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홈쇼핑 최고 히트상품 ‘루나 바이 조성아’, 롯데홈쇼핑을 통해 독점 판매되는 ‘클리오’, CJ홈쇼핑의 베스트셀러 ‘댕기머리’ 샴푸 등 화장품 브랜드들의 홈쇼핑 독주 현상이 뚜렷하다. 미백화장품 판매가 한창인 GS홈쇼핑의 생방송 현장. 홈쇼핑 화장품의 성공 키워드는 브랜드 파워 또는 특수 기능이다(왼쪽부터).
“여러분, 휴가 다녀오신 뒤 주머니가 한결 가벼워지셨죠? 한 세트 더 드리는 1 + 1 구성, 알뜰 쇼핑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8월6일 오전 한 피부과 전문 브랜드의 미백화장품 생방송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GS홈쇼핑 스튜디오. 쇼핑 호스트들의 청산유수 같은 진행 멘트가 이어진다.
같은 시각,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 사는 주부 이지연(42) 씨는 ‘마감시간 임박’이라는 메시지가 뜨자마자 수화기를 들었다.
“홈쇼핑 화장품은 중독성이 있어요. 시연 모습을 보면 사용 전후가 확연히 달라 마음이 흔들리거든요.”
#지방 고객층을 잡아라!
최근 2008년 상반기 히트상품을 발표한 GS홈쇼핑의 ‘베스트 10’ 상품에는 화장품이 5개나 포진해 있다. 홈쇼핑이 다루는 다양한 품목을 고려할 때 이례적인 성적이다. GS홈쇼핑의 연간 화장품 매출액은 1000억원대에 이른다.
특히 화장품 및 생활용품 업체 애경이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 조성아 씨와 함께 개발한 홈쇼핑 전용 색조 브랜드 ‘루나 바이 조성아’는 2006년 9월 첫 전파를 탄 이후 현재까지 약 5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함으로써 올 상반기 최고 히트상품으로 꼽혔다. 5월 애경 측은 이 브랜드의 선전에 힘입어 역시 홈쇼핑 전용인 피부 관리 브랜드 ‘에스테틱 하우스’를 론칭했다.
국내에서 홈쇼핑이 시작된 1995년부터 현재까지 연도별 히트상품을 분석해 8월 초 발표한 CJ홈쇼핑은 “과거 주로 저가의 주방용품, 가정용품, 전자제품이 인기상품 상위를 차지한 반면, 2005년 이후부터는 샴푸, 한방 화장품, 속옷 등 미용·패션 관련 품목이 상위 5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히트상품 1위를 차지한 고급 한방샴푸 ‘댕기머리’는 2006년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 판매 순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홈쇼핑 화장품들은 과거 저가, 저품질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최근 백화점에서만 판매되던 명품, 유기농 등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대거 진출함으로써 급격히 고급화되고 있는 추세다.
현재 GS, CJ, 현대, 롯데홈쇼핑 등 주요 홈쇼핑 회사를 통해 판매되는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미국의 고급 화장품 기업 에스티로더그룹의 ‘오리진스’ ‘굿스킨’, 호주의 유기농 화장품 ‘줄리크’ 등이다. 또한 고가는 아니지만 그동안 백화점에서 주로 판매되던 ‘부르주아’ ‘스매시박스’ 등 해외 색조 전문 브랜드들도 대거 진출했다. 미국 브랜드 ‘엘리자베스 아덴’도 올해 5월까지 홈쇼핑을 통해 판매됐다. 현대홈쇼핑 측은 “엘리자베스 아덴의 올해 5월 기준 시간당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36% 성장했다”고 밝혔다.
