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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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이창동 미워도 감독 이창동 다시 한번”

이장관 스크린쿼터 축소 검토 발언 파문 … 영화인들 배신감 토로 속 “그래도 이감독 껴안아야”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4-06-25 1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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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쿼터를 조금 줄인다고 해서 우리 영화가 위축되진 않죠? 자신 있죠?”(노무현 대통령) “…자신 없습니다.”(영화 ‘올드보이’ 박찬욱 감독) 6월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제문화전문가단체(CCD) 서울총회 참석자 초청 만찬에서 오고 간 말이다. 박감독이 이 사실을 전하면서 영화계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말한다. 영화 및 문화계 단체들로 이뤄진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에 소속된 이은 감독, 양기환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사무처장, 양윤모 영화평론가,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 등 영화인 6명이 6월7일 긴급히 이창동 문화부 장관 면담을 요청했다. 이렇게 해서 이른바 ‘6인 면담’이 11일 금요일 오후 4시에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이창동 장관은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를 위해 스크린쿼터 일수를 축소 조정하는 안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는 의견을 냈다. 이장관은 △스크린쿼터 축소가 한미투자협정(BIT) 등 대미 협상과 직접적 관련 없이 우리 영화산업을 위한 주체적 정책판단에 따른 것이며 △다양한 영화가 제작되어야 하고 △스크린쿼터 축소로 영화산업이 심각하게 위축된다는 신호가 나타나면 다시 쿼터제를 회복하는 연동제 방식이 가능하다는 세 가지 원칙을 덧붙였다.

    “장관 이창동 미워도 감독 이창동 다시 한번”

    스크린쿼터가 또다시 영화계를 압박하고 있다. 15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한국영화 점유율이 50%가 됐고, 철썩같이 믿었던 영화인 출신 이창동 장관과 대통령이 스크린쿼터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장관 의견 수용파와 반대파 한때 격론

    ‘6인 면담’ 내용은 이날 6시30분 문화관광부 공보관의 기자 브리핑으로 알려지게 됐다. 1998년 이후 어깨를 함께 걸고 스크린쿼터 수호 시위에 나섰던 현장 이론가였으며 입각 이후 “어떤 일이 있어도 스크린쿼터를 지키겠다”고 누차 천명했던 이장관이 돌연 ‘스크린쿼터 축소 시점’이라고 말한 데 대해 영화인들은 한결같이 당황스러워했다. 6월1일 CCD회의에 참석했을 때만 해도 장관이 문화 다양성을 위한 스크린쿼터의 필요성을 다시 역설했기에 이 ‘극적인 반전’을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해 논란이 분분했다. 그러나 장관을 만나고 나온 6인의 반응에서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감지됐다. ‘배신감을 느낀다’와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자’는 의견으로 나뉜 것이다. ‘6인 면담’ 후 참석자들이 ‘이창동 장관의 심경을 절대 말하지 않기로 약속’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궁금증은 더욱 증폭됐다. ‘6인 면담’이 열린 뒤 6월16일 밤 서울 남산 감독협회 사무실에서 영화인 단체 집행위원 등 45명이 모인 가운데 비공개로 대책회의가 열렸다. 대책회의 후 양기환 사무처장은 “최근 영화계 내부에 이견이 있는 것으로 비치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33개 영화계 단체가 만장일치로 스크린쿼터를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회의 참석자들은 “능동적이고 전투적으로 싸워갈 것”이라고 밝혔으나 “어차피 영화계로 돌아올 사람인 이창동 장관에 대해서는 이번 상황에 대해 비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묘한’ 설명을 달았다. 한 참석자는 “기자들의 유도신문에 넘어가지 말자”는 결의를 했다고 귀띔했다. 공식적으론 한목소리가 나왔으나 회의 참석자들이 전한 바에 따르면 이날 회의는 ‘이창동 장관 의견 수용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이완용 비유론’이 나오는 등 멱살잡이 직전에 이를 정도로 격렬했다고 한다. 수용파에 정책연구자, 제작자들이 있고 반대파에 현장 감독 등이 많기는 하지만 직업군에 따른 명확한 차이보다 참여정부 이후 어떤 자리에서 이창동 장관과 얼마나 가깝게 지낸 사이냐에 따라 의견이 나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만큼 한국영화 점유율 50% 시대의 스크린쿼터는 미묘하고 복잡한 문제가 되었다.

