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카위 상징 독수리 광장(작은 사진).
말레이시아 본토인 말레이 반도에서 북서쪽으로 안다만 해를 끼고 있는, 제주도 3분의 1 정도 크기의 랑카위는 인도양이 말라카 해협으로 흘러드는 길목으로서 태국과 경계를 이룬다. 남쪽의 페낭 섬에서는 비행기로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지만, 한국에서 가려면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을 경유해 국내선을 갈아타야 한다. 말레이시아가 다인종·다문화 국가임에도 랑카위의 2만여 인구 중 95%는 말레이계다. 나머지는 중국계, 인도계, 기타 소수민족으로 이뤄져 있다.
랑카위는 한국 사람보다는 유럽인에게 더 알려져 있으며, 휴양과 관광을 겸하려는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특히 안성맞춤이다. 조디 포스터와 저우룬파(주윤발)가 열연한 미국 영화 ‘애나 앤드 킹(Anna and the King)’의 여름 별장 촬영지이기도 한 랑카위의 아름다운 경치는 섬 전역에서 감상할 수 있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시골마을 풍경, 한갓지고 풍요로운 논밭, 열대 수풀림 여기저기서 불쑥 나타나 제 존재를 알리는 원숭이 도마뱀 같은 야생동물…. 객의(客衣)를 잡아채는 것들을 일일이 열거하긴 쉽지 않지만, 랑카위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섬과 섬 사이를 일주하는 아일랜드 호핑 투어다.
10명 남짓 탈 수 있는 스피드 보트를 타고 ‘베라스 바사’ 등 랑카위의 여러 섬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강하게 불어오는 맞바람을 맨얼굴로 받아내다 보면 일상에 찌든 삶이 언제였던가 싶다. 그뿐인가. 산홋빛 바다와 부드러운 백사장이 펼쳐진 섬에 올라 맛보는 숯불에 구운 게와 새우, 거기에 맥주 한 잔이면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1_ 랑카위는 해양 스포츠의 천국이다. 2_ 랑카위 전역에서 원숭이 등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다.<br> 3_ 섬과 섬 사이를 일주하는 아일랜드 호핑 투어.
호핑 투어 도중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행사도 인기다. 랑카위 해변엔 갈매기가 없다. 대신 일반 독수리보다 다소 몸집이 작은 갈색 독수리들이 진을 치고 있다. 물고기 대신 준비해간 닭 내장을 스피드 보트에서 바닷물에 던지면 독수리들이 수면 위를 쏜살같이 스쳐 날아간다.
이 때문인지 랑카위의 중심지 쿠아타운 인근에 있는 다타란 랑(독수리 광장)은 랑카위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랑카위라는 지명 역시 독수리에서 비롯됐다. 고대 말레이어로 ‘랑(Lang)’은 독수리, ‘카위(Kawi)’는 갈색이라는 뜻.
랑카위는 전설과 신화의 섬으로도 통한다. 랑카위에서 가장 큰 호수인 풀라우 다양 분팅은 호수의 한쪽 언덕과 바위의 모양이 반듯이 누운 임신부를 닮아 ‘임신부의 호수’로도 불린다. 이 호수에서 목욕하거나 물을 마시면 임신할 수 있다고 해서 불임 부부들의 필수 답사코스로도 유명하다. 200여 년 전 부당하게 간통죄를 뒤집어쓰고 사형당한 미녀 마수리의 무덤도 빼놓을 수 없다. 죽을 때 그녀는 결백의 증거로 흰 피를 흘렸다는데, 이후 7대에 걸쳐 랑카위에 저주가 내릴 것이라는 그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전해진다.
랑카위의 또 다른 매력은 쇼핑 천국이라는 점. 섬 전체가 면세지역임에도 200만 인구가 북적대는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와 같은 번잡함은 찾기 힘들다. 랑카위 곳곳에서 정부와 민간 주도로 관광산업이 본격 개발되고 있지만, 코코넛나무 키보다 높은 4층 이상 건물은 짓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을 만큼 자연친화적 개발을 지향한다.
5월26일 신행정도시 푸트라자야에서의 개막 행사를 시작으로 6월10일까지 말레이시아 전역에서는 ‘수백만 가지의 색채, 수백만 가지의 미소(Millions of Colours, Millions of Smiles)’를 테마로 한 ‘컬러 오브 말레이시아(Colours of Malaysia)’ 축제가 열린다.
랑카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해발 710m의 구눙 맷 신캉 정상에 오르려 곤돌라에 몸을 싣는다. 짜릿하다. 그 짜릿함을 무릅쓰고 굽어보는 랑카위. 그 섬들 위로 적도의 태양이 미소 한 자락 살포시 내려놓는다.(여행 문의 : 말레이시아 관광진흥청 서울사무소 02-779-4422, www.mtp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