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1일 독일연방의 제1야당인 기민-기사당 연합이 전례를 깨고 현 기독교민주당(CDU) 당수인 앙엘라 메르켈 대신 바이에른주 총리인 슈토이버(Edmund Stoiber)를 총리후보로 결정함으로써 올 가을 실시될 연방 총선을 위한 선거전의 포문을 열었다.
기민당의 자매당인 기독교사회당(CSU)은 뮌헨 중심의 바이에른주에만 존재하는 지역의 한 당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연방 차원의 보수 대정당인 기민당이 자신의 당수와 자존심을 포기하고 기사당 당수를 총리 후보로 내세운 것은 기민당 역사상 두 번째 일로 희귀한 사례다. 여성 후보를 내세우느니 금기를 깨더라도 지역의 한 당에서 총리후보를 빌려오는 게 낫다는 식의 의식구조를 가진 남성들의 대반란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 이 결정은, 보수 대정당 내에서 유일한 여성 당수인 메르켈의 입지가 얼마나 허약했는지를 보여준 예이기도 하다.
총선 승리 가능성 ‘근소한 우세’
동독 출신의 메르켈(47)은 독일 통일 후 콜 전 총리에 의해 37세 나이로 여성청소년부 장관에 발탁된 이래 2000년 4월 기민당 당수가 되기까지 눈부신 속도로 성장한 정치인이다. 특히 콜 전 총리와 기민당 요원들의 정치비자금 스캔들로 당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당의 생존마저 의심스러웠던 1999년과 2000년이 그녀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기민당의 쇄신과 변혁을 위해 유일하게 오점 없는 기민당의 ‘잔 다르크’로 인정받으며 2000년 4월 전당대회에서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어 당수로 선출되었을 때 그녀에 대한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러나 동독 출신 여성으로, 서독의 대다수 직업 정치인들처럼 지역에서부터 주의회까지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지 못한 그녀에겐 자신의 권력을 뒷받침할 실력기반은 물론 당원들을 통솔할 역량도 부족했다. 특히 야당 당수로서 현 슈뢰더 정부와의 힘겨루기에서도 그녀는 내세울 만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당연히 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발돋움하려는 40∼50대 실력자들 사이에서 그녀는 일종의 ‘이물질’ 또는 걸림돌이었다. 메르켈이 이미 차기 총리 후보로 나설 의사를 밝혔음에도 당내에선 과연 그녀가 슈뢰더 연방총리의 적수가 될 수 있을지 회의적인 분위기였다. 마침내 ‘대타’가 없던 기민당은 바이에른주의 슈토이버를 지목한 뒤 물밑 작업을 통해 메르켈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슈토이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메르켈에게 후보 경선 포기를 강요한 것. 퇴진이냐 경선 패배냐의 갈림길에서 고민한 메르켈은 결국 퇴진을 선언했다. 이 결정은 그녀가 마지막 체면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앞으로 당내에서의 위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마지못해 기민-기사당 연합의 총리후보 진출을 결심한 듯한 슈토이버는 출세가도를 달리며 빈틈없는 정치행적을 쌓아온 입지전적 인물. ‘바이에른주의 제왕’이라 불리는 슈토이버는 자신의 정치적 대부였던 슈트라우스의 오른팔로 정치수업을 받고, 그의 절대적 권력을 계승해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다. 슈트라우스 때 시작한 경제정책, 즉 바이에른주를 농업지역에서 최첨단 산업지역으로 전환하는 정책이 성공을 거두어 뮌헨은 현재 독일 하이테크놀로지의 중심이 되었다. 노동시장 정책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어 5.3%의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고 있다. 서독지역 다른 주들의 평균 실업률은 8%이며 동독지역은 무려 17%에 달한다.
슈토이버는 첨단산업을 뮌헨 주변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기업인들에게 특혜와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면서 서민들과의 합의점을 찾는 부분에서도 큰 실책을 하지 않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경제정책에서 실용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과 달리, 안보문제에서는 대단히 권위주의적이고 사회 분야에서는 보수적·가부장적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때문에 보수적인 지역으로 통하는 바이에른주를 벗어나 연방 차원에서도 많은 지지층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는 바이에른주의 총리로서 주의 이해관계를 적극 대변하기 위해 연방 정책에 쐐기를 박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주 시민들에게는 지역이기주의 조장자나 ‘시골 족장’이란 비아냥거림도 받아왔다.
