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들로 가득한 로마 트레비 분수. 분수에 들어가거나 분수대에 신발을 벗고 앉아 있는 일은 올 여름 모두 불법이 됐다.
특히 올 여름에는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품위 유지’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할 분위기다. 로마를 비롯한 각 도시들이 이런 행동은 안 되고 저런 행동도 안 된다는 식의 각종 ‘금지령’을 줄줄이 발표했다. 이제 이탈리아에서 섣불리 행동하다가는 자칫 일주일 바캉스 경비보다 더 비싼 벌금을 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로마 등 중요 도시의 유명 문화재나 관광지, 유적지에서는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 멋모르고 배낭에서 꺼낸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려던 관광객은 어디선가 호루라기를 불며 나타난 경찰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로마의 스페인 광장이나 트레비 분수 가에 걸터앉아 피자나 아이스크림을 먹어서도 안 된다. 특히 스페인 광장의 트리니티 계단은 하루 종일 느긋하게 주저앉아 먹고 마시고 기타 치고 노는 장소로 착각하는 관광객들이 적지 않다. 이탈리아의 유명 문화재들은 높은 울타리 바깥에서 보고 지나가는 유적들이 아니라 도시 생활의 일부분이다 보니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트레비 분수에 걸터앉아 아이스크림? No
결국 잔니 알레만노 로마 시장이 로마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버릇없는’ 일부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레드카드를 들었다. 덥다고 웃통 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일도 이젠 금지. 수은주가 40℃를 오르내려도 시내의 분수에 뛰어들 수 없는 것은 물론, 발조차 담글 수 없다. 사실 로마의 트레비 분수는 1700년대 중반 건축된 바로크 양식의 유적이다.
세르조 코페라티 볼로냐 시장은 ‘길바닥에 앉기 금지령’을 내렸다. 대학 도시로 유명한 볼로냐는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도심 길거리에 앉아 맥주나 음료수를 마신 뒤 그대로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악습이 팽배했다. 이런 무질서한 행위를 아예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볼로냐 대학생들은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길거리에 소파와 의자를 들고 나와 앉아 있는 진풍경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올 여름 ‘금지령’의 최고 히트작은 베네치아의 대형 보따리 들고 다니기 금지 조례일 것이다. 베네치아에서는 가끔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 보따리보다 몇 배나 되는 큼직한 검정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짝퉁’ 명품 핸드백을 파는 상인들이다. 물론 짝퉁 물건을 파는 행위는 불법이다. 이 조례가 효과적으로 보였는지, 베네치아 시에 이어 로마도 도심에서 대형 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행위를 금지했다. 로마는 이에 그치지 않고 짝퉁을 사는 외국 관광객에게도 벌금을 물린다.
베네치아 시가 대형 보따리에 전쟁 선포를 한 까닭은 이 밖에도 또 있다. 주로 세네갈 이민자들이 많은 짝퉁 상인들은 경찰이 출동하면 펼쳐놓았던 물건들을 순식간에 싸들고 좁은 골목길을 잽싸게 뛰어간다.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대형 보따리의 펀치에 맞아 넘어지는 관광객, 재수 없으면 운하에 풍덩 빠지는 관광객도 있다. 이래저래 관광도시 베네치아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이 금지령이 실시된 이튿날 아프리카인 노점상 두 명이 5000유로란 거액의 벌금을 물었다고 한다. 베네치아에서는 성 마르코 광장에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어도 50유로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유명 성당 앞에서 주로 벌어지는 걸인과 집시들의 구걸 행위도 금지 대상이다. 피렌체, 베네치아 시가 구걸 행위를 조례로 금지했다. 범죄조직의 배후 조종을 받는 이들 걸인은 초췌한 모습과는 달리 한 달에 몇천 유로의 수입을 올린다는 풍문이 돈다. 베네치아 시는 구걸은 불법 상행위나 마찬가지이며, 앞으론 탈세죄 적용까지 검토하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성 프란체스코의 도시인 아시시는 성당 주변 500m 이내에서 구걸 행위를 금지하는 이색 조례를 제정해놓았다. 그러나 순례자의 도시인 아시시는 도시 전체에 수십여 개의 성당이 있어 500m 안에 늘 다른 성당이 자리한다. 이 조례는 ‘아시시 전체에서 구걸 행위 금지’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해변가 도시들도 ‘금지령’에 동참했다. 예를 들면 비키니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거나 해변가의 바에 출입하는 행위들이 모두 금지됐다. 주변 해수욕객에게 불편을 끼치는 공놀이나 물 가까이에서 모래성 쌓기마저 금지된 해변이 많다. 이 밖에도 카프리 섬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나무 밑창 슬리퍼 착용 금지, 베르실리아 시와 포르테 데이 마르미 시에선 해변가 마사지 금지령이 내려졌다. 주로 중국인들이 엉터리 마사지를 하는데 이에 대한 벌금이 자그마치 1만 유로다.
트렌토市는 공원서 어린이 촬영 금지
베네치아 시의 산 마르코 광장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관광객들. 이처럼 관광 명소나 유적지에서 먹고 마시는 행위가 올 여름부터 전면 금지됐다.
또 이탈리아 북부 도시 노바라는 밤 11시 이후 공원에 세 명 이상 모이면 500유로의 벌금을 물리는 이색 조례를 발표해 시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도심 치안을 위한 조례라지만 범죄율이 낮은 노바라 시의 이 금지령은 파시스트적인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북부 트렌토 시는 아동 성폭행과 아동 포르노 등에 악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립 92개 수영장과 공원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사진과 비디오 촬영 행위를 금지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끊이지 않자 사진 찍는 사람이 진짜 친부모인지 확인할 수 없다며 전면 금지령을 내린 것이다. 사전 허가를 받으면 단속원 관리하에 촬영할 수 있다지만 논란은 꼬리에 꼬리를 물 것 같다. 그뿐인가? 보행자와 어린이 보호를 위해 시내 일부 지역 자동차 주행 최고 속력을 30km로 제한할 예정인 토리노 시부터 비만한 시민이 다이어트하면 상금을 주는 시까지, 역시 이탈리아인들답게 이색적이고 창의력 풍부한 조례는 끝이 없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 많은 조례들 중 유용한 것은 많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단속을 강화하고 시민의 편의를 향상시킨다기보다는 무조건 다 금지하고 보자는 식이다. 아니면 이탈리아 국민이 어느새 너도나도 공중도덕에 불감한 망나니들이 돼버린 것일까? 아무튼 이 무수한 조례들을 어떻게 다 지킬지, 또 어떻게 단속할지가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