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대중음악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수 ‘비’. 엄청난 팬들을 끌어 모으면서 공연마다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고 있다. 무명의 백댄서 시절 그를 발굴해 오늘의 스타로 키워준 이는 박진영이다. 그는 비의 어떤 점을 보고 선발했을까?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사람들은 많아요. 그런데 비를 뽑은 이유는 그의 눈빛 때문이었어요. 꼭 붙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배어 있는 그 눈빛.”(KBS 1TV 일요스페셜 ‘밀착취재 비, 아시아를 넘어서’ 중에서)
커뮤니케이션에서 얼굴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높다. 표정에 그 사람의 감정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게 마련이고, 거기에서 그의 됨됨이와 삶의 행적까지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말할 때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본다. 대화에서 시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인은 이야기를 나눌 때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서양인의 오해를 사기도 한다. 뭔가 숨기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들은 통역을 끼고 외국인과 이야기할 때에도 통역사가 아니라 대화 상대를 보고 말한다.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할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러한 차이를 인식하고 그쪽의 ‘코드’에 맞추어주는 것도 필요할 듯싶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을 단순히 문화의 차이로만 치부할 것은 아니다. 자폐아들의 공통점은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한국인들은 모두가 경미한 자폐증에 걸려 있는 건 아닐까. ‘노는 만큼 성공한다’를 쓴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그렇다”고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맨정신으로는 남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어색함에서 벗어나고자 남자들이 폭탄주를 마신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이 똑바로 대면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관계가 온전하게 맺어지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석에서만이 아니다. 지체 높은 분들이 공식석상에서 발표나 축사를 할 때 청중을 편안하게 바라보면서 말하는 이를 만나보기가 참으로 어렵다. 시선은 거의 준비해온 원고를 읽는 데 고정돼 있다. 교사나 교수들 가운데에도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강의하지 못하는 이들이 꽤 있다. 발표나 수업의 내용을 숙지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아를 드러내는 데 대한 공포 때문이다.
권위주의 문화에서는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데 두려움을 갖는다. 그러한 소통 부전(不全)을 권력으로 은폐하고 군림하려 든다. 아랫사람들 또한 거기에 주눅 들고 눈치를 보면서 시선의 힘을 잃게 된다.
생활 속에서 시선 마주치는 습관 들일 때
입사시험에서 면접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요령을 가르쳐주는 책이 많이 나와 있고, 그것을 집중적으로 연습시켜 주는 전문 학원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그 효과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 ‘면접’의 말뜻을 풀자면 ‘얼굴을 접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눈빛을 마주치면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과정에서 ‘말하기’의 자리는 지극히 왜소하다. 게다가 요즘에는 컴퓨터 때문에 타인과 대면하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온라인에서 그렇게 활발하게 채팅하던 사람들이 막상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뻘쭘’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이들은 언어 이전에 눈으로 소통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이런저런 힘에 짓눌려 소통의 회로가 막히거나 왜곡되고 시선도 희미해진다. 이제 눈으로 말하는 능력을 재활해야 한다. 생활 속에서 시선을 마주치는 습관을 들여보자. 아이의 사소한 말에 귀 기울이면서 눈을 깊이 응시해주자. 그것은 단순히 몸짓의 체득만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르는 길을 넓히면서 내면의 방어막을 거두는 일이다. 거기에서 우리의 말문은 더욱 활짝 열릴 것이다.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사람들은 많아요. 그런데 비를 뽑은 이유는 그의 눈빛 때문이었어요. 꼭 붙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배어 있는 그 눈빛.”(KBS 1TV 일요스페셜 ‘밀착취재 비, 아시아를 넘어서’ 중에서)
커뮤니케이션에서 얼굴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높다. 표정에 그 사람의 감정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게 마련이고, 거기에서 그의 됨됨이와 삶의 행적까지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말할 때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본다. 대화에서 시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인은 이야기를 나눌 때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서양인의 오해를 사기도 한다. 뭔가 숨기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들은 통역을 끼고 외국인과 이야기할 때에도 통역사가 아니라 대화 상대를 보고 말한다.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할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러한 차이를 인식하고 그쪽의 ‘코드’에 맞추어주는 것도 필요할 듯싶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을 단순히 문화의 차이로만 치부할 것은 아니다. 자폐아들의 공통점은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한국인들은 모두가 경미한 자폐증에 걸려 있는 건 아닐까. ‘노는 만큼 성공한다’를 쓴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그렇다”고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맨정신으로는 남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어색함에서 벗어나고자 남자들이 폭탄주를 마신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이 똑바로 대면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관계가 온전하게 맺어지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석에서만이 아니다. 지체 높은 분들이 공식석상에서 발표나 축사를 할 때 청중을 편안하게 바라보면서 말하는 이를 만나보기가 참으로 어렵다. 시선은 거의 준비해온 원고를 읽는 데 고정돼 있다. 교사나 교수들 가운데에도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강의하지 못하는 이들이 꽤 있다. 발표나 수업의 내용을 숙지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아를 드러내는 데 대한 공포 때문이다.
권위주의 문화에서는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데 두려움을 갖는다. 그러한 소통 부전(不全)을 권력으로 은폐하고 군림하려 든다. 아랫사람들 또한 거기에 주눅 들고 눈치를 보면서 시선의 힘을 잃게 된다.
생활 속에서 시선 마주치는 습관 들일 때
입사시험에서 면접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요령을 가르쳐주는 책이 많이 나와 있고, 그것을 집중적으로 연습시켜 주는 전문 학원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그 효과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 ‘면접’의 말뜻을 풀자면 ‘얼굴을 접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눈빛을 마주치면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과정에서 ‘말하기’의 자리는 지극히 왜소하다. 게다가 요즘에는 컴퓨터 때문에 타인과 대면하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온라인에서 그렇게 활발하게 채팅하던 사람들이 막상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뻘쭘’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이들은 언어 이전에 눈으로 소통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이런저런 힘에 짓눌려 소통의 회로가 막히거나 왜곡되고 시선도 희미해진다. 이제 눈으로 말하는 능력을 재활해야 한다. 생활 속에서 시선을 마주치는 습관을 들여보자. 아이의 사소한 말에 귀 기울이면서 눈을 깊이 응시해주자. 그것은 단순히 몸짓의 체득만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르는 길을 넓히면서 내면의 방어막을 거두는 일이다. 거기에서 우리의 말문은 더욱 활짝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