    이창동 장관 의견 수용파의 논리는 한국영화계를 사랑하는 이창동 장관의 ‘진정성’을 이해하자는 데서 출발한다. 이들은 교체를 목전에 둔 이장관이 예상되는 비난을 무릅쓰고 스크린쿼터 축소를 대가로 영화계 지원안을 들고 나온 것이야말로 영화인 출신 장관으로서 마지막 책임을 지려는 자세라는 것이다. 스크린쿼터가 대외적으로 한국경제의 ‘개방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정책이 되어버린 이상, 변화를 보여주는 ‘액션’-스크린쿼터 일수의 축소-을 취하고,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위한 실질적 지원을 받자는 것이다. 이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는 한국영화의 점유율이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예외적인 상업영화에 의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기인한다. 한국영화 산업의 문제는 스크린쿼터 수호가 아니라 ‘다양성의 부재’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시네마서비스와 CJ 같은 기업 자본이 제작에서 배급까지 수직계열화를 거의 완성한 이상 지속적으로 한국영화 제작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할 것이므로 외교적 ‘액션’이 실질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장관 이창동 미워도 감독 이창동 다시 한번”

    6월18일 열린 긴급 대책회의(왼쪽)와 대선 전 노무현 대통령과 영화인들의 만남.

    반면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사수파는 “스크린쿼터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이나 우루과이라운드 서비스 협상 등 국제법상으로도 인정받는 각국의 문화보호 제도 중 하나이므로 세계화에 어긋나는 정책이 아니다”면서 “내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이 체결되는데 우리가 미리 축소안을 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스크린쿼터와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절대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는 연구보고서를 낸 ‘스크린쿼터 경제효과 프로젝트’팀(연구책임자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역시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이른바 대박 영화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는다면 한국영화 시장은 급속하게 몰락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스크린쿼터라고 주장한다. 이장관이 제안한 ‘연동제’는 한 번 개방한 시장을 다시 뒤집는 일이 불가능한 국제법을 무시한 발언이라고 반박한다.



    스크린쿼터 사수 위해 강경투쟁 선언

    또한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를 꾀하다 철수한 삼성영상사업단의 전례로 볼 때 기업이나 투자 자본의 속성상 영화 제작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면 주저없이 한국영화 제작에서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근본적으로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주장파는 ‘이창동 장관은 이제 정치인’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경제부처의 강한 압박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차기 장관이 짊어질 짐을 덜어주기 위해 영화계의 신뢰를 받고 있는 이장관이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장관이 스크린쿼터 축소가 ‘대미협상과 관련이 없다’고 설득력 없는 주장을 한 점, 이 같은 중대 사안을 신문을 만들지 않는 토요일 전인 금요일 밤을 ‘골라’ 공보관을 통해 발표한 것도 ‘정치인다운’ 태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나라당의 정병국 의원은 ‘쿼터 축소는 장관이 아니라 문화부의 입장’이라는 1차 공개질의서에 대한 이장관의 대답에 대해 ‘그렇다면 장관의 입장은 무엇이냐’는 재질의서를 보내기도 했다. 정의원은 이장관의 발언 후 현재 시행령에 의해 규정된 스크린쿼터제를 영화진흥법에 올리는 법률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스크린쿼터 축소 수용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쪽이든 축소 불가를 주장하는 쪽이든, 영화인들은 참여정부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과 이창동 장관만을 믿고 지나치게 안이한 대처를 해왔다는 반성을 함께 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말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영화인들에게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대안과 한국영화 산업 발전안을 스스로 제시하라는 ‘사인’을 직간접으로 전달했는데도, 별다른 이론적 실천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영화 스크린쿼터에 ‘예술영화쿼터제’를 도입해 비상업적이고 예술적인 영화가 극장에 걸릴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방안이 연구된 정도다. 영화인들은 6월22일부터 ‘결의대회’ 등 강경 투쟁에 들어간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스크린쿼터를 지키되, 스크린쿼터 축소안을 내놓은 이장관은 싸안는다’는 태도도 여전하다. 전열은 흐트러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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