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1년이 채 안 된 지금, 사르코지는 27%의 인기 하향세와 58%의 반대여론에 직면해 있다. ‘사르코지 혐오증(Sarko-phobie)’이라는 신조어로 대변되듯, 그에 대한 국민의 환멸과 배신감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높다. 과연 1년도 안 된 기간에 프랑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표면적인 이유로는 이혼과 초스피드 재혼이라는 그의 사생활이 거론될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좀더 근본적인 곳에서 출발하는 듯싶다. 국민이 기대했던 명료한 전망과 효과적인 정책을 사르코지에게서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다. 추진력은 여전하지만 문제는 이 추진력이 방향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그가 내걸었던 경제개혁은 2~3%의 실업률 하락이라는 성과는 거뒀지만, 피부에 와닿는 가시적 성과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의식주 비용은 거침없이 상승하고 서민들의 수입은 제자리걸음이다. 사르코지의 세일즈 외교 덕에 프랑스는 아프리카, 중국, 중동 국가들과 원전 수출 계약을 맺었다. 또 지중해 지역 경제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사르코지는 지금까지 프랑스가 테러단체라고 비판해온 리비아와 굴욕적인 외교도 펼쳤다. 그러나 이 같은 외교정책의 결과는 그다지 확실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인권단체와 환경단체, 전통적 보수세력의 반대여론만 부채질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혼 뒤 초스피드 재혼한 사생활 문제도 한몫
특히 시라크 전 대통령 당시부터 위기에 처했던 국가재정 문제에 대해 사르코지 정부는 어떤 해결책도 찾지 못하고 있다. 사르코지는 이를 위해 지난 가을 철도공무원 연금개혁으로 노동조합과 대결했다. 그 결과 철도파업으로 국민만 엄청난 불편을 겪었다. 여전히 프랑스는 세계 여러 은행들에서 거액의 대출을 받고 있고, 루브르와 오르세 박물관 미술품의 해외전시 수입으로 이를 메우는 실정이다. 최근 사르코지는 ‘경제적으로 가난하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들의 예를 강조하면서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명확하지 못한 정책 근간에는 사르코지의 독단적인 리더십이 도사리고 있다. 대통령으로서의 직분을 넘어선 총리와 일반 장관들의 업무에 대한 간섭과 국정 장악은 집권 초기엔 효율적인 정책 추진이라는 긍정적 측면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그의 간섭이 곳곳에서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 지금 사르코지의 행동은 오히려 그보다 독재로 보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사르코지는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즉흥적인 자신의 판단을 관철하려는 스타일이다. 대표적 사례가 최근 문제가 된 교도소 수감기한 연장안이다. 이는 교도소 수감기간에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수감자에 대해 사법부의 별도 재판 없이도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통해 수감기간을 연장한다는 법안이다. 이 법안은 좌우파 모두의 비난을 받았고, 파기법원(한국의 헌법재판소에 해당)에서 위헌으로 파기됐다. 그런데도 사르코지는 치안확립을 내세워 이 법안을 관철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국시라 할 수 있는 반교권주의 원칙 훼손이 결정타
지난해 11월14일 열린 철도파업. 프랑스 철도노동조합은 철도공무원 연금개혁을 추진하는 사르코지 정부에 24시간 전면파업으로 맞섰다(사진 위). 2월28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한 사르코지 대통령이 부인 카를라와 함께 미소짓고 있다. 사르코지는 이혼 3개월 만에 가수인 카를라 브뤼니와 재혼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들은 장기적 차원의 개혁이 겪어야 할 일시적인 고통 아닌가? 프랑스인들은 이러한 생각으로 지난해 12월까지 사르코지에게 50% 이상의 지지율을 보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20일 사르코지는 교황 베네딕투스 16세를 만난 자리에서 프랑스 공화국의 국시라 할 수 있는 반교권주의 원칙을 훼손하며 친가톨릭적 발언을 해 국민의 신뢰에 결정타를 날렸다. 2008년에 들어선 지금 프랑스인들은 사르코지에게서 명확한 전망과 일관된 정책보다는 미디어 조작과 자극적인 연설을 통한 원칙 없는 인기영합책만을 확인하고 있다. 즉 전문가들의 조언과 비판 차단, 즉흥적 언변, 사회 전반과의 대화 단절, 이러한 문제점들이 가시화되면서 사르코지에 대한 신뢰도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내외적으로 논란이 돼온 그의 처신들(푸틴과 만난 자리에서의 술주정, 메르켈의 목덜미 잡아당기기, 스페인 총리 자파테로에 대한 조롱, 미국 기자들과의 마찰 등)은 실수가 아닌 그의 본래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나아가 최근의 욕설 파문(농업박람회에서 한 농민이 악수를 청하는 사르코지에게 “나를 건드리지 마라, 더럽다”고 말하자 사르코지가 “그럼 꺼져. 이 불쌍한 ××놈아!”라고 욕설을 내뱉은 사건)은 사르코지에 대한 환멸을 넘어 정권 자체를 걱정스런 눈으로 보게끔 했다. 어쨌든 현재의 집권 우파인 대중운동연합(UMP)의 가장 골칫거리는 사르코지 대통령 자신인 듯 보인다.
3월9일과 16일 프랑스 전역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치른다. 어떠한 결과가 나올 것인가? 특히 사르코지의 아들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경력도 없는 그의 둘째 아들이 뇌이유(Neuilly) 시장 후보로 출마한 것에 대해 뇌이유 시민들은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중요한 것은 사르코지에 대한 지지율 하락이 곧바로 집권 우파의 지지율 하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농촌에서는 시라크의 우파가 지지를 얻고 있으며, 사르코지 아래에서 묵묵히 뒤처리를 수행하고 있는 피용(Fillon) 국무총리의 지지율은 57%에 이른다. 결국 진정 개혁을 원하고 있는 프랑스인들은 아직 집권 우파에 기회를 주고 있는 셈인데, 그러나 그것이 사르코지의 우파는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