 트렌드다’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즈음 한국에도 트렌드 예측이 조금씩 소개되기 시작했다. 2002년 방한한 세계적 화장품 그룹 에스티 로더의 도미니크 자보 부사장은 국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사 트렌드팀의 존재를 알렸다. 자보 부사장이 이끄는 트렌드팀은 2002년 발족됐으며 “건축, 패션, 디자인, 보석, 미술, 음악, 문학 등 각 예술분야와 사회경제적 흐름에서 읽어낸 문화적 메가트렌드를 메이크업 제품 라인에 반영하고, 날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화장품 업계에서 가장 먼저 트렌드를 분석, 발표함으로써 ‘트렌드 리더’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인터뷰에서 자보 부사장은 자신의 팀이 어떻게 상품에 트렌드를 반영하는지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아마도 트렌드팀의 비즈니스적 활용에 대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 기사였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20세기까지만 해도 이런 흐름에서 비켜나 있었다. 필자의 경우도 1994년 처음 ‘한국인 트렌드’라는 제목의 책을 냈는데, 10년 만인 2004년 동명의 책을 다시 내고 이듬해 연구소를 세우기까지 10년간 별로 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조금씩 바뀌었다.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한류 등 앞서 나가는 분야가 생겼고, 나머지 분야에서도 세계적 흐름에 동조화되는 상황이 시작되면서 트렌드에 민감해진 것이다.
먼저 경제연구소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국내의 대표적 연구소인 삼성경제연구소는 21세기 들어 해마다 ‘10대 트렌드’ 보고서를 발표했고, LG경제연구원은 2005년 초 ‘2010 대한민국 트렌드’라는 베스트셀러를 발간했다. 출판물도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2007년 말에서 2008년 초에는 수십 종의 트렌드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왔다. 조만간 필자의 책장은 트렌드라는 이름이 붙은 책으로 가득 찰 것 같다.
아직 투자방식 낯설고 전문가 부족
이 같은 변화 원인은 ‘변화의 속도’와 ‘돌연변이적 미래의 상시적 출현’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글로벌화와 디지털화라는 메가톤급 트렌드로 지구는 ‘가열된 풍선’ 같아졌다. 지구는 새로운 네트워크로 뒤덮였고 경쟁과 협력, 그리고 새로운 변화의 흐름이 풍선 속의 뜨거운 공기 알갱이들처럼 마구 치닫기 시작했다. 지구라는 좁은 풍선 안에서 이 같은 움직임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와 수많은 충돌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지구는 속도와 충돌로 인해 돌연변이적 미래가 일상인 것처럼 돼갔다.
이번 미국발(發) 경제위기에서 보듯 우리는 지금 규모도 역사도 기술도, 또한 그 어떤 분야에서의 우위도 지속적인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앞장서 달리는 나라 중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 한국에서도 ‘트렌드 예측이 트렌드’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변곡점을 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연구소와 미디어의 부채질에도 기업들이 아직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아이템’ ‘확실한 기술’에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선점하려는 투자 방식은 낯설다. 또 아직 국내에는 기업의 트렌드 예측 수요를 충족시켜줄 만한 트렌드 전문가가 부족한 실정이다.
하지만 수요가 생기면 공급도 늘어나는 법. 그래서 2009년은 한국에서 트렌드 워칭 비즈니스가 본격화되는 해가 될 것이다.
처음 미국에서 시작된 트렌드 읽기 전문가 그룹들의 비즈니스는 곧 유럽으로 건너갔고,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좀더 체계적으로 연구됐다. 트렌드를 ‘방향성 있는 변화의 흐름’이라고 정의할 때 결국 트렌드 예측은 변화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 툴을 필요로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번역서로 이름이 알려진 독일의 마티아스 호르크스 같은 이들이 대표적인 1세대 연구자들이다.
“트렌드 예측이 트렌드다”
하지만 팝콘이나 호르크스 등이 스스로 트렌드 연구가 메타과학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학문적 엄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이들도 많았다. 일부 비판가들은 “미래연구자나 기관들은 추측, 억측을 통해 호평을 얻으면서 미디어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집단”이라고 혹평했다. 독일의 비판가 러스트는 한마디로 “남는 것은 마술뿐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비판에도 트렌드 워칭은 점점 더 비즈니스 꼴을 갖춰갔다. 글로벌 기업인 제너럴 일렉트릭(GE), 디즈니, 코카콜라, 다임러크라이슬러, 3M이 잇따라 트렌드 연구팀을 구성하거나 최소한 전략을 세우는 데 트렌드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에 이미 ‘트렌드 예측이 트렌드다’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즈음 한국에도 트렌드 예측이 조금씩 소개되기 시작했다. 2002년 방한한 세계적 화장품 그룹 에스티 로더의 도미니크 자보 부사장은 국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사 트렌드팀의 존재를 알렸다. 자보 부사장이 이끄는 트렌드팀은 2002년 발족됐으며 “건축, 패션, 디자인, 보석, 미술, 음악, 문학 등 각 예술분야와 사회경제적 흐름에서 읽어낸 문화적 메가트렌드를 메이크업 제품 라인에 반영하고, 날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화장품 업계에서 가장 먼저 트렌드를 분석, 발표함으로써 ‘트렌드 리더’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인터뷰에서 자보 부사장은 자신의 팀이 어떻게 상품에 트렌드를 반영하는지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아마도 트렌드팀의 비즈니스적 활용에 대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 기사였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20세기까지만 해도 이런 흐름에서 비켜나 있었다. 필자의 경우도 1994년 처음 ‘한국인 트렌드’라는 제목의 책을 냈는데, 10년 만인 2004년 동명의 책을 다시 내고 이듬해 연구소를 세우기까지 10년간 별로 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조금씩 바뀌었다.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한류 등 앞서 나가는 분야가 생겼고, 나머지 분야에서도 세계적 흐름에 동조화되는 상황이 시작되면서 트렌드에 민감해진 것이다.
먼저 경제연구소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국내의 대표적 연구소인 삼성경제연구소는 21세기 들어 해마다 ‘10대 트렌드’ 보고서를 발표했고, LG경제연구원은 2005년 초 ‘2010 대한민국 트렌드’라는 베스트셀러를 발간했다. 출판물도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2007년 말에서 2008년 초에는 수십 종의 트렌드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왔다. 조만간 필자의 책장은 트렌드라는 이름이 붙은 책으로 가득 찰 것 같다.
아직 투자방식 낯설고 전문가 부족
아름다운 노년, 환경보호 등 트렌드 키워드를 적극적으로 읽으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번 미국발(發) 경제위기에서 보듯 우리는 지금 규모도 역사도 기술도, 또한 그 어떤 분야에서의 우위도 지속적인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앞장서 달리는 나라 중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 한국에서도 ‘트렌드 예측이 트렌드’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변곡점을 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연구소와 미디어의 부채질에도 기업들이 아직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아이템’ ‘확실한 기술’에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선점하려는 투자 방식은 낯설다. 또 아직 국내에는 기업의 트렌드 예측 수요를 충족시켜줄 만한 트렌드 전문가가 부족한 실정이다.
하지만 수요가 생기면 공급도 늘어나는 법. 그래서 2009년은 한국에서 트렌드 워칭 비즈니스가 본격화되는 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