그러나 슈토이버의 후보 지명 이후 실시된 가상선거 결과 기민-기사당에 대한 지지도가 사민당보다 2%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슈뢰더와 슈토이버의 정치적 성과에 대한 만족도 비교에서도 55대 52로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어도 기민-기사당을 지지해 온 유권자들에게 슈토이버는 적절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다만 ‘누가 다음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은 50대 43으로 아직까지는 슈뢰더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이 많았다.
예기치 못한 슈토이버의 출현은 연일 발표되는 어두운 경제지표로 곤혹스런 슈뢰더 연방총리에겐 상당한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슈뢰더 정부는 그동안 세제개혁을 통해 국민에게 수십억 유로의 세금 감면과 국가부채의 감소, 원자력 에너지와의 결별, 새롭고 자유로운 시민법(국적 취득, 동성애자들의 결혼 승인 등) 실시 등 적지 않은 개혁정책을 펼쳐왔음에도 경제는 살아나지 않았다.
사민당 선거공약의 하나인 실업률 감소만 해도 한때 실업자 수가 380만명까지 내려갔으나 2002년 1월 400만명으로 늘어났고, 작년 경제성장률은 유럽연합(EU)에서 최하 수준을 기록했다. 연금제도와 의료보험 개혁은 그룹들의 이해관계 상충으로 큰 진전을 보지 못한 채 의료보험료만 평균 14% 올랐다. 코소보 전쟁과 미국 테러사건 등과 관련한 독일군 파병문제나 국내 안보문제에 대한 논란도 사민-녹색 연정의 힘을 소진시키는 데 한몫했다.
슈뢰더와 슈토이버는 이번 총선의 가장 주된 이슈가 경제문제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경제정책에서 실용적·자유주의적 노선을 걷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 슈뢰더는 현 총리라는 프리미엄과 정책 실패에 책임져야 한다는 마이너스 요인을 동시에 안고 있고, 슈토이버는 아직 연방 차원의 선거전에서 경륜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불확실성 외에도 기민당과의 연합 선거전이란 내부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내각책임제에서는 국민이 총리를 직접 선출하는 것이 아닌 만큼 정당의 정책 방향이나 각 지역구 후보들의 개별적인 승리 또한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슈뢰더인가 슈토이버인가. 올 가을 치러질 총선에서 독일 국민이 누구 손을 들어줄지 자못 궁금하다.
기민당의 자매당인 기독교사회당(CSU)은 뮌헨 중심의 바이에른주에만 존재하는 지역의 한 당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연방 차원의 보수 대정당인 기민당이 자신의 당수와 자존심을 포기하고 기사당 당수를 총리 후보로 내세운 것은 기민당 역사상 두 번째 일로 희귀한 사례다. 여성 후보를 내세우느니 금기를 깨더라도 지역의 한 당에서 총리후보를 빌려오는 게 낫다는 식의 의식구조를 가진 남성들의 대반란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 이 결정은, 보수 대정당 내에서 유일한 여성 당수인 메르켈의 입지가 얼마나 허약했는지를 보여준 예이기도 하다.
