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 씨는 국제수형자이송제도를 통해 국내로 돌아왔지만, 김씨의 동생(왼쪽 사진)은 ‘형님의 형기가 3년 늘어났다’며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 돌아오면 수감기간이 3년 늘어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미국에서 감형(減刑) 기준으로 인정하고 있는 선시점수(Good Conduct Time Earned Credit)가 한국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기자와 만난 김씨의 동생은 “한국 정부가 이런 사실을 사전에 말해주지 않았다”면서 “형기가 3년이나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형님은 미국에 남아 있었을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정부, 형기 증가 사실 안 알려줘”
국제수형자이송제도는 국외(國外) 한국인 재소자들이 국내 수형시설에서 생활하도록 함으로써 외국의 교정시설에서 겪는 문화적, 정서적 차이를 줄이고 가족 등의 지원에 힘입어 교화에 더 힘쓰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우리나라는 2005년 다수의 유럽국가, 미국, 일본 등이 소속된 유럽수형자이송협약에 가입함으로써 같은 해 11월부터 협약 가입국들과 수형자이송이 가능해졌다.
첫 국제수형자이송 심사위원회(이하 이송심사위)는 2006년 10월13일에 열렸다. 이 회의에서 국내이송 신청자 6명 가운데 4명이 승인을 받았고, 김씨는 국내로 이송된 첫 사례다. 법조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수형자 인권보호 측면에서 국제수형자이송제도를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이 제도의 ‘수혜자’인 국제수형자와 그 가족은 절차 진행이 매우 더디고, 국내로 이송되는 수형자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가장 뜨거운 논란거리가 바로 해외에서 취득한 선시점수 인정 여부다.
미국은 수형자가 모범적으로 형무소 내 규율을 준수하고 교육과 직업훈련에 참가할 경우 매년 54일씩 형기를 줄여주는 선시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한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국제수형자 가족들의 원성이 높다. 그러나 법무부는 법적 근거가 없는 만큼 선시점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국제형사과 김윤석 계장은 “국제수형자이송법 17조에는 ‘국내이송수형자에 대한 가석방, 감형 등은 대한민국의 관련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한다’고 규정돼 있다”면서 “국내 법률에 선시제도가 없는 만큼 인정할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국내이송을 포기하고 타국에서 형을 살겠다는 한국인 수형자들도 많다. 국제수형자가족협의회 사이트(http://cafe. daum.net/ipfc)에서는 ‘일본에 수감 중인 남편은 한국에 돌아와 형을 다 채워야 하는 것이 두렵다고 한다. 그저 일본에서 가석방을 기다리는 게 낫다며 국내이송 신청을 포기했다’는 등의 사연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국내이송 신청에서 실제 이송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이송 신청은 한국 법무부 혹은 해당 국가 정부에 할 수 있는데, 한국인 수형자들은 대부분 한국 법무부를 통한다. 이 경우 관할 총영사관이 신청을 받아 한국 외교통상부를 거쳐 법무부에 보고하는 절차를 거친다. 법무부는 자료 조사 뒤 이송심사위를 열어 승인 여부를 결정하고, 이후 장관 결재를 받아 상대국에 결정사항을 통보한다. 상대국이 동의하면 실무절차를 거쳐 국제수형자는 국내로 이송된다.
최초 이송자인 김씨의 경우 2006년 1월 신청해 이듬해 3월 국내로 이송되기까지 무려 14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처럼 이송기간이 긴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이송심사위가 6개월에 한 번꼴로 열리는 점을 꼽는다.
이송절차 복잡하고 처리 기간도 길어…신청 2년 넘도록 ‘감감’
실제 2006년 10월 첫 이송심사위가 열린 뒤 2007년 6월이 돼서야 2차 이송심사위가 열렸다. 이송심사위는 법무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해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 형사부장, 외교부 재외동포영사국장,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비상설기관인 데다 고위관료로 구성돼 자주 열리기 어려운 구조다.
이송심사위 위원이자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인 이상석 변호사는 “한두 명이 신청하더라도 해외수형자 인권보호 측면에서 즉각 심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이화여대 법학과 김영석 교수(국제법)도 “비슷한 절차를 따르는 난민심사, 국적회복심사도 자주 시행된다”며 “국제수형자이송 심사도 해외수형자의 인권을 고려해 전체 기간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 교수는 “고위관료보다는 실무자, 국제법 및 인권 전문가들로 구성해 이송심사위를 상설화하거나, 비상설로 운영하더라도 심사 간격을 단축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송 승인이 떨어졌어도 통지가 늦어져 신청자들만 애달파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 오사카형무소에서 복역 중인 신모 씨는 4월27일 ‘주간동아’에 보낸 편지에서 “이송 신청 후 2년 반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다. 도대체 이송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그리고 한국 측에서 이송자를 안 받는 건지 일본 측에서 안 보내주는 건지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주간동아’가 확인한 결과, 신씨는 지난해 12월 이미 이송심사위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법무부 국제형사과는 2008년 1월 이 사실을 일본에 통보하면서 신씨에게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주일대사관을 통해 한국 정부가 직접 통보하라는 요구를 했고, 이에 주일대사관이 법무부에 보고했다. 법무부가 다시 절차를 밟아 신씨에게 이송 사실을 알린 것은 4월 말. 이송 승인이 떨어진 지 4개월이나 지나서다. 물론 국제수형자이송 업무지침에는 ‘진행 상황을 신속히 수형자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명기돼 있다. 법무부 한 관계자는 “일본 측 실무담당자가 교체되면서 진행 과정에 미숙한 점이 있었다”며 “향후 일본 측과 협의해 이런 문제를 개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선시점수 무효화 공방 법정에서 가려질 듯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과 수형자이송조약 서명을 추진하고 있으며, 5월 말로 예정된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 기간에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수형자이송협약국을 확대해나가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현 제도하에서 벌어지는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과 국제수형자 가족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현재 1400명에 가까운 재외국민이 타국에서 저지른 범죄로 해당 국가에 수감돼 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성경 구절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자국민이 국내에서 정당한 죗값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정부의 최소 임무일 것이다. ‘자유로운’ 우리에겐 그저 하루에 불과한 시간이 그들에겐 10년처럼 느껴질 수 있다. 국제수형자이송제도의 시급한 보완이 요구되는 이유다.
김씨 가족은 법무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법무부와 휴스턴 총영사관은 김씨에게 선시점수 무효화를 충분히 알렸다는 입장. 법무부 관계자는 “국내이송동의서를 작성할 때 총영사관이 충분히 얘기했고, 법무부에서도 이송절차 진행상황 통지서를 보냈다”고 밝혔다. 이처럼 양쪽 주장이 엇갈리고 있어 결국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