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우선 국내 최고의 사법기관임을 자임해온 대법원은 헌재의 동향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2002년 서울남부지법이 청구한 위헌심판에 대판 판결을 차일피일 미뤄왔던 헌재가, 최근 대법원이 판결을 예고하자 행보를 가속화하며 판결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어차피 헌재는 정치적 판결을 내리는 기관이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헌재가 대법원과 다른 결론을 내릴 경우 파장은 적지 않을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달지 못하고 있다.
탄핵 심판 이후 적잖은 역량을 병역거부 사건에 집중해온 헌재는 국민 대다수가 병역거부 반대론에 쏠려 있다는 점이 고민거리. 그러나 헌재는 비교적 쉽게 이 난관을 헤쳐나갈 것으로 보인다. 위헌심판을 내리더라도 대체입법을 제안할 수 있는 타협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고민의 무게는 대법원으로 쏠릴 수밖에 없게 됐다.
우선 대법원은 1969년과 85년, 92년 상고심에서 “종교의 교리를 내세워 법률이 규정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것과 같은 이른바 양심상의 결정은 헌법에서 보장한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고 일관되게 병역거부 사건을 처벌해왔다.
헌법재판소 전경
현재 사건이 배당된 대법원 1부(주심 조무제 대법관)와 3부(주심 윤재식 대법관)가 각각 다른 판결을 낼 수도 있지만 사안의 중요성에 따라 대법원장을 포함한 13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대법원 의견을 조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대법원이 판결을 앞두고 공청회를 열지 않는 것으로 봐서 정면승부(전원합의체)를 피해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작년에 대법관 파동을 겪은 대법원이 올해 조무제 대법관의 퇴임과 내년 최종영 대법원장의 임기만료를 앞두고, 대법관 인선의 주도권을 위한 개혁적 판결을 내릴지 모른다는 기대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적잖은 대법원 관계자들은 “남부지법 이정렬 판사의 무죄판결이 너무 빨리 나왔다”는 푸념을 내뱉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