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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매그넘이 본 한국 사진전 : MAGNUM KOREA’의 주제전 중에서. 외국의 사진작가들이 본 현재 한국의 모습들이다.
20년 전 한국 팀을 응원하기 위해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던 거실의 TV는 어느새 14인치 브라운관에서 42인치 PDP로 바뀌었다. 허허벌판이던 의왕시에는 고층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섰고 왕복 10차로 도로와 지하철까지 생겼다.
임씨는 장롱 서랍에 차곡차곡 놓인 스무 권 넘는 가계부 가운데 한 권을 꺼냈다. 1988년 가계부다. 그때는 100원으로 신라면 한 봉지를 사고도 10원이 남았다. 120원짜리 토큰 하나면 서울 어디든 갈 수 있던 시절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양념치킨이 한 마리에 3500원이었으니 지금보다 1만원 가까이 쌌다. 남편이 즐겨 마시는 소주는 350원, 양복 드라이클리닝 값은 1000원이었다(38쪽 표 참조).
10배 오른 월급에 주5일제 정착
서울시 홍보담당관이자 사진작가인 배병수(57) 씨는 1988년 당시 8세, 6세 딸을 둔 젊은 아빠였다. 2008년 현재 그는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큰딸과 한국무용가가 된 작은딸이 언제쯤이면 결혼할까 궁금하고 걱정도 되는, 예순을 바라보는 아버지다. 배씨는 “20년 전에는 온 가족이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과 군만두를 사먹고, 서울올림픽에 앞서 개장한 한강 고수부지(현 한강시민공원)에서 공놀이하는 것이 최고의 주말 스케줄이었다”고 회상한다. 후텁지근한 여름밤에는 둔치에 텐트를 쳐놓고 하룻밤 자고 오기도 했단다.
그리고 20년 뒤. 월급은 38만원에서 300만원가량으로 10배 가까이 올랐다. 가족끼리 즐겨 외식하는 곳도 샐러드바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아파트 평수는 넓어졌고 없던 에어컨도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가족 모두 각자의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난해 집전화를 아예 없앴다. 주5일 근무제가 시작된 이후에는 휴가 때마다 해외로 나갔다. 배씨는 그동안 카메라를 메고 중국 인도 터키 이스탄불 그리스 등을 누볐다. 지난해는 자동차를 빌려 미국 서부를 일주했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88서울올림픽을 “경제개발체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하나의 계기”라고 평가했다. 서울올림픽을 예정하고 있었기에 1987년 민주화 세력은 군부로부터 6·29선언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정치적 민주화는 시장경제체제로의 이행을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아래에서 한국 경제는 날로 발전했다. 1988년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10.6%로 그야말로 기염을 토했다. 이후에도 외환위기 당시를 제외하고 해마다 5% 이상의 고성장을 거듭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9699억 달러로, 88년 1877억 달러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했다. 88년 당시 4500달러가 채 되지 않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처음으로 2만 달러대에 진입했다. 외환보유액은 123억 달러(1988)에서 2617억7000만 달러(2007), 자동차 등록대수는 203만여 대에서 1642만여 대, 주택 보급률은 69.4%에서 107.1%로 껑충 뛰었다(38쪽 그래프 참조).
경제 성장은 생활을 풍요롭게 한다. ‘생활필수품’인 치약만 봐도 그렇다. 현재 치약시장 점유율 25%를 차지하는 LG생활건강의 ‘페리오치약’은 1981년 처음 출시됐다. 88년 당시 페리오치약은 딱 한 종류였다. 그러나 현재 페리오치약은 스타벅스 커피만큼 고심해서 골라야 할 정도로 소비자 욕구에 맞춰 다양하게 분화됐다. 입 안을 시원하게 해주는 제품, 치아 미백 제품, 시린 이를 위한 제품, 비타민이 들어 있어 잇몸출혈을 억제하는 제품 등 12종류 이상의 치약이 각자 특성에 맞게 출시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집은 넓어졌고 자동차는 커졌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과 마주 보고 있는 잠실시영아파트단지는 1988년 당시 13~20평형의 5층짜리 소형아파트였다.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준공된 아파트들은 대부분 이 정도 크기였다. 그러나 2008년 8월 현재 이 단지는 재건축을 끝내고 16평형에서 52평형까지 다양하게 갖춘 20~36층의 고층아파트로 변신했다. 45평형 이상의 대형 평형도 전체 6800여 가구의 5분의 1에 달한다. 그리고 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88년 배기량 2000cc 이상의 중·대형차 판매 대수는 3131대로 2007년 1만5878대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수입자동차 대수도 88년 351대에서 2008년 상반기 3만3499대로 100배 가까이 증가했다.