이들 프리미엄 브랜드가 홈쇼핑 시장에 눈을 돌리게 된 까닭은 뭘까. 가장 큰 의도는 백화점 유통구조의 특성상 서울·경기 지역에 집중된 고객층을 지방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오리진스 홍보팀 정다원 씨는 “지방 고객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쇼핑 호스트를 통해 브랜드 스토리, 사용법 등도 교육할 수 있어 제품을 알리는 데 효과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홈쇼핑을 광고 및 홍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보완장치로 여기는 브랜드들이 있다. 줄기세포 기술을 응용해 만든 아모레퍼시픽의 ‘아이오페 스템셀 세트’는 소비자들이 이 제품을 한동안 논란이 됐던 동물 줄기세포와 관련 있는 상품으로 오해할까봐 홈쇼핑을 통해 충분히 설명한 뒤 판매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올 봄 국내에 처음 선보인 굿스킨은 아예 홈쇼핑과 온라인을 유일한 유통 채널로 삼고 있다. GS홈쇼핑, 롯데홈쇼핑 등에서 판매되는 이 브랜드의 ‘트리액티라인 주름 필러’는 올 상반기 히트상품 3위(GS홈쇼핑 기준)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다. 굿스킨 관계자는 “백화점을 통한 유통시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새로운 채널을 시험해보자는 취지에서 홈쇼핑을 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물론 프리미엄 화장품들은 홈쇼핑 특유의 ‘박리다매’식 진행을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홈쇼핑 임영아 MD는 “유명 브랜드일수록 가격이나 구성을 강조하기보다 브랜드 스토리를 내세우길 원한다”고 말했다.
홈쇼핑 시장에 야심차게 진입했다가 일보 후퇴한 브랜드들도 있다. 엘리자베스 아덴은 브랜드 이미지 손상을 우려해 당분간 홈쇼핑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줄리크의 한 관계자도 “홈쇼핑 판매를 지속적으로 해나갈 경우 ‘럭셔리 브랜드’로의 포지셔닝에 리스크가 생기는 데다 기존 유통 채널인 백화점 쪽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한 대형 백화점의 관계자는 “고급 브랜드들이 홈쇼핑 판매에 나선 것 자체를 매출 침체 등 부정적 ‘시그널’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 춘추전국시대 맞은 ‘아티스트’ 브랜드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유명 연예인 등이 개발에 참여한 이른바 ‘아티스트’ 전문 색조 브랜드 역시 홈쇼핑을 통해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특히 홈쇼핑 회사와 브랜드가 제품을 공동 기획하고 독점 판매함으로써 강한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것이 최근 트렌드다.
GS홈쇼핑 ‘루나’의 성공을 벤치마킹한 CJ홈쇼핑은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선진 씨와 ‘카렌’을, 현대홈쇼핑은 방송인 정선희 씨와 ‘세네린’을 공동 개발해 발빠르게 선보였다.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 ‘클리오’는 올 3월부터 롯데홈쇼핑을 통해 홈쇼핑 전용 메이크업 세트를 선보여 목표 매출 200% 이상의 실적을 달성했다. 한편 엔프라니는 손대식 씨, 아모레퍼시픽은 고원혜 씨와 함께 홈쇼핑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 브랜드를 기획 중이다.
최근 홈쇼핑에서 히트한 화장품 브랜드의 특징은 중소규모 화장품 업체들의 약진이 뚜렷하다는 것.
GS홈쇼핑 이·미용 담당 MD 나병우 차장은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대형 화장품 업체를 제외한 중소기업들은 백화점, 시판점, 화장품 전문점을 통한 오프라인 판매에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며 “설 자리가 없어진 중가대 브랜드들을 홈쇼핑 시장이 흡수하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브레인파이 피현정 대표는 “중가대 화장품 시장이 무너진 상황에서 이 그룹에 속하는 브랜드들이 홈쇼핑 특유의 탁월한 기획과 포장술로 합리적인 가격대의 명품, 즉 ‘매스티지 브랜드’로 포지셔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홈쇼핑 시장 규모는 2007년을 기준으로 주춤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홈쇼핑의 주요 구매층인 중산층의 소비력 약화’(신한증권 여영상 연구원), ‘케이블 TV 가입자 수가 보합 상태 유지’(현대증권 이상구 연구원) 등이 그 이유다. 그럼에도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화장품은 성장세를 유지할 전망이다.
현대증권 홍유나 선임연구원은 “유명 외국계 화장품들이 홈쇼핑용 고급 브랜드의 론칭을 계획하고 있다”며 “특히 자연주의 화장품, 피부과 전문 코스메슈티컬, 메이크업 아티스트 브랜드의 전망이 밝다”고 내다봤다.
■이 기사 취재에는 대학생 인턴기자 김태웅(고려대 생명과학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