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할인점의 공병창고가 되고 있다며 반발하는 동네 영세 슈퍼마켓.
대형할인점 위세에 생존권 위기를 맞고 있는 동네 슈퍼마켓이 이번에는 음료 및 주류의 공병 회수 문제 때문에 또 한 번 속앓이를 하고 있다.
1월1일 환경부는 자원절약과 재활용에 관한 촉진법 개정안을 통해 동네 슈퍼마켓과 할인점의 공병 회수를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경우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키로 했다. 지금껏 국세청(주류)과 업체(음료)에서 나눠 관리하던 공병 관리 업무를 환경부에서 일원화하면서 의무조항까지 만든 것. 이번에 새로 생긴 조항은 설사 자신의 가게에서 판 음료나 술이 아니라 하더라도 공병 회수를 거부하면 1차 50만원, 2차 200만원, 3차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공병 회수에 돈이 들어간다는 점. 비록 나중에 주류나 음료 제조업자에게 되돌려받으면 된다지만 영세 슈퍼업자에게 공병 한 병당 40~50원씩의 공병 보상금도 하루 수백병씩 반납될 경우 당장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대부분의 음료·주류 제조회사나 도매업자들이 공병 회수에 비협조적이라 결국 영세 동네 슈퍼마켓들에는 보상 없이 공병만 쌓여가고 있는 실정. 서울 마포구의 한 동네 슈퍼마켓 주인은 “음료나 주류가 잘 팔리는 곳은 도매업자나 제조업자가 자주 슈퍼를 들르게 되다 보니 공병이 회수되는 기간도 짧지만, 장사가 안 되는 곳은 그 반대로 음료·주류의 공급 횟수가 적어 오히려 공병만 쌓이고 좁은 슈퍼가 더욱 좁아져 죽을 지경이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이들 동네 슈퍼를 정작 ‘열받게’ 하는 것은 공병의 보상 부담이 아니다. 주류와 음료 총 판매량의 대부분이 할인점에서 발생하는데 공병의 회수는 슈퍼에서 담당해야 하는 구조적 모순이다.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관계자는 “할인점에서 음료나 주류를 사도 할인점에 공병을 반납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결국 동네 슈퍼마켓은 할인점의 공병창고로 전락하게 되고 말 것”이라고 흥분했다. 즉 경쟁 상대자가 판 물건의 뒤처리를 자신들이 돈을 들여가면서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환경부 자원재활용과 방종식 사무관은 이에 대해 “본래 공병은 소비자 몫이기 때문에 소비자 편리에 주안점을 두고 공병 반환 의무화를 실시했는데 할인점과 슈퍼마켓 간에 이런 구조적 문제가 발생할 줄은 몰랐다”며 “현재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슈퍼마켓에 공병 취급 수수료를 지급하고 할인점에 공병 반환장소를 따로 만들고, 홍보에 나서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할인점을 이용하는 음료·주류 소비자들 중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병을 원래 산 곳에 반납할 것인가. 만약 제도를 제대로 실시하고자 했다면 설문조사부터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일단 실시해놓고 보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 또 한 번 영세업자들을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