1988년 당시 루이비통 가방은 서울 시내에서 보기 드문 희귀품이었다. 루이비통 매장도 3년이 더 지난 91년이 돼서야 처음으로 신라호텔 안에 생겼다. 그러나 현재 루이비통 매장은 전국에 17개에 이른다. 요즘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스피디백은 아무나 다 갖고 다닌다는 뜻에서 ‘지영이 백’이란 별칭으로 불릴 만큼 대중화됐다.
해외여행자는 1988년 72만여 명에서 2007년 1333만여 명으로 18배나 뛰었다. 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실시되고 주5일제가 정착하면서 해외여행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해외공연 성장세도 가히 놀랄 만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발간하는 ‘문예연감’에 따르면, 88년 당시 국내에서 열린 해외공연은 19건에 그쳤고 이마저도 연극에 한정됐다. 그러나 2006년에는 674배 많은 1만2811건의 해외공연이 국내에서 열렸다. 물론 연극뿐 아니라 뮤지컬, 무용, 클래식,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골고루 열렸다.
“기대치 높아지고 살기는 더 팍팍”
풍족해진 만큼 우리는 더 행복해졌을까. 임씨는 “20년 전과 비교하면 장보기가 많이 편해졌다”고 했다.
“대형마트 덕분이죠. 시설도 깨끗하고 한 바퀴만 돌면 필요한 것을 다 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입식품이 많아져 불안해요. 가족이 먹을 거니까 국내산을 사고 싶은데 가격 때문에 수입산을 살 때가 많거든요.”
배씨는 “풍요로운 가운데서도 뭔가 부족한 게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만 해도 해외출장을 간 지인이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좋은 물건을 사오길 학수고대하는 풍조가 있었다. 그러나 이젠 외국에서 굳이 사와야 할 물건이 없을 만큼 물질적으로 풍족해졌다. 그러나 배씨는 “친구나 동료들끼리 모이면 지금이 살기 더 팍팍하고 세상도 각박해졌다는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기대치가 높아져 그런지 다들 뭔가 부족한 게 있다고 느껴요. 스승이랄까, 존경할 만한 사람도 없고요.”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베이징올림픽의 단꿈에 한창 젖어 있는 중국은 한국의 이런 고민을 알까.
임정숙 씨의 가계부 들여다보니… | ||
항목 | 1988년(원) | 2008년(원) |
양념치킨 | 3,500 | 13,000 |
동태 | 500 | 5,000 |
짜파게티 | 180 | 850 |
한우 한 근 | 4,000 | 22,000 |
두부 | 170 | 1,200 |
제천기차역 가락국수 | 500 | 3,000 |
계란 한 판 | 1,200 | 3,500 |
빼빼로 | 200 | 500 |
소주 | 350 | 1,000 |
맥주 | 650 | 1,500 |
신라면 | 90 | 750 |
돼지고기 한 근 | 2,200 | 12,000 |
떡볶이 일인분 | 300 | 2,000 |
버스비 | 120 | 1000 |
청량리~안동 기차요금 | 7,000 | 15,300 |
담배 | 500 | 2,500 |
신문구독료 | 2,000 | 12,000 |
대중목욕탕 | 1,000 | 6,000 |
이발비 | 1,500 | 8,000 |
양복 드라이클리닝 | 1,000 | 6,000 |
축구공 | 2,800 | 20,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