총선 승리 가능성 ‘근소한 우세’
동독 출신의 메르켈(47)은 독일 통일 후 콜 전 총리에 의해 37세 나이로 여성청소년부 장관에 발탁된 이래 2000년 4월 기민당 당수가 되기까지 눈부신 속도로 성장한 정치인이다. 특히 콜 전 총리와 기민당 요원들의 정치비자금 스캔들로 당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당의 생존마저 의심스러웠던 1999년과 2000년이 그녀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기민당의 쇄신과 변혁을 위해 유일하게 오점 없는 기민당의 ‘잔 다르크’로 인정받으며 2000년 4월 전당대회에서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어 당수로 선출되었을 때 그녀에 대한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러나 동독 출신 여성으로, 서독의 대다수 직업 정치인들처럼 지역에서부터 주의회까지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지 못한 그녀에겐 자신의 권력을 뒷받침할 실력기반은 물론 당원들을 통솔할 역량도 부족했다. 특히 야당 당수로서 현 슈뢰더 정부와의 힘겨루기에서도 그녀는 내세울 만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당연히 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발돋움하려는 40∼50대 실력자들 사이에서 그녀는 일종의 ‘이물질’ 또는 걸림돌이었다. 메르켈이 이미 차기 총리 후보로 나설 의사를 밝혔음에도 당내에선 과연 그녀가 슈뢰더 연방총리의 적수가 될 수 있을지 회의적인 분위기였다. 마침내 ‘대타’가 없던 기민당은 바이에른주의 슈토이버를 지목한 뒤 물밑 작업을 통해 메르켈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슈토이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메르켈에게 후보 경선 포기를 강요한 것. 퇴진이냐 경선 패배냐의 갈림길에서 고민한 메르켈은 결국 퇴진을 선언했다. 이 결정은 그녀가 마지막 체면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앞으로 당내에서의 위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마지못해 기민-기사당 연합의 총리후보 진출을 결심한 듯한 슈토이버는 출세가도를 달리며 빈틈없는 정치행적을 쌓아온 입지전적 인물. ‘바이에른주의 제왕’이라 불리는 슈토이버는 자신의 정치적 대부였던 슈트라우스의 오른팔로 정치수업을 받고, 그의 절대적 권력을 계승해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다. 슈트라우스 때 시작한 경제정책, 즉 바이에른주를 농업지역에서 최첨단 산업지역으로 전환하는 정책이 성공을 거두어 뮌헨은 현재 독일 하이테크놀로지의 중심이 되었다. 노동시장 정책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어 5.3%의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고 있다. 서독지역 다른 주들의 평균 실업률은 8%이며 동독지역은 무려 17%에 달한다.
슈토이버는 첨단산업을 뮌헨 주변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기업인들에게 특혜와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면서 서민들과의 합의점을 찾는 부분에서도 큰 실책을 하지 않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경제정책에서 실용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과 달리, 안보문제에서는 대단히 권위주의적이고 사회 분야에서는 보수적·가부장적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때문에 보수적인 지역으로 통하는 바이에른주를 벗어나 연방 차원에서도 많은 지지층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는 바이에른주의 총리로서 주의 이해관계를 적극 대변하기 위해 연방 정책에 쐐기를 박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주 시민들에게는 지역이기주의 조장자나 ‘시골 족장’이란 비아냥거림도 받아왔다.
그러나 슈토이버의 후보 지명 이후 실시된 가상선거 결과 기민-기사당에 대한 지지도가 사민당보다 2%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슈뢰더와 슈토이버의 정치적 성과에 대한 만족도 비교에서도 55대 52로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어도 기민-기사당을 지지해 온 유권자들에게 슈토이버는 적절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다만 ‘누가 다음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은 50대 43으로 아직까지는 슈뢰더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이 많았다.
예기치 못한 슈토이버의 출현은 연일 발표되는 어두운 경제지표로 곤혹스런 슈뢰더 연방총리에겐 상당한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슈뢰더 정부는 그동안 세제개혁을 통해 국민에게 수십억 유로의 세금 감면과 국가부채의 감소, 원자력 에너지와의 결별, 새롭고 자유로운 시민법(국적 취득, 동성애자들의 결혼 승인 등) 실시 등 적지 않은 개혁정책을 펼쳐왔음에도 경제는 살아나지 않았다.
사민당 선거공약의 하나인 실업률 감소만 해도 한때 실업자 수가 380만명까지 내려갔으나 2002년 1월 400만명으로 늘어났고, 작년 경제성장률은 유럽연합(EU)에서 최하 수준을 기록했다. 연금제도와 의료보험 개혁은 그룹들의 이해관계 상충으로 큰 진전을 보지 못한 채 의료보험료만 평균 14% 올랐다. 코소보 전쟁과 미국 테러사건 등과 관련한 독일군 파병문제나 국내 안보문제에 대한 논란도 사민-녹색 연정의 힘을 소진시키는 데 한몫했다.
슈뢰더와 슈토이버는 이번 총선의 가장 주된 이슈가 경제문제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경제정책에서 실용적·자유주의적 노선을 걷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 슈뢰더는 현 총리라는 프리미엄과 정책 실패에 책임져야 한다는 마이너스 요인을 동시에 안고 있고, 슈토이버는 아직 연방 차원의 선거전에서 경륜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불확실성 외에도 기민당과의 연합 선거전이란 내부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내각책임제에서는 국민이 총리를 직접 선출하는 것이 아닌 만큼 정당의 정책 방향이나 각 지역구 후보들의 개별적인 승리 또한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슈뢰더인가 슈토이버인가. 올 가을 치러질 총선에서 독일 국민이 누구 손을 들어줄지 자못 궁금하다.