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고요 수목원의 5월은 순백의 청순함으로 시작된다. 불도화, 쪽동백, 찔레꽃, 아카시아 등 온통 흰색 꽃들이 지천으로 핀다. 잘 자란 연녹색의 나뭇잎들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살랑살랑 나부끼는 흰색의 꽃들은 보는 이들을 아찔하게 만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보다 성숙하고 순결한 여인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움이다.”(‘꽃 색깔도 계절을 탄다’에서)
경기 가평군 축령산 기슭에 숨어 있는 아침고요 수목원은 1996년 문을 열었다. 삼육대학 원예학과 한상경 교수는 미국의 한 대학에 1년간 연구교수로 있을 때 캐나다 서부해안 빅토리아 섬에 있는 부처드 가든을 보고 한국에는 왜 이런 것이 없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 후 줄곧 자연미와 동양적인 선(線)의 미가 살아 있는 정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즐거운 상상에 지나지 않았던 아침고요 수목원은 이제 1760여 종의 식물을 보유한 대표적인 한국식 정원으로 자리잡았다. 침엽수정원, 능수정원, 분재정원, 허브정원, 하경정원, 아이리스정원, 단풍정원, 매화정원, 한국정원 등 19개의 주제별 정원이 계절에 따라 다른 자태로 여행객들을 맞는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고향집의 익숙한 풍경을 발견한다. 한교수는 처음부터 자신이 나고 자란 강원 횡성의 고향집을 연상하며 정원을 만들었다. 장독대 옆 화단에 채송화, 봉숭아, 백일홍, 분꽃, 과꽃, 접시꽃의 씨앗을 뿌리고 그 옆에는 라일락과 앵두나무 따위를 옮겨 심었다.
한교수의 수필집 ‘아침고요 산책길’은 수목원의 사계절을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수목원에 와서 그냥 분주히 사진 몇 장 찍고 서둘러 사라지는 도시인들이 놓친 수목원의 참모습을 책 속에 담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젊은 날 농촌으로 돌아가 흙과 함께 살겠다는 ‘상록수 청년’ 한상경의 삶이 녹아 있다. 학교를 졸업하면 상록수의 꿈을 안고 농촌에서 농촌운동을 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농부가 되고 싶었던 청년, 그러나 우연치 않게 스물아홉 이른 나이에 강단에 섰고 지금도 줄곧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해마다 5월이면 그는 흙이 부르는 소리에 가슴이 설레ㅆ다. 마침내 버려진 황무지에 나무와 들풀과 온갖 식물들을 소재로 한 대자연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아침고요 수목원을 완성했다.
수목원을 가꾸면서 그는 인생을 본다. 아름답게 대지를 가꿀 때 가장 처치 곤란한 녀석이 잡초다. 뽑아내고 뽑아내도 끝없이 돋아나는 잡초와의 싸움. 며칠만 방심하면 정성스럽게 심어놓은 어린 묘목이나 소중한 화초 주변을 점령해버리기 일쑤인 데다, 한여름 장마가 걷히고 나면 더욱 기승을 부린다.
어느 여름, 그날도 무럭무럭 자라는 잡초들을 신경질적으로 뽑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놈의 잡초들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그러자 잡초들이 오히려 이렇게 반문한다. “그러는 너는 어디서 왔는데? 나는 예전부터 여기에 있었고 이곳은 원래 나의 땅이었잖아….”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 한교수는 잡초들에게도 야생화 정원을 마련해주었다.
아침고요 수목원에는 잡초가 없다. 대신 야생의 신비를 간직한 여러 종류의 풀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그는 이삿짐 싸는 데 베테랑이다. 결혼 후 열 번쯤 이사했고 아직도 셋방살이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데 남의 집에 살면서 가장 아쉬웠던 일이 나무를 심지 못하는 것이었다. 철 따라 꽃 피고 열매 맺는 풍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 집은 내 집이 아니지. 셋방 사는 주제에 무슨 나무를…”이라며 물리쳤다. 그렇다. 셋방살이 인생은 나무를 심지 않는다. 보통 과일나무는 심은 후 3~4년은 지나야 열매를 맺는데, 열매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나무를 심겠는가.
