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스’
이 성당만이 아니라 유럽의 수많은 성당에는 성유물(聖遺物)들이 있다. 그 성유물들은 신의 권능과 영광의 증거가 됨으로써 많은 순례자를 불러모으고 있다.
고고학 유물이 늘 중요한 소재로 나오는 영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 중 ‘레이더스’편의 주인공은 모세의 십계명이 적힌 석판을 담고 있는 성궤였다. 이 성궤를 차지하려는 무리가 있었으니 바로 나치다. ‘성궤를 차지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할 영적인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세계 정복을 꿈꾸는 히틀러의 야욕이 천상의 권능을 빌리려 한 것이다.
성유물 수집 열풍은 중세 때 거세게 일었다. 지금 유럽과 소아시아의 많은 성당이 보관하고 있는 성유물은 대부분 이때 수집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성유물 가운데 진품으로 확인된 것은 거의 없다고 한다. 성유물의 수효를 보더라도 그 많은 성유물이 모두 진짜라고 믿기는 힘들다. 마크 트웨인은 “예수가 못 박혔다고 하는 십자가 조각을 모은다면 전함 한 척은 만들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성경에서 예수의 제자 도마는 스승에게 “직접 내 상처를 만져봐야 나인 줄 알겠느냐”며 야단을 맞지만 사람들은 눈으로 보여야 믿는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진리 대신 눈에 보이는 허상을 숭배하는 역설이 빚어진다.
최근 일부 기독교인들의 타 종교 비하 발언이 개탄을 자아내고 있다. 그 같은 종교적 태도에서 성유물을 모시는 열풍과 비슷한 뭔가가 느껴진다. 만약 예수가 살아 돌아온다면 지금의 기독교를 보고 뭐라고 할까. “내 흔적이라고 믿는 것은 섬기지만, 진짜 내 가르침은 어디로 갔느냐”고 한탄할 법하다.
십자군 전쟁에 출전한 기사 발리앙은 ‘성전(聖戰)’이라는 이름 아래 추악한 전쟁을 벌이는 인간들의 모습에 절망한다. 전장의 시체더미를 보면서 “이것이 신의 왕국이라면 신들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내뱉는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진정한 신의 왕국은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 있다. ‘성유물을 섬기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그 물음은 지금 더욱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