돌아보면 학생들 중에서도 셋방살이 인생이 많다. 자신의 모교도, 전공도 사랑하지 않는다. 셋방살이 인생을 사는 젊은 직장인도 부지기수다. 그들은 지금 몸담고 있는 직장은 잠시 머무를 곳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언제든 다른 좋은 곳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한다. 20대에는 나무를 심고, 30대에는 나무를 가꾸고, 50대가 지나면 비로소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 나무를 심어야 할 시기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삶은 외롭고, 땀 흘려야 할 여름이 무료하면 풍성한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 빈곤해진다는 한교수의 말은 흘려듣기 어렵다. 수필집의 작은 제목 중에 ‘인생은 정원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다. 한교수가 직접 찍은 수목원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헤치며 찬찬히 수필집을 읽어 내려가노라면 비로소 ‘비밀의 정원’에 숨겨진 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침고요 산책길/ 한상경 지음/ 샘터 펴냄/ 232쪽/ 9000원
경기 가평군 축령산 기슭에 숨어 있는 아침고요 수목원은 1996년 문을 열었다. 삼육대학 원예학과 한상경 교수는 미국의 한 대학에 1년간 연구교수로 있을 때 캐나다 서부해안 빅토리아 섬에 있는 부처드 가든을 보고 한국에는 왜 이런 것이 없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 후 줄곧 자연미와 동양적인 선(線)의 미가 살아 있는 정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즐거운 상상에 지나지 않았던 아침고요 수목원은 이제 1760여 종의 식물을 보유한 대표적인 한국식 정원으로 자리잡았다. 침엽수정원, 능수정원, 분재정원, 허브정원, 하경정원, 아이리스정원, 단풍정원, 매화정원, 한국정원 등 19개의 주제별 정원이 계절에 따라 다른 자태로 여행객들을 맞는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고향집의 익숙한 풍경을 발견한다. 한교수는 처음부터 자신이 나고 자란 강원 횡성의 고향집을 연상하며 정원을 만들었다. 장독대 옆 화단에 채송화, 봉숭아, 백일홍, 분꽃, 과꽃, 접시꽃의 씨앗을 뿌리고 그 옆에는 라일락과 앵두나무 따위를 옮겨 심었다.
한교수의 수필집 ‘아침고요 산책길’은 수목원의 사계절을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수목원에 와서 그냥 분주히 사진 몇 장 찍고 서둘러 사라지는 도시인들이 놓친 수목원의 참모습을 책 속에 담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젊은 날 농촌으로 돌아가 흙과 함께 살겠다는 ‘상록수 청년’ 한상경의 삶이 녹아 있다. 학교를 졸업하면 상록수의 꿈을 안고 농촌에서 농촌운동을 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농부가 되고 싶었던 청년, 그러나 우연치 않게 스물아홉 이른 나이에 강단에 섰고 지금도 줄곧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해마다 5월이면 그는 흙이 부르는 소리에 가슴이 설레ㅆ다. 마침내 버려진 황무지에 나무와 들풀과 온갖 식물들을 소재로 한 대자연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아침고요 수목원을 완성했다.
수목원을 가꾸면서 그는 인생을 본다. 아름답게 대지를 가꿀 때 가장 처치 곤란한 녀석이 잡초다. 뽑아내고 뽑아내도 끝없이 돋아나는 잡초와의 싸움. 며칠만 방심하면 정성스럽게 심어놓은 어린 묘목이나 소중한 화초 주변을 점령해버리기 일쑤인 데다, 한여름 장마가 걷히고 나면 더욱 기승을 부린다.
어느 여름, 그날도 무럭무럭 자라는 잡초들을 신경질적으로 뽑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놈의 잡초들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그러자 잡초들이 오히려 이렇게 반문한다. “그러는 너는 어디서 왔는데? 나는 예전부터 여기에 있었고 이곳은 원래 나의 땅이었잖아….”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 한교수는 잡초들에게도 야생화 정원을 마련해주었다.
아침고요 수목원에는 잡초가 없다. 대신 야생의 신비를 간직한 여러 종류의 풀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그는 이삿짐 싸는 데 베테랑이다. 결혼 후 열 번쯤 이사했고 아직도 셋방살이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데 남의 집에 살면서 가장 아쉬웠던 일이 나무를 심지 못하는 것이었다. 철 따라 꽃 피고 열매 맺는 풍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 집은 내 집이 아니지. 셋방 사는 주제에 무슨 나무를…”이라며 물리쳤다. 그렇다. 셋방살이 인생은 나무를 심지 않는다. 보통 과일나무는 심은 후 3~4년은 지나야 열매를 맺는데, 열매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나무를 심겠는가.
돌아보면 학생들 중에서도 셋방살이 인생이 많다. 자신의 모교도, 전공도 사랑하지 않는다. 셋방살이 인생을 사는 젊은 직장인도 부지기수다. 그들은 지금 몸담고 있는 직장은 잠시 머무를 곳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언제든 다른 좋은 곳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한다. 20대에는 나무를 심고, 30대에는 나무를 가꾸고, 50대가 지나면 비로소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 나무를 심어야 할 시기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삶은 외롭고, 땀 흘려야 할 여름이 무료하면 풍성한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 빈곤해진다는 한교수의 말은 흘려듣기 어렵다. 수필집의 작은 제목 중에 ‘인생은 정원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다. 한교수가 직접 찍은 수목원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헤치며 찬찬히 수필집을 읽어 내려가노라면 비로소 ‘비밀의 정원’에 숨겨진 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침고요 산책길/ 한상경 지음/ 샘터 펴냄/ 232쪽/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